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가 경제를 지배할 때…프랑스 조기총선의 나비효과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프랑스는 경제 대국이다. 프랑스의 GDP는 2조7000억 달러 규모로, 세계 7위 수준이다. EU 회원국 가운데 독일(4조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프랑스 하면 명품과 관광이 떠오르지만 전체 경제에서 제조업이 자치하는 비중도 19%에 이를 정도로 균형 잡힌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거 소수의 대기업에 의존하던 경제구조였지만 최근 다양한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점차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프랑스는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부활시켰다. 인공지능,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프랑스의 점유율을 높이고 독자적인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 규모 7위에도 재정 적자 허덕이는 프랑스
프랑스 경제의 취약점도 있다. 바로 재정 적자다. 5월31일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2013년 이후 처음으로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2023년 재정 적자가 GDP의 5.5%에 이르면서 정부 부채가 GDP 대비 109%에 달했다. 2027년에는 GDP의 112%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 신용등급 하향의 이유였다.
프랑스는 2027년까지 공공부문의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낮출 것임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신용평가기관의 판단은 달랐다. 현실적으로 달성이 어려우리라고 본 것이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지난 3월 발표한 중간 전망에 따르면, 2024년 GDP 성장률은 0.8% 정도로 2023년(0.9%)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5년 이후 1.5%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신규 주택 착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 대표적 지표다. 무역적자도 2023년 1000억 유로(약 148조원)에 이르면서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 의회 선거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전격적인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결정으로 프랑스는 혼란에 빠졌다. EU 의회 선거에서 극우 세력으로 분류되는 국민연합(RN)이 3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최다 득표 정당으로 올라서자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정당에 반대하는 세력이 자신에게 집결할 것을 기대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좌파 정당들이 신인민전선(NFP)을 결성하고 독자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은 어그러졌다. 6월30일 1차 선거와 7월7일 2차 선거가 치러지는데 6월26일 기준으로 국민연합이 36%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신인민전선이 27%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앙상블은 2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1차 선거 이후 지역구별로 진행될 합종연횡에 따라 국민연합 또는 신인민전선이 1당이 되어 총리직을 담당하는 것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에 빠진 우파, 지출 늘리려는 좌파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은 정부 지출 확대와 감세를 조합한 포퓰리즘적 정책을 통해 지지세를 굳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연합은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에너지 및 자동차 연료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세율을 현행 20%에서 5.5%로 낮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추진의 일환으로 높아진 연료비로 인해 고통을 겪은 저소득층이 주도했던 노랑조끼운동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에 대해서는 10% 이상의 급여 인상을 독려하기 위해 해당 기업의 분담금을 면제하고, 30세 이하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를 감면하는 등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당연히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 국민연합 측은 우선 이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 관련 사회보장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매년 EU에 납부하는 기여금을 현행 216억 유로(약 32조원)에서 180억 유로(약 26조원) 수준으로 줄여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공약이 실제 실행될 경우 2026년까지 연간 재정 적자 규모는 GDP의 6.4%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련 전문기관은 예측하고 있다.
신인민전선의 경우 마크롱 대통령이 단행한 연금 개혁을 중단하고 최저임금 14% 인상과 240억 유로(약 35조원) 이상의 예산을 지출해 에너지 가격 및 기본 식품 등 필수 품목에 대한 가격 안정을 달성한다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공립학교 급식과 학용품 무상제공 등을 포함한 각종 복지 대상 확대에 따라 2024년 250억 유로, 2050년 1000억 유로, 202년 1500억 유로의 추가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한데 이를 고소득자와 금융기관 및 대규모 자산 보유 기업에 대한 증세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폐지되었던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고 상속세를 인상하며 단일 세율로 변경된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에 다시 누진제를 적용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거둔 기업에 대해 법인세 외에 추가적인 과세를 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기업과 부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늘린다는 비판에 대해 2023년 프랑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40대 상장기업이 주주에게 배당한 금액이 1000억 유로(약 148조원)에 이르고 있어, 이를 국가가 세금으로 징수할 경우 재원에는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연합과 신인민전선이 주도하는 선거 흐름에 대해 프랑스의 경제계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국민연합이 승리할 경우 비논리적이며 일관성 없는 다수의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정책 간 상충 및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신인민전선이 승리할 경우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과 정부 지출 확대로 인해 다시 인플레이션이 가중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안정적 재정 운용에 대한 신뢰성이 약화될 경우 프랑스가 발행하는 국채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면서 금리가 인상되는 점 역시 큰 악재로 지목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결정 이후 프랑스 국채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향후 국채 발행에 따른 비용 부담이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GDP 대비 세금 비율이 47% 수준으로 가장 높은 상황에서 국채 발행 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과거 좌우 동거정부로 인한 정책적 갈등과 집행능력 상실을 여러 차례 경험하면서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의회의 임기를 맞춰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노선을 유지하도록 했지만 이번 선거로 다시 동거정부의 등장은 불가피해졌다. 유럽 전체의 정치·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는 향후 EU의 정책에 대해서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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