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이지만 이 음료는 못 잃어”…‘짝퉁’까지 만들어 마시는 러시아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6. 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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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개 기업 ‘사업 철수’ 밝혔지만
이들 중 다수 여전히 현지에서 사업
러시아가 ‘출국세’ 등 요구하며 압박
코카콜라, 철수 후에도 ‘인기음료 3위’
조지아 등 인접국가 통해 수입 활발
같은 시설에서 생산된 ‘짝퉁’도 인기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 지역 최전선에서 러시아군 진지를 향해 자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P 연합뉴스]
2022년 러시아의 대대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자 글로벌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우려했던 전쟁이 현실이 되고 러시아에 대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고강도 경제 제재가 예고되면서 러시아 현지에서 사업을 벌이던 기업들도 선택의 갈림길 앞에 놓였습니다. 러시아에서 계속 사업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손실을 감수하고 러시아를 떠나느냐 사이에서 결정을 내릴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전쟁 초반 대부분 기업들은 철수를 선택했습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우려가 작용했지만,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 여파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도 한몫했습니다. 예일 경영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쟁 발발 후 러시아에서 사업을 축소하고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다국적 기업 수는 1000여개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중 다수가 현지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와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는 철수 계획을 보류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자국에서 떠나려면 출국세를 내야 한다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정부가 출국세를 명분으로 현지 공장 등을 헐값에 넘길 것을 요구하자 이들 기업은 현지에 남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러시아를 떠날 준비를 했던 덴마크 양조업체 칼스버그와 프랑스 식품기업 다논은 회사 자산이 압류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프랑스 슈퍼마켓 기업 아우찬, 의류 기업 베네통그룹, 식음료 체인 서브웨이와 TGI프라이데이는 구체적인 감축 계획 없이 여전히 러시아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쟁이 한창인 러시아에 남았지만 악재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러시아에 남아있는 기업들의 매출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대규모 생산과 국가 지출이 촉진되면서 러시아 경제는 지난해 3.6% 성장을 기록하며 실업률을 사상 최저치인 2.6%로 만들었습니다. 군비 산업 확대와 군수 생산 증가 등으로 경제 활동이 활성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경제가 나아졌는데 전쟁으로 일손은 부족해 근로자 임금도 대폭 상승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러시아에서 남은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현지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어떻게 안전하게 자국으로 송환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철수했지만 소비자들의 수요가 쏟아지며 여전히 판매되고 있는 제품도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대표적입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공세가 시작되자 코카콜라는 러시아에서의 철수 계획을 가장 먼저 공표한 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코카콜라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제품 판매를 중단할 것을 러시아 현지 협력사들에 강력 권고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넘게 지났지만 러시아에서 코카콜라는 아직 일상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 중 하나입니다. 코카콜라의 철수 선언 이후 러시아 내 생산·판매는 공식 중단됐지만, 소비자 수요가 쏟아지면서 조지아, 카자흐스탄 등 여러 인접 국가에서의 수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카콜라가 매장에 진열된 모습.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고강도 제재 등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러시아는 자국 현지 기업들이 상표권 소유자의 동의 없이 브랜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수입업자들이 트럭 등 모든 운송수단을 동원해 인접 국가에서 코카콜라 등을 실어 나르면서 러시아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켰습니다.

러시아 데이터업체 프로다지에 따르면 이를 바탕으로 코카콜라는 올해 5월 기준 러시아 탄산음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료’ 3위에 이름을 올리며 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원조의 인기’에 힘입어 짝퉁 코카콜라도 러시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바로 ‘도브리 콜라’입니다. 이는 미국 코카콜라 본사가 약 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런던 법인 코카콜라HBC의 자회사 멀튼 파트너스가 러시아에서 생산·판매하는 ‘짝퉁 코카콜라’입니다.

미 코카콜라 본사가 러시아에서의 철수를 공표한 이후 러시아 내 코카콜라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코카콜라HBC가 제품 생산을 중단하자, 자회사인 멀튼 파트너스가 제품명을 도브리 콜라로 바꾼 뒤 코카콜라를 만들던 공장에서 생산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코카콜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빨간색의 캔과 똑같은 맛은 러시아 소비자들의 입맛을 한순간에 사로잡았습니다. 도브리 콜라는 러시아 탄산음료 시장의 13%를 차지하며 순식간에 ‘가장 인기 있는 음료’ 중 하나로 거듭났습니다.

코카콜라의 대표 경쟁사로 꼽히는 펩시 역시 러시아에서 ‘완전한 철수’를 이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펩시는 전쟁 시작 후인 2022년 9월 러시아에서 자사 제품인 펩시콜라와 마운틴듀, 세븐업 등 탄산음료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펩시는 곧 새로운 콜라 제품인 에버베스를 출시했고, 동시에 러시아 내 6개 공장에서 과일향을 첨가한 탄산음료 프루스타일 생산량을 대폭 늘렸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펩시 러시아 사업부의 지난해 음료 매출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2090억루블(약 3조260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탄산음료뿐만 아니라 펩시가 생산하는 이유식과 유제품 사업의 지난해 매출 역시 전년에 비해 10% 증가한 1290억루블(약 2조13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매출 증대 효과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나옵니다. 당장은 수익이 늘어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서방의 경제 제재 후폭풍에 언제든지 휘말릴 수 있고 소비자들에게 ‘전쟁을 시작한 국가에서 사업을 계속한 기업’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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