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로 벼랑 끝 몰린 중산층… 美 대선 흔들 ‘태풍의 눈’ 부상 [세계는 지금]

박영준 2024. 6. 2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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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트럼프 적극 구애 나서
美허리 중산층 3명 중 2명 ‘재정난’ 호소
소득 증가율 상회 장기 인플레로 고통
증산충 비율도 30년새 61%서 51%로 ↓
바이든, 중산층 확대정책 위기에 처해
경제 성과 홍보전도 오히려 역효과만
트럼프, 팁 면세 공약 등으로 공략 나서
수십조원 세수 줄어 재정 악화 지적만
#1. “나는 스크랜턴의 눈으로 경제를 본다.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중산층이 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배우면서 자랐다. 도널드 트럼프는 파크 애비뉴에서 경제를 본다. 그는 노동자 가구에 실패한 낙수효과 정책을 지지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고향 필라델피아주 스크랜턴을 거론하며 자신이 중산층 가구에서 태어났고, 중산층을 존중하고,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같은 날 공개한 30초짜리 영상 광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는 중산층을 도울 계획이 없다. 그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 감면을 주려 한다”고 공격했다.
 
#2. “나와 달리 조 바이든은 노동자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는 중산층의 고통을 통해 부자가 되는 모든 부패한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난 18일 와이오밍주 선거유세에서 ‘중산층’을 외쳤다. 소득세 폐지, 팁 면세 공약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감세를 공약하며 중산층을 파고들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법인세 인상을 포함한 부자 증세 공약이 중산층에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열을 올리는 중이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전현직 대통령이 중산층(middle class)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 강력한 고용시장, 주식시장 상승 등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장기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정작 중산층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11월 미 대선을 결정짓는 것은 중산층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의 허리, 중산층 3명 중 2명 “재정난”

미국에서의 중산층은 통상 미국 중위 가계 소득 3분의 2 수준에서 2배 사이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로 정의한다. 2021년 기준 중위소득은 6만5000달러(약 9000만원)다. 중산층은 4만3350달러(6000만원)에서 13만달러(1억9000만원) 사이의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해당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발표한 중산층 태스크포스(TF) 보고서에서 중산층의 기준으로 △자가 소유 △자가용 소유 △자녀의 대학 교육 △은퇴 준비 △의료 보험 △가족 휴가 6가지 항목을 꼽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당시 부통령으로 중산층TF에 참여하며 미국의 ‘허리’ 중산층을 살리겠다고 줄곧 외쳤으나 미국의 각종 조사는 중산층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산층에서 탈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시민단체 ‘국가 실질 생계비 연합’은 지난 4일 발표한 성인 2400명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서 연방빈곤기준(FPL)의 200%(4인 가족 기준 최소 6만달러) 이상을 버는 미국 중산층의 65%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고, 앞으로도 경제 사정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40%는 다음 급여를 받을 때까지 재정 관련 계획을 세울 수 없었고, 46%는 만약을 대비해 월 500달러(69만원)를 저축하지 못한다고도 응답했다.

◆중산층은 줄고, 저·고소득층은 늘고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도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중산층에 속한 미국인 비율은 1971년 61%에서 2023년 기준 51%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인구는 같은 기간 27%에서 30%로 늘었고, 고소득층 인구도 11%에서 19%로 늘었다. 늘어나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에 중산층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미국 전체 가구 소득에서 중산층 가구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감소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970년 전체 가구 소득에서 중산층이 차지하는 소득 비중은 62%였던 것이 2022년 기준 43%로 감소했다. 저소득층 가구가 차지하는 소득 역시 같은 기간 10%에서 8%로 줄어든 반면, 고소득층 가구가 전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70년 29%에서 2022년 48%로 크게 증가했다.
CNN은 “중산층이 지출을 줄이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난다”면서 “중산층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의류나 사치품 같은 비필수품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금융권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자가를 가지지 못한 중산층에게는 고금리에 따른 주거비 상승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주거비는 늘어나고 식료품, 보험료 등이 늘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산층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고소득층으로 소득이 늘었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중산층 소득이 감소했거나, 정부 지원 등을 받기 위해 소득을 숨기는 현상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든, 중산층 공략 나섰지만 ‘고전’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해서도 중산층에 집중해왔으나 경제 분야에서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내내 자신의 핵심 경제 정책으로 ‘보텀업(bottom up), 미들아웃(middle out)’ 정책을 추진했다.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자립을 위한 상향식 투자(보텀업)로 중산층을 두텁게 한다(미들아웃)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따른 주택 비용 상승, 주거비, 식료품 비용 상승 등으로 중산층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미국 몬머스대가 지난 2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이 중산층에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45%로 나타났다. 조금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33%, 큰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일 자신의 경제 성과에 대해 홍보하고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악관이 지난 12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임금 상승률이 15개월 연속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경제가 꾸준히 호황을 기록하고 있고, 인플레이션이 회복되고 있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의 경제 관련 공세는 정치적이라는 주장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CNN 인터뷰에서 경제 분야 평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뒤처져 있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는 이미 상황을 반전시켰다. 여론조사는 계속해서 잘못됐다”며 “(대부분의 미국인이) 경제적으로 좋은 상태”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다수의 외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인식이 실제 국민이 느끼는 경제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규모 감세 공약에도 ‘시큰둥’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득세 폐지와 팁 면세 공약 등을 앞세워 중산층 공략에 나섰지만 정부 재정 악화 우려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인세 인하 및 부자 감세 정책도 저항에 부딪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서비스직 유권자를 겨냥, 팁으로 얻은 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초당적 기구인 책임있는연방예산위원회(CRFB)는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팁 금액이 늘어나는 속도 및 소득 분포 등에 따라 팁 면세 시 2026회계연도부터 10년간 많게는 2500억달러(348조원)의 정부 수입이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팁 면세 공약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내놓지 않았다.

법인세 감세 계획도 복병을 만났다. 여론조사 기관인 유고브는 최근 미국 백만장자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연 1억달러(1329억원) 이상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재 37%에서 상향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을 지지한 셈이다. 또 백만장자 응답자의 60% 이상은 빠르게 확대되는 불평등을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응답자의 91%는 극심한 부의 집중이 일부 동료 시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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