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 피하려 시작한 근력운동…목표 높이다 선을 넘었다
신체적 몰입
무게 늘리다 연골 손상, 염증
젊은 시절 목표지향 태도 발현
관절염 고려해 다시 기초훈련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 느껴
근력운동을 4년째 하면서 들어 올리는 무게를 서서히 늘려왔습니다. 2년여 전, 30분간 데드리프트(Dead Lift)를 해서 누적 1t을 들었을 때의 성취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점차 늘어서 한달여 전에는 3.8t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3주 전에는 훈련에 집중하면서 좀 힘들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견뎌내니 코치가 드디어 4t을 넘겼다고 했습니다. 잠시 하늘을 나는 듯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날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식탁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려는데 왼쪽 무릎이 시큰했습니다. 만져보니 좀 부었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발목 관절염을 겪었을 때도 무릎엔 별문제가 없었기에 ‘근육통이려니’ ‘며칠 지나면 나으려니’ 하고 냉찜질만 했지요. 대신 그다음 훈련은 쉬었습니다.
‘직선적 성장’ 추구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일주일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찍은 자기공명영상(MRI)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대퇴골과 슬개골을 잇는 대퇴골 쪽 연골이 대부분 손상됐고, 슬개골 위쪽으로는 염증 때문에 물이 차 있는데다 뼛가루들도 보인다고 했습니다. 급성은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 것인데 최근에 강도 높은 근력운동을 한 것이 무리가 됐을 거라는 소견이었습니다.
하긴 젊은 시절 수십년간 등산을 다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절망감·좌절감이 몰려왔습니다. 9년 전 발목 관절염으로 등산 금지령을 받은 뒤에 느꼈던 그 암담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등산 금지’를 겪은 뒤 바닥난 체력으로 몇년간 헤매다가 4년 전 근력운동을 하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삶의 에너지도 느꼈거든요. 계속 바벨을 들어 올리며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무릎 관절염이라니요. 또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좌절감뿐만 아니라 실패했다는 패배 의식까지 느꼈습니다. 의사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노년에 근손실을 보상하기 위해서는 근력운동, 혹은 무게 훈련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바벨스쾃이나 데드리프트를 하더라도 무게를 낮추고 무릎을 90도 이상 구부리는 자세는 하지 마세요. 이제 무릎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밸런스를 잘 찾으셔야 합니다. 코치와 잘 상의해서 훈련 프로그램을 조정해보세요.” 무조건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니 그나마 좀 위안이 됐습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고 약물치료만 하겠다니 다행이었고요.
집에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신체적인 훈련으로 컨디션 유지를 하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다시 찾으면서 내가 여기에 집착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노년에 낙상으로 다치지 않으려고 무게 훈련을 하고, 점점 목표치를 높여 달성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치열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 일했던 목표 지향적인 태도가 다시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무게 늘리기에 몰입하면서 직선적 성장을 추구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성장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곡선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막상 뭐가 좀 된다 싶으니까 제가 또 실수를 한 거지요. 운동 코치와 상의했습니다. 코치는 제 왼쪽 하체가 오른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했고, 좌우 밸런스의 문제라서 왼쪽을 더 강하게 훈련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저도 코치도 무릎 관절염은 생각 못 한 것이었지요. 또 코치가 제시하는 목표에 제가 잘 따라오니까 코치 스스로도 무게 목표에 너무 집중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기초훈련부터 다시 하자고 했습니다. 예,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발목·무릎 관절염의 존재를 알았으니 받아들여야지요. 성장은 사이클 곡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저 스스로에게 다시 주지시키면서 근력을 계속 키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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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 이후 황금색 변에 감사
얼마 전 위·대장 내시경을 했던 날 아침이 생각났습니다. 5년 만의 검사였는데, 검진 날짜가 다가오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전 검진 때 대장에 제법 큰 용종이 발견됐던데다, 위·대장 내시경 검사 준비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최소 3일간 과일, 야채, 김치, 나물, 양념 등을 피해야 하고 검사 전날은 두끼를 죽과 백김치 국물로만 먹은 뒤 저녁은 굶고 장세척제 500㏄를 두번, 물 500㏄를 마시고 잠들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노화가 더욱 진행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검사 당일 장세척제를 마시려고 일어난 새벽 4시께였어요. 마당에 나가니 뻐꾸기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청명하면서도 컸습니다. 낮에는 길어야 한번에 15초 정도 울었는데, 주변에 소음이 없어서 그런지 새벽에는 뻐꾸기 소리가 30초 넘게 산동네의 공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라디오를 켜니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 새벽 재방송에서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이 나옵니다.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새삼 온몸에 전율이 일어납니다. 그 소리와 선율이 세포 하나하나 깨우고 온몸에 스며들어 머릿속까지 완전히 채웁니다. 새벽의 적막함 속에서 그 소리가 내 영혼을 뒤흔들고 두드리고 깨우면서 내 존재의 겹겹한 각 층위를 모두 훑고 갑니다. 간혹 음악이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그냥 불쑥 찾아와서는 내가 나를 만나게 해주고는 다시 사라집니다. 잠시일지라도 나는 깨어 있습니다. 그날 새벽이 그러했습니다.
수면내시경 이후 담당 의사는 제가 복용하고 있는 항혈전제 때문에 시술 과정에서 지혈을 돕기 위해서 용종을 제거한 자리를 꿰맸으니 대변을 볼 때 출혈이 있는지 잘 살피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처음 보는 대변. 채변지를 이용해서 내 똥을 자세히 봅니다. 그런데 황금빛! 안도감에 온몸의 긴장이 풀어집니다.
잘게 썰어야 하지만 김치, 나물 등 일반식을 다시 먹으니 살 것 같습니다. 정신이 납니다. 단 며칠이라도 평소처럼 먹지 못하고 일상이 뒤죽박죽되면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습니다. 온몸이 긴장되고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짜증이 차오릅니다. 그러다가 밥을 제대로 먹으니 또 금방 제정신이 돌아옵니다. 마음도 여유로워집니다. 불과 며칠간 평소와 달랐던 음식물 섭취가 몸과 마음에 이렇듯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나 자신이 참으로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낍니다. 일상이 은총이고,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성장할 수는 없어도 이렇게 일상의 기쁨을 발견하면서 살면 이것이 바로 노년의 성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이병남│삶을 배우는 사람
2016년 엘지(LG) 인화원장으로 퇴임한 뒤 삶의 방향을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로 바꿨다. 은퇴와 노화를 함께 겪으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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