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축구 대세는 ‘Born in 2003’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2024. 6.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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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해축] 잉글랜드 대표팀 주드 벨링엄 대표 주자… 한국은 배준호 잠재력 뛰어나

최근 해외축구계에선 프로선수로 데뷔하는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현대 축구에서 체력과 활동량은 물론, 빠른 속도 변환 능력과 신체 회복력이 중시되면서 젊은 선수에 대한 소구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 영입이 '가성비'가 좋은 점도 한몫한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데다, 경험도 어느 정도 쌓인 20대 중반 선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에 각 구단이 경제적 이유에서라도 이보다 어린 선수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지금도 우수한 어린 선수를 영입하고자 세계 유수 구단이 경기장 밖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유망주를 자기 구단 유소년 클럽에 스카우트하고 장차 프로로 데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U-20 건너뛰고 프로팀·국가대표팀으로

유로 2024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뛰고 있는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의 주드 벨링엄. [뉴시스]
국제축구연맹(FIFA)은 유소년 축구 유망주를 대상으로 U-17(17세 이하) 월드컵과 U-20(20세 이하) 월드컵을 개최한다. 17세는 아직 실력에 기복이 많은 때라 U-17 월드컵 출신 가운데 슈퍼스타로 거듭난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U-20 월드컵은 전통적으로 슈퍼스타 산실이었다. 디에고 마라도나를 비롯해 리오넬 메시, 호나우지뉴, 베베토, 둥가, 차비 에르난데스, 앙투안 그리에즈만, 엘링 홀란 같은 선수가 모두 U-20 월드컵 출신이다. 한국에도 대회 MVP 격인 '골드볼'을 수상한 이강인이 있다. 지금도 상당수 U-20 월드컵 출신 선수가 세계 각국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해 월드컵 무대를 밟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회를 살펴보면 U-20 월드컵에 불참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 이미 그 연령대 유망주 상당수가 프로팀에서 한자리를 꿰차고 일찌감치 대표팀에까지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U-20 월드컵에 출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성인 월드컵과 달리 연령별 월드컵은 프로선수 강제 차출 규정이 없다. 소속팀이 차출을 거부하면 선수 연령별 월드컵 출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선 각각 '유로 2024'와 '코파 아메리카 2024'가 한창이다. 이들 대회에도 각 대표팀 핵심 선수로 활약하는, 젊다 못해 어린 선수들이 있다. 최근 유럽 축구계를 강타한 무서운 '2003년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나이만 보면 지난해 U-20 월드컵 참가 대상이었지만 진작 그 단계를 뛰어넘은 이들이다. 약 10년 전 해외축구를 강타한 1992년생 네이마르, 손흥민, 살라의 바통을 이은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실력, 스타성, 활약상, 몸값 측면에서 세계 축구 대세는 2003년생이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2003년생 선두 주자는 단연 스페인 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와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드 벨링엄이다.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적료 1억300만 유로(약 1530억 원)를 기록한 주인공이다. 벨링엄은 2019년 잉글랜드 2부 리그 버밍엄 시티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한 후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며 영국 전역을 놀라게 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선 2020년 데뷔전을 치렀고,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기점으로 중원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미드필더로서 모든 능력을 두루 갖춘 데다, 영리한 움직임과 정확한 킥을 바탕으로 뛰어난 득점력까지 뽐낸다.

남미 축구 화두 '세대교체'

잉글랜드 2부 스토크 시티에서 활약 중인 배준호. [GETTYIMAGES]
독일에는 2003년생 플로리안 비르츠와 저말 무시알라 듀오가 있다. 두 선수 모두 독일 대표팀에서 부동의 주전이자 팀 공격을 이끄는 에이스다. 비르츠는 쾰른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서 오랜 시간 단련한 후 차범근과 손흥민이 뛴 팀으로 유명한 바이엘 04 레버쿠젠에서 프로선수가 됐다. 공격형 미드필더이자 윙 포워드로서 역량을 갖춘 그는 2020년 데뷔전 이후 2020~2021시즌부터 주전으로 올라서며 계속 기량을 쌓았다. 현 소속팀과는 2027년까지 계약된 상태인데, 여러 빅클럽이 천문학적 이적료를 제시하며 비르츠를 영입하고자 혈안이다.

무시알라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태생이지만 어릴 적 잉글랜드로 건너가 사우샘프턴, 첼시 아카데미에서 성장했다. 그 후 독일 슈퍼 클럽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관심을 모았다.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기에 잉글랜드과 독일, 심지어 부친 고향인 나이지리아까지 무시알라를 자국 대표팀 선수로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잉글랜드, 독일 청소년 대표를 오가다 결국 2001년 독일 대표팀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빠른 속도와 유연한 움직임, 전진 드리블이 장기인 무시알라가 향후 팀을 옮긴다면 역대급 이적료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사비 시몬스도 인상적 활약을 보이는 2003년생 선수다. 축구선수였던 아버지가 차비 에르난데스를 무척 좋아해 아들 이름을 '사비'(스페인 카탈루냐어 이름 '차비'를 네덜란드어로 옮김)로 지었다고 한다. 아버지 바람대로 바르셀로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10여 년을 보낸 그는 프로선수로 성장하고자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었다. 다만 출전 기회가 너무 적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RB 라이프치히에서 임대 형태로 자리를 옮겨가며 활약 중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겸 윙 포워드인 시몬스는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답게 기본기가 탄탄하고 창의적 플레이로 경기 흐름을 바꾼다.

그 외에도 유럽에선 슬로베니아의 신성 스트라이커 벤자민 세슈코, 헝가리의 왼쪽 풀백 케르케즈 밀로시, 덴마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라스무스 호일룬 같은 2003년생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다.

선수 연령대가 전반적으로 높아진 남미에선 나라마다 세대교체 성패에 따라 전력이 판가름 나는 분위기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 남미 예선만 해도 세대교체에 실패한 칠레, 페루 같은 팀은 하위권을 맴돈다. 반면 축구계 대세인 2003년생은 아니더라도 젊은 선수가 많은 콜롬비아, 에콰도르 같은 팀은 과거 전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남미에서 아르헨티나는 젊은 선수가 꽤 많이 포진해 '신구(新舊) 조화'를 달성한 팀이다. 브라질의 경우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입은 젊은 수비수 루카스 베라우두 같은 2003년생을 발굴했다. 참고로 브라질은 2003년생 선수는 많지 않지만 비니시우스, 호드리구 등이 20대 초반이고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 예정인 공격수 에드릭은 2006년생이다. 콜롬비아 역시 얼마 전 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야세르 아스프리야를 대표팀 일원으로 성장시켰다.

한국 출신으로는 현재 잉글랜드 2부 리그 스토크 시티에서 맹활약 중인 2003년생 배준호가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 골을 터뜨리며 대표팀 막내로 막 발걸음을 내딛은 상태다. 당장은 빅클럽이나 각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거리감이 있지만, 몇 년 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잠재성은 충분하다.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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