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운 적 없는 폐암 환자, 방치되고 있다?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비흡연자들이 폐암 진단을 받는 사례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 등에서 비흡연 남녀가 폐암에 걸리는 사례는 전체 폐암 환자의 15~20%로 추산된다. 특히 비흡연 폐암 환자의 약 3분의 2는 여성이다.
하지만 미국 건강포털 '웹엠디(WebMD)'에 따르면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암검진 대상에서 빠져 있다. 국내서도 비흡연자들은 폐암 검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국내 국가 암검진 대상자는 54~74세 남녀 중 폐암 발생 고위험군에 한정돼 있다. 이들은 2년마다 한 번 검진을 받아야 한다. 건강당국은 폐암 발생 고위험군으로 '30갑년[하루 평균 담배소비량(갑) x 흡연 기간(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흡연자 중 일부'를 지정했다. 해당연도 전 2년 내 일반건강검진 문진표로 금연치료 흡연력과 현재 흡연 여부가 확인되는 사람, 건강보험 금연치료 참여자 중 사업 참여를 위해 작성하는 문진표로 흡연력 확인되는 사람(해당연도 전 2년 내 문진표)'이 이에 해당하는 고위험군이다. 비흡연자는 관심 대상에서 빠져 있다.
미국 비영리 폐암옹호지원 단체인 '브레스 오브 호프 켄터키' 설립자인 여성 린디 캠벨은 2017년 12월 폐암 진단을 받았다. 캠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담배를 입에 물어본 적이 없다.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는데도 폐암에 걸린 사람을 직접 만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심한 고립감을 느끼다가 폐암 지원 단체를 직접 만들게 됐다. 그가 켄터키주에서 만난 비흡연 폐암 환자 20명 이상 가운데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여성이었다. 캠벨은 간접흡연에 노출된 적이 있다. 그는 "흡연자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 9명 중 두 명만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나는 막내이고 폐암에 걸린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간접 흡연 외에 주방 연기(조리흄), 석면, 라돈가스, 중금속, 디젤 배기가스 및 대기오염 등도 폐암의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예전엔 흡연을 폐암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비흡연자, 즉 평생 담배를 피운 적이 전혀 없거나 담배를 100개비 미만 피운 사람에게서 전체 폐암의 약 15~20%가 발생한다. 특히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도 폐암에 많이 걸린다. 미국 시애틀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 앨리스 버거 박사(연구원)는 "비흡연자 폐암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이런 특이한 현상은 여성과 남성의 면역체계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변이, 호르몬, 대기 오염이나 라돈과 같은 환경 요인 등을 조사 분석 중이다.
워싱턴대 의대 라마스 고빈단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폐암에 걸린 비흡연자 중 78~92%가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약물에 반응하는 '표적 가능한' 유전자 변화나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를 갖고 있다. '표피 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는 특히 비흡연 여성에게 흔히 나타난다. 고빈단 교수는 "폐암에 걸린 비흡연자는 생체표지자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검사로 어떤 면역치료제에 반응을 보일지 일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생체표지자는 후천적으로 생긴 것이다. 비흡연자 중 약 5~6%만이 폐암에 걸릴 위험이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는 경향이 있다.
예일대 의대 로이 허브스트 교수(종양학, 암센터 및 소아암병원 종양학 책임자)는 "비흡연자이고, 표적 돌연변이가 있는 폐암 환자는 먹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환자의 약 70~80%는 종양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암 치료제에는 화학 항암제(세포독성 항암제), 표적 항암제, 면역 항암제 등 세 가지가 있다.
캠벨은 오른쪽 폐에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1년 뒤 폐 왼쪽 엽에서 결절 몇 개가 발견됐다. 이는 암으로 발전했고 2020년 재수술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 결과,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EGFR 엑손-19 결실)가 발견됐다. 이후 그는 오시머티닙(상표명은 타그리소)이라는 표적치료제를 투여하고 있다. 암세포가 폐 밖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흡연자는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그러나 매년 시행되는 폐암 검진이 특정 고위험군에게만 권장되는 건 문제다. 캠벨은 "미국에서 매년 진단을 받는 폐암 환자 23만 명 중 약 20%가 비흡연자다. 엄청난 숫자의 이들에게도 암의 조기 발견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흡연자의 폐암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을 강력히 촉구했다.
폐암의 초기 증상은 거의 없거나 모호하다. 하지만 마른 기침이 계속되고 피를 토하는 기침, 쉰 목소리, 숨가쁨, 가슴이나 옆구리 통증, 뼈 부러짐 등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있고 특히 가족 중에 폐암 환자가 있다면, 서둘러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폐암 진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영섭 기자 (edwdkim@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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