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플레이션' 물가‧성장의 복병 될라 [양재찬의 프리즘]

양재찬 편집인 2024. 6. 29. 1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양재찬의 프리즘
기상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
이른 폭염에 농산물 가격 치솟아
전세계 히트플레이션 우려 고조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전반 악영향
기상이변 사실상 막기 어렵지만
피해 최소화 위한 대책 마련해야
신품종 개발 · 유통구조 개혁 필요
기상 이변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정부, 정치권, 민간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사진=연합뉴스]

2024년 6월 19일은 기상관측 이래 6월 중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경북 경주는 기온이 한때 37.7도까지 치솟았다. 이틀 뒤 21일 서울에서 밤 기온이 섭씨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올여름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열대야는 지난해보다 일주일 이르고, 1907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빨랐다. 6월 중 열대야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나타났다.

더위는 잠을 설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 이른 폭염 탓에 농산물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시금치 도매가격이 한달 새 86% 올랐다. 고온에 취약한 상추류 가격이 180% 급등했다. 대파 값도 50% 상승했다.

올여름 역대 최강의 폭염이 예고되면서 농식품발發 물가불안이 고개를 들고 있다.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로 인한 충격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히트플레이션(heat·열+inflation)'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히트플레이션이 만연하면 정부가 목표로 잡은 2%대 물가안정은 물 건너간다.

폭염이 몰고 올 피해의 전조는 날씨 통계로 가늠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6월 들어 20일까지 폭염 일수(2.4일)는 평년 6월 한 달 폭염 일수(0.6일)의 4배에 이르렀다. 하루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폭염일수도 종전 2018년 6월 기록(1.5일)을 능가했다. 예년 평균기온이 21도였던 6월에 30도를 넘나드는 때 이른 폭염으로 올해가 역대 가장 뜨거운 6월이 됐다.

폭염은 농산물 생산 감소 및 품질 저하, 병해충 확산, 토양환경 변화, 수자원 불균형 확대, 재해로 인한 재배시설 붕괴 등을 초래한다. 역대급 초여름 폭염은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농사 성패를 좌우할 강수량도 올 7~8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더 많을 확률이 각각 40%다. 폭염이 길어지면 '농산물 공급량 급감 → 물가 급등 → 서민 가계 고통'의 악순환이 지속할 수 있다. 지난해 작황 부진으로 올해까지 치른 '금사과' '금배' 파동의 재연도 우려된다.

이른 폭염으로 인한 작물 피해는 세계적 현상이다. 가나, 나이지리아 등 코코아 주산지인 서아프리카 지역이 최근 극심한 가뭄과 폭염에 시달렸다. 코코아가 주원료인 초콜릿 가격이 급등한 이유다. 국내 제과업체는 초콜릿이 포함된 제품 값을 10% 넘게 올렸다. 올리브유 등의 원료 수급도 불안하다. 식품 원자재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글로벌 이상기후와 농산물 생산에도 신경써야 한다.

폭염은 정상 제품 운송에도 타격을 입힌다. 괜찮은 수확물이 장거리 해상 운송 중 시들거나 부패된다. 그 결과 운송비와 농산물 가격이 동반 상승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이 0.4~0.5%포인트 높아진다. 게다가 그 영향이 6개월 정도 지속된다. 물가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히트플레이션이 덮치면 물가안정은 그만큼 더 멀어진다.

폭염이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도 주시해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폭염으로 2030년까지 매해 전 세계 총노동시간의 2% 이상이 감소해 2조4000억 달러의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ILO는 농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정규직 일자리 8000만개가 날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송 업무 제한과 온열질환 민감군의 작업 규제 등 영향을 감안해 이같이 분석했다.

폭염으로 인해 210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020년 대비 18%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 있다. 폭염이 고용에다 경제성장까지 가로막는 복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처럼 이상기후는 물가뿐만 아니라 일자리와 경제성장, 민생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다.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줄일 중장기 전략과 종합대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굼뜨기 짝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을 웃돈 지 2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기후변화 대응팀을 꾸려 연말까지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내놓기로 했다.

폭염으로 인해 2100년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이 2020년 대비 18% 정도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사진=뉴시스]

해외 농산물 수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들도 세계적인 이상기후에 직면해 생산이 줄어드는 상황이다. 국내 농산물 생산 및 유통 체계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높은 온도에 견디는 신품종을 개발하고, 수급예측 능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도매법인 등 중간상인이 이득을 보고,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전근대적 농산물 유통구조도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

폭염에 노동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연근무제 등 탄력적인 근로를 권장하는 것도 긴요하다. 정부와 국회는 관련 노동법규를 이에 맞춰 정비해야 할 것이다. 기상 이변을 원천적으로 막기는 어려워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정부와 정치권, 민간이 폭염 충격 예방과 극복에 지혜와 힘을 모을 때다. ​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