"닭 200마리 vs 소 한 마리, 도살해야 한다면…당신의 선택은?"
육류를 얻기 위해 닭 200마리 또는 소 한 마리를 도살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유럽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식습관을 '유연한 채식주의자(flexitarian)' 또는 '육식저감주의자(reducitarian)'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육류와 유제품을 먹지만, 환경이나 윤리적 이유로 가능한 소비를 줄이려고 한다.
특히 영국에는 '엄격한 채식주의자(vegan)'와 '채식주의자(vegetarian)', 해산물은 섭취하는 '페세테리언(pescetarian)'을 합친 것보다 많은 '유연한 채식주의자'가 존재한다.
가축 사육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이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육류 소비를 줄이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 좋은 것이 동물한테도 좋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는 상충할 때가 많다. 동물 복지에 좋은 것이 환경에는 나쁘거나 반대인 경우다.
이는 다른 종류의 가축(소고기 vs 닭고기)이나 동일한 가축을 사육하는 다른 방식(닭장 사육 vs 방목 사육)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지난 10일 영국의 데이터 과학자 한나 리치가 옥스포드대에 기반을 둔 데이터 포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재밌는 글을 하나 발표했다. 리치 박사는 '동물 복지와 육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 간의 트레이드 오프는 무엇인가?'(What are the trade-offs between animal welfare and the environmental impact of meat?)라는 글에서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간의 트레이드 오프를 다뤘다.
'트레이드 오프(trade-off)'는 두 개의 목표 가운데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 간의 트레이드 오프를 살펴보자.
문제는 소와 똑 같은 양의 육류를 얻기 위해 200배나 많은 닭을 도살해야 한다는 점이다. 닭은 평균적으로 약 1.7㎏의 육류를 제공하지만, 소는 360㎏의 육류를 생산한다.
이 같은 사실은 다른 가축한테도 적용된다. 소, 돼지, 양 등 큰 동물은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한 마리 당 훨씬 더 많은 육류를 제공한다. 1t의 육류를 얻기 위해서 도살해야 하는 소는 3마리지만, 돼지는 10마리, 닭은 576마리에 달한다. 대신 1t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소는 499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를 배출하지만, 닭은 57tCO2eq 밖에 배출하지 않는다.
결국 닭과 생선의 탄소발자국은 작지만, 더 많은 숫자가 죽음에 직면한다. 옥스퍼드대 경제학자 맥스 로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일 2억마리가 넘는 닭과 수억 마리의 생선이 죽임을 당하는 반면 소는 약 90만마리, 돼지는 수백만 마리가 도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명을 보태자면 유럽연합(EU)에서는 한 사람당 매년 약 80㎏의 육류를 섭취한다. 닭으로부터 모든 육류를 얻기 위해서는 매년 한 사람당 닭 40마리가 도살돼야 한다. 소라면 한 명당 약 0.16마리면 충분하다.
생명을 앗아야 하는 동물의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닭의 사육 환경은 소보다 훨씬 열악하다. 대부분의 닭들은 공장화된 양계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소고기 버거를 치킨 버거로 바꾸면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지만, 더 많은 동물이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이 간단해질 것 같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유기농 돼지고기가 동물에게도 좋고 환경에도 좋을까? 또는 방목 사육되는 닭이 행복하고 건강하며 환경에도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아쉽지만 아니다. 특정 가축의 사육 방법 간에도 트레이드 오프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닭이다. 닭을 좁은 닭장에 가두면 필요한 토지가 줄어든다. 닭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닭이 '낭비하는' 에너지가 줄어들고 성장 호르몬을 주면 몸무게가 훨씬 빨리 늘어난다.
이런 방법은 기후에는 좋다. 적게 먹여도 빨리 시장 출하에 필요한 몸무게에 빨리 도달할 수 있고 비료, 토지, 물 등 자원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지난 50년간 양계 산업이 겪어온 변화를 보면 '빨리 성장하는 계통(Strain)'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생후 56일이 경과된 2005년의 일반적인 브로일러(broiler) 품종은 1950년대의 평균적인 닭보다 4배 이상 무거워졌다. 브로일러는 일상적 닭요리에 사용되는 일반 육계를 뜻한다. 이런 변화는 현대의 닭에게 다양한 건강 문제를 야기했지만, '사료효율(feed efficiency)' 향상으로 기후에는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닭뿐 아니라 소, 돼지 사육에서도 방목 사육 등 사육 환경 개선을 통한 동물 복지 향상은 예외없이 탄소 발자국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동물 복지 향상과 탄소 발자국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어렵다. 소비자는 여러 개의 트레이드오프에 직면해야 하며 각자의 가치와 우선 순위에 따라 선택하는 옵션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예컨대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닭고기로 바꾸거나 동물 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소고기를 고수하거나 또는 닭장 사육에 비해 탄소 배출량이 15% 높은 방목 사육한 닭의 달걀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동물 복지와 환경 보호 간의 트레이드 오프가 존재하는 한 닭 200마리냐, 소 한 마리냐의 문제는 계속될 것 같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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