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시대를 찌르는 명언 “태도가 리더십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을 남겼다. 24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와 관련해 “저는 오랫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태도가 리더십이다’라고 하는 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채 상병 1주기가 다가온다. 여당의 청문회 보이콧은 결코 잘한 일이라곤 할 수 없다. 원통한 젊은 죽음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라도 법제사법위원회 정청래 위원장과 위원들의 문제 접근 태도는 중요했다. 우 의장도 “그런 점에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부분들이 있다”며 “좀 더 겸손해야 된다”고 지적했던 거다.
●국회법대로?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나는 법사위를 법대로 진행했다”며 국회법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국회법 제 145조 (회의의 질서 유지)도 적어놓았다. 하지만 이 법 ②항은 위원장의 경고나 제지 조치를 따르지 않는 ‘의원’에 대해 위원장은 발언을 금지하거나 퇴장시킬 수 있다고 돼 있다. ‘증인’까지 퇴장시켜도 된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답변 기회를 달라”는 이종섭 전 국방장관에게 정청래는 자기 말에 토를 달았다는 이유로 10분 퇴장을 명령하며 “성찰하고 반성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하자 정청래는 “퇴장하라. 계속 그렇게 말한다면 퇴장시킨다고 분명 경고했다”며 10분 퇴장을 명령했다. 법사위원장이 아니라 일진이 학폭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23일 ‘채 상병 특검법’ 상임위 단독 처리를 두고 “막가파식 운영”이라고 비판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향해 정청래는 “추경호, 초딩처럼 이르지 말고 나에게 용기를 내서 직접 말해라”고 페이스북에 시퍼렇게 써놓았다. 정청래야말로 초등학교를 다시 다녀야할 것 같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1~2학년 성취기준이 ‘가족이나 주변사람을 배려하며 관계를 맺는다’여서다.
● 초등학교만 제대로 다녀도 민주시민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찾아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2학년까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도 우리는 훌륭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 1~2학년 국어 말하기·듣기 성취기준이 첫째 ‘중요한 내용이나 일이 일어난 순서를 고려하며 듣고 말한다’, 둘째 ‘바르고 고운 말로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듣고 말한다’(너무 강조하고 싶어 고딕으로 뽑았다)였다.
성취기준 해설에는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설정하였다’고 나와 있다. 사실 어른들도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해 타인과, 심지어 가장 가까워야 할 식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듣는 사람을 바라보며 말하기, 적절한 크기의 소리로 말하기 등을 학습한다’는 대목을 보니 억장이 무너진다. 정청래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름이 뭐예요?” 물었고, 군복을 입고 나온 장성에게 “어디서 그런 버릇이냐. 토 달지 말고 사과하라. 일어나라” 호통을 쳤다. 물론 국민 기대에 맞지 않는 답변이 나와 위원장이 화를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초등 3~4학년 국어 성취기준 중 하나가 ‘상황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예의를 지키며 대화한다’이다. 초등학교도 이 수준으로 배우는 게 목표인데 한참 못 미치는 국회의원들,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公僕·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은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
● 오만하고 박절한 대통령의 태도
우 의장은 태도란 무엇인지 설명하진 않았다. 국어사전엔 ①몸의 동작이나 몸을 가누는 모양새 ②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③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에 대해 취하는 입장으로 나와 있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는 딱 보면 대체로 안다.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말은 그래서 무섭다.
직장인에게 근태(근무태도)는 겁나는 단어다. 면역력 좋을 땐 큰 문제 안 될 수 있지만 면역력이 떨어지면 큰 코 다치는 게 바로 근태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1년 전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고위 공직자에 대한 근태감사를 공정하게 실시하라”고 감사원에 주장한 적이 있다. 감사원에서 자신만 콕 찍어 불법적 표적감사를 해서는 지각 등 근태 문제가 드러났다고 공개망신을 줬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이 집권 초 두세 달 빼곤 계속 30%대(심지어 최근 석 달은 20%·갤럽 여론조사)인 것도 상당부분 태도 때문이라고 본다. 2013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일약 국민스타로 떠올라 대통령까지 됐지만 지금은 부인한테만 충성할 뿐, 남에게는 박절한 대통령으로 비칠 뿐이다.
심지어 윤 대통령 참모 출신 인사는 26일 “윤 대통령은 다방면의 지식을 자신하지만, 특히 정무영역에서는 본인의 판단을 더욱 믿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고 내일신문이 27일자로 보도했다. 환장하겠다. 취임하자마자 대선과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준석 당 대표를 쫓아내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굴복시켜 총선을 말아먹고도 수직적 당정관계를 포기하지 못해 또 친윤 당 대표 후보를 출전시키고, 그런데도 자신의 정무적 판단을 더욱 믿고 있다고? 그래서 대통령의 태도가 오만하다는 것이다.
● “태도가 리더십”이 희망적인 이유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 안다. 그래도 “태도가 리더십”이라는 말은 희망적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정해져있는 신분보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 IQ나 실력이나 재력보다, 태도는 마음먹기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초등학교 도덕 교육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려, 사회·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정의, 자연과의 관계에서 책임’라는 핵심 가치가 중심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에게 성실, 남에게 배려는 나 혼자라도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태도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거다. 부자 부모 아래 태어나기, 강남 신축 아파트에서 살기, 디올 백 갖기는 내 힘으로는 내 생에는 할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성실하기,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태도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태도가 리더십이면, 나도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다음 대통령은 태도 보고 뽑기를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 편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줄 안다. 심지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아는지 막말하고, 조롱하고, 덤벼든다. 디지털공간에선 더 하다. 생각과 진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하늘 아래선 못 살겠다며 적군을 넘어 식민지 벌레처럼 죽이려 든다. 그때 그 청문회가 그랬다(어떨 땐 댓글도 그렇답니다^^;).
정청래가 암만 위원장 자리에 앉아 하늘을 쓰고 도리질한다 해도 태도가 리더십이다. 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그는 리더라 할 수 없다. 대인의 위대함은 소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고 했다. 꼭 대인이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다음번 대통령은 태도를 보고 뽑았으면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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