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추천 뜨던 '부자 습관 7가지', 제발 그만…[남기자의 체헐리즘]
10분에 126개씩 넘겨, "내가 뭘 봤지" 무의미한 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알고리즘' 바꿔보니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이내 알고리즘 추천 영상이 떴다. 별로였다. 엄지를 위로 쓸어올려 다음 걸로 넘겼다. 잠깐 보다가 또 넘겼다. 무제한으로 이어졌다.
아무 생각 없었다. 보통 그리 보던 거였다. 눈길이 가면 멈추고, 그렇지 않으면 넘길 뿐. 취향에 맞는 것도 있었지만, 왜 뜨는지 모를 게 더 많았다.
'알고리즘'. 말 그대로 자동으로 추천해주던 영상들. 친절히 내 취향에 맞춰주는.
마흔을 넘기며 불안이 늘었다. 더 잘해야 한단 압박. 그래서인지 최근 알고리즘이 부단히 띄우던 것들은 '자기 성장'과 관련한 게 많았다. 더 달라져야 한단 채찍질이다.
예컨대 '30살에 10억 모은 4가지 방법'. 내용은 이랬다. 소비 최대한 줄여라, 책 읽는 습관 들여라, 아침형 인간이 되라, 자기 일을 사랑해라, 반복해서 노력해라.
서른에 10억이나 모았다고? 난 얼마를 모았지. 마음을 할퀴고 가는 뭔가 있었다. 암묵적인 메시지. 너도 이리 살아야 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여기 달린 '좋아요' 개수를 봐라, 이게 성공한 삶이다.
그만 보고픈데 계속해서 비슷한 게 떴다. 알고리즘은, 잠깐 보인 관심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강남 100억 건물 사려면 얼마 필요함?', '부자 되는 습관 7가지' 같은 영상이 또 떴을 때, 엄지손가락을 눌러 멈췄다.
하단에 '관심 없음'이란 선택지가 있어 그걸 눌렀다. '향후 이와 유사한 게시물이 적게 표시됩니다'란 안내가 나왔다.
바야흐로 SNS(인스타그램, 틱톡)와 유튜브에서의 '알고리즘 세탁'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10분 동안 뜬 영상을 하나씩 넘기며, 기록해봤다. 제목만 보면 이런 거였다.
30살에 10억 모은 4가지 방법.
하버드 75년 연구로 밝혀진, 성공하는 아이들의 집안 환경.
90년대 최고 청춘 드라마.
어깨가 커지는 운동법.
외국 집 영상과 풍경.
타이거 우즈 닮은꼴 몰카.
가장 많이 하락한 20평대 아파트.
산사태에 휩쓸려간 강아지.
대한민국 최애 아파트 순위.
덩치 커 보이려면 이 운동 해 봐.
내 돈 없이 건물 사는 법.
모르는 사람이 준 음식 함부로 먹지 말아라.
집사가 임신한 걸 알게 된 고양이.
크게 보면 동물, 자기계발, 부동산, 운동. 그리고 알 수 없이 추천에 뜬 영상들. 이걸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몇 초에서 몇십 초 정도로 길이도 다 짧았다.
10분간 몇 편을 보는지 세어봤다. 총 126편이었다. 다 보고 나서 뭘 봤는지 떠올려봤다. 기억나는 게 거의 없었다.
SNS와 유튜브 사용 시간은 내 기준 하루 평균 1시간 38분. 알고리즘이 이끄는 영상 릴레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잠깐의 웃음, 자극, 정보. 혹은 시간 죽이기.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웠으나 한 가지는 깨달았다. 이대로 소비하는 건 별로란 걸.
미국.영국 등 17개국에서 10~19세 여성 평균 자살률은 2003년 3명에서, 2020년 3.5명으로 늘었다. 미국과 영국에선 SNS 인스타그램 출시 이후 10대 여성 우울증·자살이 늘어난 걸로 나타났다(이코노미스트).
틱톡은 39초마다 청소년에게 신체 이미지와, 정신 건강에 대한 동영상을 추천하고 있다. 틱톡 알고리즘이 2.6분 이내에 어린이에게 자살 충동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단 연구 결과도 나왔다. 청소년에게는 8분 이내에 섭식 장애 콘텐츠가 추천됐다(디지털 혐오 대응 센터).
틱톡은 플랫폼에 시선을 몰입하도록 초점을 맞추기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걸로 나타났다(국제앰네스티).
SNS 알고리즘 방식은, 사람들의 외로움, 통제력 부족 등 취약한 부분을 노린다. 젊은이들은 자해나 극단주의 같은 주제를 접하며, 마치 오락처럼 느낄 수 있다(가디언).
LG가 지난해부터 강조하던 'Life's Good(좋은 삶)' 캠페인이 이리 확장됐다.
으레 알고리즘이 주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해서' 더 좋게 만들 수 있단 생각. 거기서부터였다. 최중호 LG전자 브랜드플랫폼팀 책임(글로벌 캠페인 크리에이티브 총괄)이 말했다.
