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선 '개혁파 후보' 깜짝 1위 결선행…투표율은 40% 사상 최저(종합2보)
2위 잘릴리와 7월5일 결선투표 실시…"낮은 투표율, 회의감에 기인"
(서울=뉴스1) 김성식 김예슬 기자 =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사망에 따라 지난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유일한 '개혁파 후보'가 깜짝 1위를 기록하며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최종 투표율은 40%로 이란 역사상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29일 이란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37분 집계한 최종 개표 결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국회의원이 전체 2450만여표 중 가장 많은 1041만5991표(42.5%)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페제시키안 후보는 4명의 후보 중 유일한 개혁파 후보로 분류된다.
그다음은 '하메네이 충성파'로 꼽히는 핵 협상 전문가인 사이드 잘릴리 전 외무차관으로 947만3298표(38.6%)를 확보했다. 이에 페제시키안 후보와 잘릴리 후보가 나란히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됐다. 이날 이란 내무부는 두 후보 모두 당선에 필요한 득표율 50%에 미치지 못해 오는 7월 5일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338만3340표(13.8%)에 그쳐 3위로 낙선했다. 모스타파 푸르모함마디 전 법무장관은 20만6397표(0.8%)를 얻었다. 이날 선관위가 집계한 무효표는 105만6159표였다.
이날 이란 내무부는 최종 투표율이 40%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치러진 선거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다. 그간 대선 최저 투표율은 2021년 대선에서 나온 48%였고, 총선 사상 최저 투표율은 지난 3월 총선의 41%였다. 따라서 이번 투표율은 총선과 대선을 모두 합쳤을 때도 제일 낮은 기록이다.
이처럼 낮은 투표율은 서방 제재 장기화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강경 일변도를 걷는 신정 지도부에 대한 국민적 회의감을 보여준다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
특히 2022년 9월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도덕경찰에 연행된 마흐사 아미니가 구금 사흘 만에 의문사한 것을 계기로 이란 전역에선 반(反)정부 시위가 거세게 일었지만, 정부의 강경 진압 탓에 사회 변혁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점이 이란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역대 최저 투표율에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하메네이는 투표를 사흘 앞둔 지난 25일 연설에서 유권자들에게 친(親)서방 후보와 연대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적들을 침묵시키려면 투표율이 높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개혁 성향의 이란인들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선거는 서커스'라는 해시태그(#)를 올리며 투표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나마 투표에 참여한 개혁 성향의 유권자들은 마지막까지 남은 4명의 후보 중 유일한 개혁파인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며 이날 예상 밖 돌풍을 일으켰다.
셰나크트 분석센터가 지난 10~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갈리바프 후보는 지지율 28.7%로 가장 앞섰다. 잘릴리 후보가 20%, 페제시키안 후보는 13.4%를 기록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이날 개표 결과는 득표 순서가 거꾸로 나온 셈이다.
◇친서방 vs 강경보수 맞대결…누가 되든 최종 결정은 하메네이가
페제시키안 후보는 강경파 일색의 후보들 중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약속한 유일한 후보다.
심장외과 의사 출신인 그는 이슬람 혁명 이후 첫 개혁파 대통령인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 시절인 1997년 보건부 차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보건부 장관과 의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는 북부도시 타브리즈의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의정 활동에 전념해 왔다.
2022년 아미니가 의문사했을 당시엔 방송에 출연해 라이시 정부가 투명성이 부족했다고 질책했다. 그는 2015년 체결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강력 지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선거운동에선 "이란을 국제사회 고립에서 벗어나게 만들겠다"며 미국·유럽 등 서방국들과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반대로 JCPOA 체결 전인 2007년부터 5년간 이란 측 협상 대표단을 맡았던 잘릴리 후보는 강경 보수 성향으로 서방과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올해 58세인 그는 1989년 외무부에 입직해 18년간 일했다. 2001년 하메네이의 정책기획 수석으로 임명됐다.
2005년 강경파인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당선되자 외무부 차관 자리에 올랐고 이후 하메네이의 신임 속에 핵 협상을 맡았다. 현재는 국가최고안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선거운동 기간 그는 TV토론에서 핵 개발을 고수했고 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권고한 금융범죄 협약 2건에 이란이 가입하는 것도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후원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고 밝혔다.
결선 투표에 올라가면 강경파 표심이 결집돼 페세지키안 후보 당선엔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페제시키안 후보가 어렵게 당선되더라도 현재의 외교 정책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긴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란은 대통령보다 높은 종교 지도자가 국가를 통치하는 신정 체제라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앞서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국경에 양국이 공동 건설한 댐 준공식에 참석한 후 헬기를 타고 수도 테헤란으로 이동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란 헌법 131조는 대통령이 사망할 경우 최대 50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 선거 당국은 6월 28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80명의 후보 신청자 중 지난 9일 승인한 최종 후보자는 6명이었다. 그러나 알리레자 자카니 테헤란 시장과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 부통령이 투표일 직전 사퇴하며 후보는 4명으로 압축됐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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