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도, 와인도 익어가는 계절···영동에서 맛보는 달큼쌉쌀한 휴식
“옛날 마을 어르신들은 잘 익은 머루에 누룩 한 주먹, 설탕 한 움큼을 넣어 가양주를 빚었어요.” 영동에서 3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덕현 대표는 서양 와인처럼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과실주 제조 전통이 이어져 왔다고 했다. ‘물 건너온’ 와인 못지않게 토종 포도주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영동은 국내 대표 와인 생산지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가 적게 와 포도가 영글기 좋다. 당도 높은 포도 덕에 와인의 풍미 또한 깊다. 영동군은 와인과 과일을 앞세워 ‘힐링투어’를 내걸었다.
와이너리 체험···와인 매력에 퐁당
충북 영동은 우리 땅 중앙에 있다. 중부 내륙 추풍령에 기댄 영동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다. 맛있는 과일을 내는 이유다. 영동은 과일주를 빚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동에만 34개의 와이너리가 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한다.
그중 1965년부터 포도 재배와 가양주 제조를 시작한 ‘컨츄리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김덕현 대표는 할아버지인 고 김문환·아버지 김마정씨에 이어 3대째 와인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태평양 미크로네시아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스페인 군인들에게 포도와 와인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던 할아버지는 공직생활을 마치고 포도를 심기 시작했고, 현재 와이너리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컨츄리 와이너리 건물은 유럽의 작은 성처럼 이국적인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유럽 시골 와이너리로 여행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이너리에서 포도와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발효실·숙성실·포장실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컨츄리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와인의 특징으로 인공보존제를 쓰지 않는 점을 꼽았다. 와인 산화방지제로 쓰는 이산화황(SO2)과 보존료(소브산)를 쓰지 않고 저온살균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해외 와이너리에서도 이산화황을 줄이거나 쓰지 않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2층에 마련된 라운지에서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컨츄리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 4종을 맛볼 수 있다. 직접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음했더니 와인의 맛과 향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와인애호가는 물론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경험이었다..
경기·경상·전라도에서 차로 2시간30분 ‘힐링관광지’
영동군은 과일, 와인, 자연을 앞세워 힐링 관광 코스를 내놓았다. 영동군 관계자는 내륙 깊숙이 있는 지리적 특성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동에서 전국 주요 도시까지 거리는 200㎞ 남짓으로 경기·경상·전라도와 모두 가깝다. 영동에서 서울(200㎞), 부산(220㎞), 광주(180㎞)까지 차로 2시간30분 거리다.
영동군은 지리적 장점과 영동만의 특색을 발굴해 충청 대표 힐링 관광지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영철 영동군수는 지난 21일 언론사 초청 행사에서 “한때 12만명에 달하던 영동 인구가 4만명대로 줄었다”며 “포도, 와인, 국악 등을 테마로 한 축제와 함께 힐링관광지를 조성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영동을 방문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2027년까지 연간 관광객 200만명 달성’이라는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레인보우 힐링관광지는 영동와인터널, 과일나라 테마공원, 레인보우 힐링센터, 복합문화예술회관, 일라이트 휴양빌리지 등으로 구성됐다. 영동와인터널은 와인의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영동읍 골짜기에 길이 420m의 인공터널을 만들었다. 포도, 와인, 오크통을 형상화한 입구부터 포도 산책로, 와인 문화관, 영동·세계 와인관, 과일정원 이벤트홀, 포토존, 영화 속의 와인, 와인 체험관, 환상터널 등이 이어진다.
와인 저장고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현재 포토존으로만 쓰인다. 와인 체험관에서는 영동의 대표 와인들을 시음해볼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와인터널을 걸으며 인생사진을 남기기 좋다.
영동와인터널에서 차로 5분 거리엔 과일나라테마공원이 있다. 국내 유일의 과일테마공원으로 영동군 5대 과일 밭이 조성돼 있다. 계절에 따라 자두, 복숭아, 포도, 사과, 배 등 과일수확 체험도 가능하다. 토스트, 쿠키, 피자 등의 요리체험과 과일주스 만들기, 잼 만들기 등의 체험도 운영된다. 213종의 아열대 식물이 자리한 ‘레인보우 식물원’, 실제 바나나 나무와 열매를 볼 수 있는 ‘바나나 나라’ 등 볼거리도 많다.
영동 빛·바람·물·돌로 힐링해볼까
지난해 7월 개관한 영동 레인보우 힐링센터는 영동 ‘힐링관광’의 중심이다. 빛, 바람, 물, 돌 등 영동의 자연을 녹인 건축물에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지하 2층 어린이힐링뮤지엄은 인구소멸 지역인 영동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고자 기획됐다. 책 놀이터, 거대한 ‘피자 도우’ 놀이공간, 볼풀 놀이터 등으로 꾸며졌다. 기획 의도처럼 주말마다 세종, 대전 등 인근 도시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여름에는 레인보우 힐링센터 앞 광장이 거대한 분수 물놀이 공간으로 변신한다.
계단을 따라 지하 1층으로 올라오면 중정을 통해 빛이 쏟아진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힐링숲정원과 바깥채에 해당하는 모든 공간이 중정을 통해 연결되고, 다시 바람의 계단으로 이어진다. 힐링숲정원에서는 편하게 앉아 독서를 즐길 수 있고, 안쪽에 조성된 힐링풋스파존에서는 족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다.
1층부터는 본격적으로 웰니스존이 펼쳐진다. 개인힐링존은 편백, 참숯, 일라이트 등의 테마로 꾸며진 공간이다. 영동군에 세계 최대 규모로 매장돼 있는 광물 ‘일라이트’를 활용한 평상에서 따뜻하게 몸의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다. 2층에는 명상의 연못, 힐링정원이 펼쳐진다.
또 현대미술가 리경 작가가 영동군에 머물며 자연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빛으로 담아낸 설치미술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영동의 대지, 바람, 산을 모티브로 꾸며진 공간은 ‘포토스폿’으로 유명하다.
3층 다목적홀에서는 요가, 명상 등 웰니스 수업이 열린다. 이곳에서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바람의 계단을 통해 옥상정원에 다다른다. 달콤한 과일과 향긋한 와인을 키운 영동의 하늘, 햇살, 바람이 쏟아지며 달큼하게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준다.
☞알고 가세요 / 컨츄리 와이너리 체험료는 1인 1만5000원이다. 와인 시음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영동역에서 와이너리 인근 조현 정류장까지 20분 정도가 소요되며 541, 544, 610번 등 22대 버스가 운행된다.
영동와인터널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입장권을 사면 터널 안에서 와인 시음을 해볼 수 있다.
과일나라 테마공원 관람은 무료다. 7월 자두를 시작으로 8월 초 복숭아, 8~9월 포도, 8~10월 사과, 10월 배 수확 체험을 할 수 있다. 수확체험 프로그램은 ㎏당 2000원이다. 체험 예약은 불가하고 선착순 현장방문 접수만 받는다. 요리체험은 체험 5일 전 전화예약(043-740-3657, 3652)을 해야 한다.
레인보우 힐링센터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한다.
영동|글·사진 |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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