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보니] 송전탑 세워진 지 10년···"마을 공동체가 파괴됐어요"

윤영균 2024. 6. 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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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주민 이은주 씨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공동체가 파괴된 지역은 깨진 접시와 같아요. 절대 다시 합쳐질 수가 없는···" "한전과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주민한테 받은 상처가 저희는 더 심해요"

2014년 7월 21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345kV 송전탑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강하게 반발하던 주민들이 세운 고공 농성장이 철거됐고 반대 주민들은 공사 방해를 이유로 억대의 소송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평화롭던 마을에서 가까이 지내던 이웃들이 둘로 완전히 갈라졌고, 그 상처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반대 주민 대표를 했던 이은주 씨를 만나 그동안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환자가 생겼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공동체가 파괴된 지역은 깨진 접시와 같다고, 절대 다시 합쳐질 수가 없는···"

"한전과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주민한테 받은 상처가 저희는 더 심해요"

<2014년 7월21일 NEWS DESK>
한국전력이 오늘부터 청도에서 송전탑 건립 공사를 재개했습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가고 9명이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에 사는 주민 이은주입니다.

Q. 삼평리 송전탑이란?
우리 마을을 지나가는 송전탑은 신고리 3, 4호기에서 송전되는 전기로 밀양에 76만 5천 볼트 송전탑을 따라오다가 여기 창녕 지나가는 곳에 북경남 변전소가 있어요. 거기에서 1분기, 2분기로 나뉘어서 1분기는 우리 청도 쪽으로 오고 2분기는 달성군 쪽으로 가는 34만 5천 볼트짜리 초고압 송전선로입니다.

Q. 강제집행 당시 상황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조금씩 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 한전이나 경찰관들에 의해서 회유가 되어서, 한 분 한 분 찬성은 안 했겠죠, 그런데 적극적인 반대는 안 하면서 그렇게 한 분 한 분 (반대 모임에서) 나가시고 결국에는 2014년, 그때부터 저희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는데 (2014년) 7월 21일 새벽 5시에 강제집행이 되었어요.

그때부터는 할머니들하고 아스팔트에서 생활하면서 계속 한전과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한전의 힘으로 저희 주민들이 꺾이게 되었죠.

Q. 송전탑 건설 반대한 이유는?
34만 5천 볼트 (송전탑이) 세워진 지역에 답사도 가고 했어요.

가니까 그쪽에 있던 주민들이 의학적으로나, 법적으로 증명은 할 수 없지만 송전탑이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환자가 생겼고 앞으로 송전탑이 들어서는 지역은 어떻게든지 적극적으로 반대해야지 주민이 그 마을이 살아난다고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이 북경남 선은 지금 당장 전기가 필요해서 세워지는 철탑이 아니고 미래를 두고 예비 전력을 위해서 세워진다고 그렇게 알게 되었거든요?

지금도 보면 밀양에서는 20 몇 프로의 송전밖에 지금 안 된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송전탑은 예비로 할 것 같으면 굳이 이렇게 무리하게 그 시골 주민들을 짓밟으면서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마을 분위기는?
저희 마을이 예전에는 10년 전에는 정말 한 가족같이 그렇게 생활했는데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지는 데 같이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가면서 그냥 조용히 나가는 게 아니고 반대하고 있는 사람한테 다 원망하고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었는데 이게 다 우리 주민들이 나쁜 게 아니고 한전이나 주위에 경찰들이나 이런 분들이 아마 우리 마을 주민들을 많이 회유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지나가면 그냥 약간 눈인사 정도 할 정도고 마을회관에 어떤 행사가 있어서 찾아가게 되면 그 분위기 자체가 왜 왔냐 왜 왔냐 그런 식으로 시선 자체도 그렇고 또 할머니들만 가시면 거기에 있던 분들이 마을에 회관에 있던 분들이 그냥 다 나가신대요.

그 할머니들이 그런 걸 한 번 두 번 상처를 받다 보니까 마을회관 가는 자체, 가기 싫은 게 생기고 국가 공권력에 의해서 공동체가 파괴된 지역은 깨진 접시와 같다고 생각해요. 절대 다시 합쳐질 수가 없는, 그런 보이지 않는 그런 선이 딱 그어져 있더라고요.

그게 한전과의 싸움보다는 오히려 주민한테 받은 상처가 저희는 더 심해요.

(마음고생 많으셨겠네요?)

저희도 그러잖아요. 우리 할머니들이 정말 너무너무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Q.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당시 반대할 적에는 제가 그냥 마을을 위해서 이게 해로운 거니까, 너무나 초고압 송전탑이어서 마을을 위해서 반대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반대했다면 지금 상태로 또 그때 당시로 돌아간다면 이 초고압 송전탑이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고 그걸 알고 거기에 대한 피해가 어떤 건지를 알게 됐기 때문에 더 열심히 반대할 것 같아요.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힘들었을 때가 7월 21일에 강제집행 되었을 적에 첫날 새벽 5시에 연락을 받고 나왔는데 한 7시 정도 돼 가지고 그때 당시 앞장섰던 주민 몇 명과 연대자들은 다 연행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 연행되었을 적에 왜 연행됐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앞에 있다고 연행되었는데, 그리고 나서부터는 연행되었다가 오고 나서부터는 그 더운 여름을 아스팔트 위에서···

저는 할머니들 얘기만 하면 자꾸 눈물이 나와서···

그 뜨거운 아스팔트 할머니들이 매일 나와서 한전과 싸웠거든요?

그때가 가장 힘들어요. 한전과 싸우는 게 힘든 게 아니고 할머니들이 그 아스팔트 위에 나와서 한전과 싸우는 그걸 지켜보는 자체가 진짜 힘들었어요.

Q. 정부에 바라는 점은?
앞으로도 삼평리와 밀양과 같은 마을이 얼마나 더 생겨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부에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렇게 마을을 파괴하면서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말이 마을 공동체 파괴지 그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소수의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한전하고 싸우는 거는 오히려 그냥 한전이니까 기업이니까 그거는, 기업과 싸우는 것보다는 마을 주민과의 싸움이 너무 힘드니까 진짜 그런 건 안 하게 해주셨으면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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