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낭만’···‘두 바퀴 탈것’들을 애정하는 이유[정우성의 일상과 호사]
도시인은 머물 수 없다. 어디든 가야 한다. 출퇴근은 전쟁이다. 미팅은 왜 또 그렇게 많은 거야? 딱 10분 게으름을 피웠을 뿐인데 벌써 늦었다. 최대한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지하철역은 멀고 버스는 느리고 택시는 비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로, 다분히 경험에 근거한 도시 생활, 이동의 지혜에 대해 쓰려고 한다.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도심형 교통수단은 스쿠터다. 미쳤어? 오토바이를 권한다고? 벌써 타박의 목소리가 들리고 악플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다. 서울 같은 메가시티에서 스쿠터의 스피드와 효율을 이길 수 있는 교통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언할 수 있다.
나 역시 스쿠터를 탄다. 2013년에 산 125cc짜리 스쿠터, 하늘색 베스파 프리마베라를 아직도 타고 있다. 고장 난 적도 없고 사고 난 적도 없다. 어찌어찌 망설이다가 골목에서 혼자 넘어질 뻔한 적은 있었다. 2014년이었나, 회사에서 안식월을 제공받았던 여름엔 내 베스파를 타고 고성까지 갔다. 고성에 주차하고 배 타고 제주에 갔다가 다시 베스파를 타고 서울까지 왔다.
결혼을 하고 아들이 태어난 요즘도 매일 베스파를 타고 출퇴근한다. 약속이 있을 때도, 비가 심하게 오지만 않으면 일단 베스파를 타고 나선다. 일단 빠르기 때문이다. 연비도 훌륭한 수준이다. 스피드와 효율이 생명인 배달업 종사자들이 하나같이 스쿠터를 선택하는 데에는 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서울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속도로 달릴 수 있는데 나름의 방법으로 교통 체증을 피할 수도 있다. 대로만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목을 활용한다 생각하면 서울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주차 스트레스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목적지 코앞까지 스쿠터와 함께할 수 있다. 낭만도 있다.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를 잊게 된다. 우울감은 수용성이니 일단 샤워부터 해보라는 조언은 누가 했었지? 부정적인 감정을 날리는 또 다른 솔루션은 바로 바람이다. 살랑살랑, 내가 선택한 속도로 도시를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바람. 그러다 남산 소월길이나 응봉산 즈음을 지날 때 느껴지는 그 서늘한 숲 공기. 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무와 풀과 흙냄새. 다시 한번 달아나는 스트레스. 스쿠터는 정말이지 놀라운 교통수단이다.
베스파는 1946년 생산을 시작해 2024년에 무려 78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스쿠터.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탔던 핵심 오브제이자 이탈리아의 스타일 아이콘이다. 효율과 실용을 생각해 만들었으나 그대로 아이콘이 되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2013년 당시에 125cc 베스파 프리마베라를 샀던 가격은 약 400만원이었다. 지금 가격은 529만원부터 옵션과 에디션에 따라 569만원까지 형성돼 있다.
베스파보다 저렴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추구하면서 특유의 멋스러움까지 챙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혼다 슈퍼커브를 권하고 싶다. 109cc 혼다 슈퍼커브의 가격은 265만원이다. 베스파에 비해 배기량이 적은 편이지만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을 소화하기엔 전혀 무리가 없다. 인기가 너무 많아서 구하기도 어렵다는 소문이 도는 중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탄다고 슈퍼커브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슈퍼커브의 역사도 베스파 못지않다. 1958년 C100이라는 모델명으로 데뷔했다. “소바집 꼬마가 한 손에 배달통을 들고 한 손으로만 운전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만들라”는 혼다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주문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되었다. 시작부터 실용적 혁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수를 배달하는 소년도, 치마를 입고 이동해야 하는 여성에게도 슈퍼커브는 멋진 이동수단이 되었다.
