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혐오하는 당신 때문에 GDP 떨어진다"고 숫자로 입증한 경제학자

손효숙 2024. 6. 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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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식당, 병원, 공장의 생산이 매년 뚝뚝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이 나라들에서 성소수자들의 소득이 단지 성 정체성 때문에 불합리하게 감소했고 결국 국가 전체의 생산·소비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소수자 혐오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은 인도가 약 1%였고 케냐는 1.6%였다.

숫자에 민감한 기업들은 성소수자 포용의 이득과 혐오의 비용을 따진 끝에 발 빠르게 포용으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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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리 배짓 '차별비용: LGBT 경제학'
경제학자 눈으로 분석한 차별비용
'도덕'에 '경제논리' 더해 설득력 높여  
인권과 경제의 상생 당위성을 말하다
지난 1일 서울 종각역 일대에서 열린 2024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무지개 깃발이 펼쳐지자 환호하고 있다. 뉴스1

상점, 식당, 병원, 공장의 생산이 매년 뚝뚝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경제학자들은 경기침체가 왔다고 호들갑을 떨 테고, 정책 입안자들은 경기 부양책을 만드느라 부산할 테다. 정부, 기업, 학계, 유권자 할 것 없이 즉각적 조치를 부르짖으며 대책 마련에 몰두하리라. 경기침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성소수자(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차별이 경기침체를 유발한다면? "성소수자가 싫다"는 이유로, 혹은 "그럴 리 없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을 텐가. 30년 넘게 성소수자와 경제학을 엮어 연구해온 미국 경제학자 리 배짓은 단언한다. "성소수자 차별의 경제적 손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막심하다. 차별을 지속하는 건 '영구적인 경기침체'를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별 비용: LGBT 경제학'은 저자가 성소수자 혐오에 맞설 '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쓴 책이다. "혐오는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꾸짖는 것보다 "혐오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적'이기 때문이다. '호모포비아(Homophobia·동성애 혐오)'에 대한 ''도덕 이상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성소수자 차별로 인해 개인과 기업, 국가가 어떤 비용을 치르는지를 각종 데이터와 연구를 꿰어내 정밀하게 분석한다.


득일까 실일까, 차별의 손익계산서

리 배짓 작가는 경제학자이자 레즈비언 당사자로 30년 동안 성소수자(LGBT)의 일생을 다룬 경제학을 연구했다. 리 배짓 홈페이지 캡처

저자는 차별의 비용을 산출하기 위해 호모포비아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나라들을 주목했다. 이 나라들에서 성소수자들의 소득이 단지 성 정체성 때문에 불합리하게 감소했고 결국 국가 전체의 생산·소비 저하로 이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 성소수자의 평균 임금과 전체 인구 평균 임금 사이의 격차를 추산, '차별 때문에 각 나라가 감당하는 암묵적 손실액'을 계산해냈다.

성소수자 혐오로 인한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은 인도가 약 1%였고 케냐는 1.6%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5.7%나 됐다. 호모포비아의 경제적 비용이 눈에 보이는 숫자로 떠오른 것이다.

숫자에 민감한 기업들은 성소수자 포용의 이득과 혐오의 비용을 따진 끝에 발 빠르게 포용으로 옮겨갔다. 201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트랜스젠더의 외모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화장실 이용을 규제하는 일명 '화장실 법안'이 의회에서 발의됐을 때 앞장서 반대한 건 시민단체보다 기업들이었다. 일부 기업들은 성소수자 차별 정책을 펴는 주(州)에서 투자 계획을 철회하고 설비·사무실을 철수했다. 효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게이 소비자라는 틈새 시장에 진출했고, 포용적 사내 분위기를 원하는 인재를 잡아둘 수 있었다. 책은 성소수자에게 포용적인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중요한 특허 출원 실적이 늘어난 사례를 소개한다.


인권과 경제의 결합이 의미하는 것

차별비용·리 배짓 지음·김소희 옮김·글항아리 발행·288쪽·1만6,800원

"결국 성소수자의 삶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관료와 기업들을 압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권이라는 가치와 함께 인권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의 결론이다.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이해타산적으로 따지는 방식은 낯설지만, 실증된 경제적 논리라는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진실이 담겨있기에 힘이 세다. LGBT 인권 증진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여성, 장애인, 이민자 등 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저자가 고안한 'LGBT경제학'은 권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소수자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쓰일 것이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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