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시추한다는 윤석열 정부, '기후 방해꾼' 되려 하나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2024. 6.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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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發光] 탈탄소 에너지 전환의 핵심, 화석연료 땅속에 그대로 둬야

지난 6월, 미국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연례행사인 하원의원 친선 야구 경기가 열리는 워싱턴 내셔널스 홈구장에 몇몇 청년들이 난입해 체포됐다. 그저 그런 훌리건이 아니라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시대를 끝내라는 주장을 펼친 '기후저항' 소속 활동가들의 퍼포먼스였다. 출전하는 선수 중에는 화석연료 개발을 적극 찬성하는 여야 의원들도 있고, 경기를 후원하는 기업 중에는 화석연료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딱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많은 관중에게,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스포츠 방해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자선 행사와 친목 도모를 겸하는 정치적 행사에 정치적 주장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편견이지 않을까. 관중석에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를 규탄하는 피켓 시위도 있었을 정도로 워싱턴 정가와 국회의원 스포츠 행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이면에 '에코사이드(ecocide; 생태 학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2023년 10월 개전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폐기물 투기, 상하수 시설 파괴, 식수원 차단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에코사이드를 서슴지 않아 왔다. 최근 무차별 공습으로 토지, 지하수, 대기, 해양 오염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나아가 군사 활동과 전쟁으로 기후위기가 가중되고 기후위기에 적응할 방편으로 군사주의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군사 부문에 대한 국제적 통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전 세계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5.5%로 추정되며, 미국 군사 부문 배출량의 20%는 걸프 지역의 화석연료를 보호하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행 유엔기후레짐에서는 군사 부문의 온실가스 인벤토리가 불투명하고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다. 군사주의와 기후위기의 악순환 메커니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제노사이드로 주목받고 있다.

2023년 10월 이후 최근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군사 작전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300~400만 톤을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기후붕괴가 심각해지면 거주 불가능한 팔레스타인은 결국 '킬 존(kill zone; 살상지대)'의 선례가 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봉쇄와 통제 기술은 기후 베헤모스(Climate Behemoth; 세계적 중앙 권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각국이 자본주의에 몰입하는 기후위기 시대의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다.

탈탄소 에너지 전환의 핵심 중 하나는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를 땅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미국 기후환경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여전히 메이저 석유가스 개발사들이 '기후 카오스'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1.5도 제한 목표는 달성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쉐브론, 엑손모빌, 쉘 등 메이저 기업에 대한 지표 평가에서 대부분 "불충분"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에 사용된 원유 공급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암담한 분위기는 우리나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동해가스전(1998년 탐사시추 완료, 2004년 상업 생산, 2021년 생산 종료)으로 95번째 산유국이 된 적이 있다(해저 파이프라인 통해 천연가스와 초경질원유 육상으로 이송·처리). 최근에는 탄소포집저장(CCS) 실증사업이 폐광된 동해가스전에 추진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 및 자원외교의 실패로 관련 사업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최근 윤석열 정부와 한국석유공사의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시추 계획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여러 쟁점이 있겠지만, 본질은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최악의 개발사업, '기후 빌런'이라는 데 있다. 설사 막대한 수준으로 매장량이 확인되더라도 좌초자산일 뿐이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9조(자산손실 위험의 최소화 등)를 적용해야 할 판이다. 무엇보다 2020년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2050년 탄소중립 전략과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역행한다. 그리고 내년에 제출할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후 방해꾼'에 맞서기 위해서는 '공공재생에너지'라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주권에서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기후 국회'와 '탈핵 국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뜨겁지만, 국내외적으로 사정이 녹록지 않다. 당장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건으로 큰 전투가 발생할 것인데, 해당 상임위가 보고받는 것 말고는 국회가 마땅히 개입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계획 폐지론'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등 기묘한 '허수아비 때리기'가 횡행한다. 계획 수립의 목표, 방법, 과정에 대한 비판이 한편에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계획 존재 자체, 그 역할과 기능에 대한 부정이 존재한다. 전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포기하고, 여기에 국가, 사회, 정치에 대한 인식론적 편견이 더해지면서 자유시장과 전문기관에 맡기면 된다는, 익숙하지만 안일한 주장에 빠진다. '자유'와 '전문성'의 의미와 범위 그리고 형태와 방식을 결정하는 것의 다른 이름이 '정치'다. 만약 '계획 폐지론'과 함께 '국회 폐지론'을 주창한다면, 일관성 하나는 인정할 수 있겠다.

국제적 흐름도 좋지 않다. 유럽의회(2024~2029년) 선거 결과, 유럽 보수·극우의 영향력 확대가 유럽의회(2019~2024년)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치 지형의 변화, 사회 갈등의 격화, 안보 불안 심화, 그리고 화석·배출 자본의 저항 속에서 유럽의 중도 정당도 정책 퇴행에 동참하고 있는 모양새다. 유럽이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을 선도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슈퍼 선거의 해'의 선택, 특히 6~7월 프랑스 조기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2030 국제기후레짐의 기본 구도가 재설정될 수도 있다.

'기후 방해꾼'은 도처에 있다. 전환의 지향과 논리가 다르더라도 대화가 풍부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대화하면 할수록 대화를 왜 하는지, 더 멀어져 가는 경우가 있다. 대화가 필요하지만, 대화의 기술도 필요하다.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배럴 규모의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대표가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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