"SNS가 10대 청소년에게 미치는 정신 건강, 그게 미국을 중심으로 사회 문제로 떠올랐지요. 5대 SNS 수장들이 청문회에 다 불려 갔고요. 브랜드들이 SNS를 커머스 공간으로 활용하지만, 적극적으로 바꾸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더라고요. '우리는 할 수 있다' 생각하고 고민했지요."
이를 구체화하는 건 쉽잖았다. 지난해 말부터 반년 넘게 전문가들 도움도 많이 받고, 자문하고, 조사했다. LG가 뭘 할 수 있는지, 좋은 건 뭐라 규정할지, 얼마나 봐야 바꿀 수 있을지.
29개 영상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었다. 이른바 'SNS를 미소로 채우다(Optimism your feed)' 캠페인이다. 이를 지난달 29일 유튜브, 틱톡 등에 공개했다. 반응이 좋았다.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좋은 광고 전략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사랑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조회수가 3주 만에 12억 건을 넘겼다.
그 옛날, 테이프로 녹음해 베스트 앨범을 만들던 시절. 좋아하는 노래를 차곡차곡 넣어 '믹스테이프'로 만든 것처럼. 들을 사람을 생각하며, 끝까지 볼 수 있게 구성을 섬세하게 짰다. 유머와 동기부여, 시청각적으로 즐거운 콘텐츠 등을 두루 고민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흰 오리 두 마리가 풀밭 위를 뒤뚱뒤뚱 걷고, 분홍색 옷을 입은 노부부가 함께 춤을 추고, 프레리독이 기지개를 켜고, 강아지들이 낙엽으로 뛰어들고. 실제 각국의 인플루언서들이 제작하게 해, SNS에 깊이 스며들 수 있게 했다. 그게 좋은 콘텐츠를 늘릴 수 있도록. 김소슬 LG전자 브랜드플랫폼팀 선임(소셜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이 인상 깊게 본 플레이리스트를 말했다.
"KoySUN이란 사람이 아팠는데 생강차를 다 먹어서 상자를 밖에 버려뒀어요. 어머니가 그걸 보고 새로 사놓았다고. 그게 진짜 사랑인 것 같다. 가까운 공간에서 LG가 좋은 삶을 어떻게 얘기하나 봤을 때, 진정성이 있어서 좋았어요."
이와 함께 구체적으로 더해본 건 이랬다. 일단 '알고리즘 추천 영상'이 뜰 때, 잠시 화면을 눌러 멈췄다. 휙휙 지나가게 하지 않았다.제목을 보고 '이게 내가 보고 싶은 게 진정 맞는지' 생각했다. 고민했다.
그 결과, 보고 싶지 않은 콘텐츠는 '관심 없음' 표시를 계속 눌렀다. 추천에 띄우지 말라는 의사 표시를 계속하는 거였다. 반대로, 추천 영상에서 좋은 게 보이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까지 달며 체류 시간을 늘렸다.
여긴 내 '공간'이라고. 편히 주어지는 대로 휘둘리진 않겠다고. 내 의지로 섬세하게 결정할 거라고. 그리 선택할 수 있다고.
일주일 뒤엔, 보기 싫었던 추천 영상들이 꽤 많이 사라졌다. 100%는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건 하자는 담대한 낙관. 이혜영 LG전자 PR팀장이 말했다.
"저희가 제공하는 건 일종의 마중물이에요. '이건 이러한 문제가 있어'라고 알리며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거지요. 변화를 이끌려면 사용자 스스로 '내가 이걸 건강하게 이용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해요. 나쁜 음식을 그동안 많이 먹었다면, 오늘은 나가서 좀 걸어야겠어, 그런 생각과 행동이지요."
"AI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과, AI를 부리는 사람. 두 부류로 갈려요. 후자는 새로운 질문을 하면서, AI가 못하는 대답을 찾아가지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가, 그만의 독특한 측면을 못 맞추기 때문에요.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대로 보는 사람은 선호도가 없는 사람이에요."
자기만의 철학까진 아녀도, 자기 판단 체계가 명확하면 AI가 건드리기 힘들단 설명이었다. AI가 시키는 걸 넘어서면, 역으로 AI가 사람을 만들기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토록 편리한 시대에, AI에 압도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목적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이유가 있다, 뭔가를 하면 이렇게 될 거야, 그런 게 수준 높은 목적의식이에요. 다양한 목적을 만들어내는 사회에선 절대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게도요."
에필로그(epilogue).
좋은 영상이란 게 참 주관적이라 고민이 많았다.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매 순간 다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은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맘이 따뜻해지는 영상이 필요했다. 작은 마음과 다정함으로 세상이 연결되는 느낌을 주는. 다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세상을 지탱해줄 만한, 회의로 가득하더라도 다 그렇진 않단 희망을 줄 수 있는 무언가.
기준을 세워두니 보고픈 것과 그렇지 않은 게 보였다. 알고리즘 영상이 물밀듯 밀려와도 잠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뭉클한 영상이 떴다. 막내 여동생이 암 치료를 잘 받고 돌아왔을 때, 언니와 오빠가 꼭 안아주며 엉엉 우는 모습이었다.
모처럼 마음에 꼭 맞는 거여서,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남기고 저장해두었다. 앞으로 더 많이 뜰 수 있도록. 내 작은 의지로 인하여.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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