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의 추락과 19년 만의 유턴이 알려주는 것[딥다이브]
지난 1월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737맥스 9 항공기가 운행 중 덮개가 뜯겨나갔던 사고, 기억하시나요. 보잉 항공기 안전 흑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는데요. 바로 그 문제의 동체를 만든 기업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를 보잉이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인수가격이 주당 35달러가 될 거라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는데요.
이를 두고 보잉이 뼈아픈 실책을 19년 만에 바로잡게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인수하려는 스피릿이 바로 2005년 보잉이 분사시킨 조직이기 때문이죠. 보잉은 어쩌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게 됐을까요. 보잉 위기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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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보잉이 어쩌다가…
지난 1월 5일 오후 5시 승객 171명이 오리건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맥스 9 항공기에 탑승했습니다. 이륙 10분 만에 비행은 악몽이 됐죠. 4900m 상공에서 비상구 덮개가 떨어져 나가 항공기 동체에 구멍이 뻥 뚫렸고, 승객들의 휴대폰과 모자가 빨려 나갔고, 산소마스크가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항공기는 무사히 착륙했지만 ‘미국의 아이콘’ 보잉의 추락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였는데요.
훨씬 더 치명적인 사고는 수년 전에 이미 벌어졌죠. 2018년 인도네시아, 2019년 에티오피아 항공기의 연쇄 추락사고로 총 346명 탑승객 전원이 숨졌는데요. 모두 보잉 737 맥스8 기종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이란 소프트웨어 오작동이 원인이었죠.
그래서 당시에도, 지금도 되풀이되는 질문은 이겁니다. 한때 위대했던 항공기 제조기업 보잉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나요?
기술보다 돈, 문화가 달라지다
‘보잉이 아니라면 가지 않겠다(If it ain‘t Boeing, I ain’t Going)’. 보잉의 항공 엔지니어링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 주는 슬로건이죠. 보잉은 한때 안전의 대명사로 통했습니다. 동시에 ‘엔지니어의 회사’였죠. 최고의 항공기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가족 같은 노조원 엔지니어들은 단결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론 엡스타인 애널리스트는 당시 보잉이 “엔지니어들의 고급 교회 같은 회사”였다고 설명합니다.
엔지니어 입장에선 일하기 참 좋은 회사였지만 경영진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1990년대 초반 보잉은 ‘게으른 B(Lazy B)‘라고 불렸습니다. 제조 현장에 노는 인력이 너무 많아 비효율적이란 뜻이었죠. 그 결과 보잉의 최첨단 항공기는 품질은 최고이지만 너무 비싸졌습니다. 치열한 요금경쟁을 벌이던 항공사들 입장에선 선뜻 사기 부담스러웠죠. 바로 그 시기 경쟁사인 프랑스 에어버스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보잉의 절대적 지위가 흔들렸습니다. 보잉엔 분명 뭔가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리더십이 바뀌면서 아늑했던 분위기는 와장창 깨집니다. 합병 이듬해인 1998년 스톤사이퍼 COO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통보합니다. “가족처럼 행동하는 걸 그만두고 좀 더 팀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팀에 남지 못합니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향상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릅니다. 기술(엔지니어링) 대신 돈(재무) 중심으로 모든 게 재편됐죠. 2001년 본사를 시카고로 이전한 게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잉 엔지니어링의 중심인 시애틀에서 본사가 떠난 겁니다. (이후 2022년 보잉은 본사를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으로 다시 옮김)
기술과 품질보다 주주가치를 우선시하다니. 직원 반발이 컸지만 경영진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CEO에 오른 스톤사이퍼는 2004년 시카고트리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내가 보잉 문화를 바꿨다고 하는데, 그건 보잉이 훌륭한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닌 기업처럼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의도한 겁니다. 훌륭한 엔지니어링 회사지만 사람(주주)들은 돈을 벌고 싶어서 회사에 투자합니다.”
드림라이너 개발의 악몽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보잉 경영진이 찾은 답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더 많은 아웃소싱. 이는 GE의 전설적 경영자 잭 웰치의 가르침이기도 했고요. 당시 모든 경영자들이 부러워했던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의 성공 비결로도 꼽혔습니다.
그 결과, 보잉의 흑역사를 여는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바로 신형 항공기 787 드림라이너 개발이었는데요. 동체와 날개를 자체생산하던 이전 관행을 깨고 설계와 제조의 70%를 50개 넘는 외주사(1차 협력업체)에 맡기는 대담한 아웃소싱을 채택합니다. 부품은 미국은 물론 일본·프랑스·이탈리아·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생산됐죠. 이렇게 해서 ‘개발 기간을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개발비용은 100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단축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요.
787 드림라이너는 2011년 첫 인도 직후에도 연료 누출과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등 각종 사고를 일으킵니다. 공급망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마구 아웃소싱을 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두고두고 남았는데요.
