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팀 ‘다저스’ 유래는 “목숨걸고 피하는 사람들”…그런데 뭘 피해?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4. 6. 2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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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59][오-리저널05] LA 다저스

‘오-리저널(oh-regional)’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oh’와 지역의, 지방의을 뜻하는 ‘regional’의 합성어로 전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브랜드 이야기를 다루는 오리지널(original) 컨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오타니의 다저스, 코리안리거의 꿈의 구장
‘LA 다저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가 누구신가요? 2024년 최고의 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을 텐데요. 사실 LA 다저스는 한국 선수들에겐 기회의 구장이었습니다.
LA다저스 로고
1994년 대한민국 최초의 코리안리거 박찬호 선수가 LA 다저스에 입단했고 2013년 류현진 선수가 LA 다저스를 대표하는 핵심 투수로 자리매김했죠. LA 다저스와 인연을 맺은 한국 선수들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했고 끊임없는 도전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LA 다저스의 유래입니다.
브루클린 그레이스 로고
1883년 뉴욕 브루클린. 활기찬 거리에 새로운 야구 팀이 등장했습니다. 그 팀은 바로 브루클린 그레이즈(Brooklyn Grays)로 그들은 빠르게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갔습니다. 그레이즈는 당시 “인터스테이트 리그(Interstate League)”라는 야구리그에 소속되어 있었고,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이 그들의 경기를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그레이즈는 초기부터 열정적이었고, 경기장에서의 활약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브루클린의 주민들은 팀을 응원했습니다. 그레이즈는 그들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1884년, 그레이즈는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진정한 프로야구 팀으로서의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루클린 애틀랜틱스 선수단
이 시기, 브루클린 애틀랜틱스(Brooklyn Atlantics)라는 또 다른 팀과의 합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두 팀이 합병하면서 그레이즈는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팀의 이름은 브루클린 브라이드그룸스(Brooklyn Bridegrooms), 줄여서 브루클린 그룸스(Brooklyn Grooms)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11년, 팀은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팀 이름이 변경된 것인데요. 이때 팀은 “브루클린 다저스(Brooklyn Dodgers)”입니다.

브루클린 다저스 재키 로빈슨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42’
‘다저스’라는 이름은 브루클린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브루클린에는 전차(trolley)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피하며 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이처럼 전차를 피하는 사람들을 당시 ‘trolley dodgers’라고 불렀습니다. 피한다는 뜻을 가진 ‘dodge’에서 파생된 ‘피하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수많은 전차 다저스들에서 이름을 딴 브루클린 다저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DNA의 팀으로 거듭납니다.
브루클린에서 전차를 피하는 사람들을 그린 만화
브루클린 다저스는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성장했습니다. 특히 1955년, 그들은 마침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브루클린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브루클린 전체에 큰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 브루클린 다저스는 뉴욕 브루클린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들의 경기 날이면, 홈구장인 에베츠 필드는 열광적인 팬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팀 내부에서는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구단주인 월터 오말리(Walter O’Malley)는 에베츠 필드가 팀의 성장을 제한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경기장은 낡아가고 있었고, 좌석 수는 점점 늘어나는 팬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했습니다. 더구나 브루클린은 도로와 주차 공간이 부족해 경기 날마다 교통 혼잡이 심각했습니다. 오말리는 새로운, 더 큰 경기장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월터 오말리
오말리는 브루클린 시 당국과 여러 차례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현대적인 시설과 충분한 주차 공간을 갖춘 새 경기장을 건설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시 당국과의 협상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시 당국은 새로운 경기장 건설을 위한 부지 제공에 소극적이었고, 오말리의 비전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에베츠 필드
이때, 서부 해안에서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시는 다저스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제안을 해왔습니다. 넓은 땅과 현대적인 경기장, 더 나은 교통 인프라를 약속한 로스앤젤레스는 다저스에게 새로운 시작을 제안했습니다. 오말리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말리는 팀을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결정은 브루클린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저스를 사랑했고, 팀의 이전 소식은 마치 가족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오말리는 팀의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이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1957년, 다저스는 브루클린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에베츠 필드에는 눈물을 흘리는 팬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다저스와의 추억을 간직하며 작별을 고했습니다. 다음 해, 다저스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여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os Angeles Dodgers)’로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
로스앤젤레스에서 다저스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넓은 다저 스타디움은 많은 팬들을 수용할 수 있었고, 팀은 새로운 팬 층을 형성하며 성장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여러 차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들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비록 다저스는 브루클린을 떠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브루클린과 로스앤젤레스 모두에서 살아 있습니다. 다저스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팀으로, 그들의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브루클린의 추억과 로스앤젤레스의 현재를 아우르며, 다저스는 앞으로도 야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LA다저스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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