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대수술···SK온, ‘긴 잠’서 깨어날까

김은성 기자 2024. 6.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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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E&S 합병 초읽기, 합병 비율· SK㈜ 주주 반발 숙제”
“SK이노 현금으로 지분 확보시, SK㈜ 자금 유동성 확보 유리”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1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 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을 밝히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서든데스(돌연사)’ 경고등을 울린 SK그룹이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 배터리 등 주력사업 부진 속 방만한 투자로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서다. SK그룹은 작년 기준 차입금이 116조원을 돌파하며 빚이 가장 많은 그룹 1위에 올랐다. 재계 서열 2위인 만큼 향후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따라 국내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계열사 통폐합, 투자 유치 지분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 인적 쇄신 등이다.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과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의장이 구조조정을 지휘하면서 오너(사주)가의 위기 극복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SK그룹은 경기도 이천 연구소에서 6월 28일에 이어 29일에도 2024년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구조화) 방향을 논의한다.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진(CEO)이 모두 참석해 끝장 토론식으로 전개된다. 인공지능(AI) 사업 확장을 위해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회장은 화상회의로 참여한다. 최근 최태원 회장이 “그린·바이오 등의 사업은 양적 성장보다 내실 경영에 기반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에 대한 방법론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됐던 SK이노베이션(이노)·E&S 합병안과 적자에 허덕이는 투자회사 구조조정 등 그룹의 경영 원칙과 방향성도 논의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번 회의는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내실 경영을 통한 투자 여력 확대와 질적 성장을 위한 전략과 방법론을 도출하는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219개 “뭐 하는지 모르는 회사 많아”

SK그룹이 메스를 꺼내든 배경에는 계열사가 219개까지 늘어 비효율이 심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계열사 수는 문어발 경영으로 논란을 빚은 2위 카카오(128개)보다 100개 가까이 많다. 삼성 63개, 현대차 70개, LG 60개 등과 비교해도 3배를 웃돈다. SK그룹 안팎에서도 “이름만 들어서는 뭐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없는 회사가 많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최태원 회장은 작년 10월 그룹의 방만 투자를 지적하며 ‘서든데스’를 언급하고, 최핵관(최태원 회장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부회장단을 모두 교체했다. 대신 그룹 2인자 자리인 SK수펙스 의장에 최 회장의 사촌이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인 최창원 의장을 앉혔다. 수펙스는 SK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다.

조직개편을 통한 리밸런싱의 핵심은 ‘배터리 일병 구하기’다. SK그룹은 배터리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20조원가량을 투자했으나, SK온의 흑자 전환이 늦어져 그룹에 부담이 되고 있다. SK이노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올해도 7조 이상의 설비투자를 앞두고 있다. SK온은 출범 후 3년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과 미국 정부의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 보조금 축소, 수율 문제 등이 적자 탈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SK온의 10개 분기 누적 적자 규모는 2조5876억원에 이른다. 올해 2분기에도 3000억원대 영업손실로 적자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가의 관측이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SK온 북미 공장 가동률 회복 여부가 적자 축소에 변수가 될 것”이라며 “북미 공장 판매량은 하반기로 갈수록 점진적인 증가가 예상돼 영업적자도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간 SK온에 차입보증을 서 온 모회사 SK이노의 신용등급은 지난 3월 하락하면서 이자 부담도 커졌다. SK이노 부채는 SK온 출범 전인 2020년 23조396억원에서 2023년 말 50조7592억원으로 3년 새 2배 이상으로 불었다. SK온은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데, 투자자에게 약속한 상장 시한은 2026년 말이다. 그간 내부에서는 IPO를 앞두고 배터리 사업 투자금 확보를 위해 SK온을 SK엔무브에 합병한 뒤 상장하는 방안, 2차전지 분리막 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 등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가 논의됐다.

최근에는 SK이노와 SK E&S 합병 가능성이 급부상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자산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이 탄생한다. SK이노와 E&S는 SK그룹 지주사인 SK㈜가 각각 지분 36%와 90%를 보유한 중간지주사다. 양사간 합병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데는 SK E&S의 ‘현금 창출력’ 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SK E&S는 도시가스 공급 자회사와 LNG 발전 자회사로부터 안정적인 현금이 들어오면서 SK그룹 지주사 SK㈜에 꾸준히 배당금을 지급해왔다.

SK이노가 SK E&S가 창출하는 현금을 흡수하면 SK온 자금 조달에 큰 도움이 된다. SK이노 측은 합병설과 관련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논의 테이블에 있다는 것은 인정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흡수합병이나 사업부별로 쪼개 붙이면 SK E&S의 사업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어 SK E&S의 독립경영을 보장하는 사내독립기업(CIC) 합병 방식도 거론되고 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 연합뉴스

■ “SK이노베이션·E&S 합병, SK(주) 일석이조”

지난 6월 27일 코스피는 사흘만에 하락했지만 SK이노 주가는 상승했다. 경영전략회의를 앞두고 합병 방안 결정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영업익을 내는 E&S가 이노에 편입되면 현금흐름과 수익성이 개선돼 자회사 SK온에 대한 지원이 늘 것이란 판단이다. 다만 양사 간 합병 비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SK㈜가 지분 90%를 보유한 SK E&S는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배당금을 SK㈜에 안겨주는 알짜 자회사다. 합병 시 SK㈜ 주주들의 반대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똘똘한 알짜 자회사를 손자회사로 만드는 것에 대한 SK㈜ 주주들의 반발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향후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이어 “SK이노가 E&S 지분을 주식으로 사면 지분만큼 SK㈜의 이노에 대한 경영권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며 “만약 현금으로 사 온다면 SK㈜는 현금 유동성 확보 등으로 간접적으로 (최 회장의) 이혼자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수장 교체도 잇따르고 있다. 재활용 사업 투자 성과를 내지 못한 SK에코플랜트의 박경일 사장을 시작으로, 성민석 SK온 최고사업책임자와 박성하 SK스퀘어 대표가 줄줄이 사임했다.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지분 매각을 통한 투자금 확보 작업도 활발하다. SK㈜는 최근 베트남 마산그룹(유통대기업) 지분 9%를 처분하는 풋옵션을 행사해 매각 협상을 마무리 중이며, 베트남 빈그룹과도 지분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에 투자한 지분 매각으로 SK그룹은 1조원 이상을 확보할 계획이다.

SK㈜는 초저온 콜드체인 물류회사인 한국초저온 지분 21%도 시장에 내놓고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네트웍스는 기업 혁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자회사 SK렌터카의 지분 100%를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반도체·배터리와 함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바이오 분야도 사업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SK 오너가 전면 등판, ESG 경영 악화 우려도

그간 SK그룹이 강조해온 이사회 중심 경영과 달리 최태원 SK그룹 회장 친인척들이 그룹 쇄신에 전면적으로 나서서 생길 변화도 주요 관심사다. 최창원 의장이 ‘그룹 2인자’로 그룹 리밸런싱을 진두지휘하며 기강 잡기에 나선 데 이어 최근에는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그룹의 중간 지주사인 SK이노로 자리를 옮기며 그린·에너지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지난해 부산엑스포 유치 활동으로 그룹 경영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최 회장도 거문고 줄을 고쳐 맨다는 의미의 ‘해현경장’ 자세를 강조하며 잇단 해외 출장을 통해 반도체와 AI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SK는 그동안 선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며 전문 경영인 중심의 경영을 해왔다. 최근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그간의 ESG 경영 기조가 약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도 방만 경영과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악습이 SK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로 SK그룹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헤지펀드 위협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우호 세력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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