당연히 많이 팔렸다. 1958년 출시 이후 3년 만에 누적 판매 대수 100만대를 기록했다. 2017년에는 누적 판매 대수 1억대를 넘겼다. 예쁘고, 편하고, 잘 달리고, 연비 좋고 내구성까지 뛰어나니 간편한 도심형 이동수단으로서의 모터사이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웬만하면 고장도 안 나는 성격(?)이라 ‘좀비 바이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스쿠터가 영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자전거에 눈길을 돌려보는 것도 좋겠다.
자전거 세계의 맹주는 역시 전통의 영국 브랜드 브롬톤. 세계 최초의 접이식 자전거이자, 가장 작고 아름답게 접히는 자전거로 알려져 있다. 최초 설계는 1975년, 첫 번째 모델 생산은 1981년이었다.
브롬톤의 가장 큰 장점은 접는 방식 그 자체에 있다. 간단한 몇 가지 절차를 거치면 16인치 바퀴와 큰 차이가 없는 크기로 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게 접히니까 들고 이동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달려, 접어서 이동한 후, 도착한 역에서 다시 펼쳐 달리는 라이프스타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6월 초에는 브롬톤 일렉트릭도 출시했다. 아무리 작게 접히는 자전거라도 서울은 언덕이 너무 많은 도시. 출퇴근 길에 땀 뻘뻘 흘리면서 이동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브롬톤 일렉트릭은 웬만한 언덕 따위, 내 허벅지로 바람처럼 정복할 수 있다는 현실적 도움과 재미를 약속한다. 300Wh 배터리로 총 72㎞를 주행할 수 있고 충전하는 데에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주행가능거리는 각자의 주행 습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기 모터는 앞바퀴 중심 부분에 있고, 페달을 밟는 힘을 인식해 전기 모터가 힘을 보태는 PAS(페달 어시스트 시스템) 방식이다. 가격은 사양에 따라 605만원부터 695만원까지.
물론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구매와 소유는 효율과 논리로만 이뤄지지 않는 법. 브롬톤은 다분히 취향의 영역에서 공고한 팬덤을 갖고 있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캐주얼부터 슈트까지의 모든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자전거. 전량 영국에서 생산하며 품질을 유지하려는 고집. 초창기 설계 그대로 여전히 생산하는 역사성과 문화적 배경까지. 브롬톤을 산다는 건 사실상 문화의 일부가 되는 것과 같다. 전기 모터가 없는 브롬톤도 이미 200만원대 후반부터 재질과 옵션에 따라 800만원대까지의 가격이 형성돼 있는 프리미엄 접이식 자전거였다.
하지만 반드시 접어야 해? 내 자전거만 타야 해? 일상의 이동수단 자체에 초점을 맞춘 자전거를 즐기고 싶다면 따릉이의 존재도 소중하다. 서울시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에는 우스개가 섞여 있지만, 따릉이 이전의 자전거 생활과 이후의 자전거 생활에는 또렷한 양적, 질적 차이 또한 있을 것이다. 2019년 서울시가 운영하는 따릉이는 총 2만9500대였다. 2024년 현재 4만5000대로 늘었다. 평지가 많은 송파, 강서, 영등포 등지에서의 따릉이 수요는 특히 고무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를 두 바퀴로 이동하는 스펙트럼은 이렇게나 넓고 다양하다. 가격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하나같이 편리하고 자유로우며 재미있다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단,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는 꼭 드리고 싶다. 스쿠터든 자전거든 안전장비들을 충실하게 갖추시기를. 처음으로 스쿠터를 타려는 분은 전문가가 운영하는 바이크 스쿨에서 제대로 배우시기를. 아는 형이나 오빠에게 배우고 타기에 서울 같은 자동차 위주의 도시는 여전히 위험하기 때문이다. 효율도 재미도 낭만도, 일단 안전을 챙긴 후에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라서다.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처럼 가볍게>를 썼다.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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