사실 이런 사태를 정확히 10년 전에 예측한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보잉의 유명 엔지니어 존 하트 스미스가 2001년 보잉 내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인데요. 여기엔 ‘핵심 기술을 아웃소싱하는 건 극도로 위험하고 엄청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보잉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파트너사를 인수하게 될 것’이란 내용이 담겼습니다. 아울러 “모든 부가가치 작업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모든 이익을 아웃소싱하는 것과 같다”며 과도한 아웃소싱 의존을 직설적으로 비판했죠. 물론 경영진은 그의 주장을 무시했습니다. 당시 도이치뱅크 애널리스트는 이 논문이 “폭언에 가깝다”고 비판했죠.
가장 큰 아웃소싱의 결말
2005년 보잉은 역사상 가장 큰 매각을 진행합니다. 캔자스 위치타에 있던 항공기 동체 제조사업부를 사모펀드에 판 겁니다. 공격적인 아웃소싱 전략의 정점이었죠. 보잉을 항공기 설계·제조사에서 대규모 시스템 통합업체로 바꾸겠다는 게 경영진의 비전이었습니다. 이는 순자산 수익률(RONA)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분자인 수익을 늘리는 대신 분모인 자산을 아웃소싱으로 줄이는 거죠.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은 수익성이 높아진다며 환영했습니다.(참고로 에어버스는 항공기 동체 제작을 내부 자회사에 맡깁니다. 한때 분사를 검토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위치타 사업부가 지금의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입니다. 분사 뒤 스피릿은 에어버스 같은 보잉 경쟁사와도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있죠. 그래도 여전히 매출의 64%가 보잉에서 나올 정도로 보잉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는 보잉 역시 마찬가지이죠. 보잉의 모든 상업용 비행기의 전방 동체와 737맥스의 전체 동체를 스피릿이 생산하니까요. 두 회사는 서로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호 의존적 관계입니다.
자잘한 품질 문제가 불거지더니 결국 크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737맥스 항공기의 비상구 덮개의 고정 부품이 불량인 채로 동체를 납품했고, 그 덮개가 하늘을 날다 떨어져 나가버린 겁니다. 물론 애초에 잘못 만든 스피릿 못지않게, 이를 발견하고도 나사를 빼먹은 채 내보낸 보잉도 황당하죠.
그리고 이제 보잉은 스피릿을 다시 인수하려고 합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보잉은 현금이 아닌 자사 주식으로 스피릿을 인수할 계획이라고 하죠(현금이 쪼들림). 애초에 스피릿을 분사한 것 자체가 어리석었음을 인정한 셈인데요. 이르면 다음 주에 거래가 발표될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되찾으려면 둘이 다시 합칠 수밖에 없다는 건 업계 공통 의견입니다. 보잉도 지난 3월 낸 성명에서 “보잉과 스프릿의 제조 운영을 재통합하면 항공안전이 더욱 강화되고 품질이 개선되며 고객, 직원, 주주이익에도 도움 될 것”이라고 밝혔죠.
19년 만의 대반전입니다. 동시에 왜 이런 일이 더 빨리 일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이브 도즈 인시아드 경영학 교수는 유로뉴스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돌이켜보면 보잉은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 변화가 얼마나 야심차고 어려운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복잡하고 분산된 공급 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하는 품질관리 문제이죠. 보잉 스스로 만든 도전에서 스스로를 구출할 수 있을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입니다.” By.딥다이브
보잉의 아이러니는 이익을 열심히 좇다 보니 회사가 역사상 최악의 재무 상태에 빠졌단 점이죠. 여러모로 GE 생각이 많이 나는데요.(딥다이브 GE 잭 웰치 편 참고) 물론 그럼에도 보잉이 망할 가능성은 없다(민항기 시장을 에어버스와 과점)는 건 부럽기도 하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737맥스 항공기의 안전 문제로 위기에 처한 보잉. 한때 위대했던 이 기업의 위기는 27년 전 맥더널 더글라스와의 합병에서 시작됐습니다. 느슨한 엔지니어 중심의 회사가 주주가치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바뀌면서 안전보다는 비용 절감이 우선이 됩니다.
-대담한 아웃소싱이 시행됩니다. 2004년엔 신형 항공기인 787 드림라이너의 설계와 제작 상당 부분을 국내외 협력사에 70%가량 위탁합니다. 경영진은 개발비용을 40% 줄일 거라 장담했지만 실제론 엄청난 손해로 돌아왔습니다. 공급망 관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죠.
-이번 동체 구멍 사건은 2005년 항공기 동체 제조 사업부를 분사한 데서 시작됩니다. 이제야 보잉은 이를 바로잡겠다며 재인수에 나섰습니다. 바로잡는 데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제라도 돌이켜서 다행일까요.
*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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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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