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낮춰라” 카드사 쥐어짜기, 부담은 소비자에 전가
● 3년 주기 재산정, 올해 카드 수수료 향방에 쏠리는 눈
● 상인 “수수료 낮춰라” vs 카드사 “사업성 악화”
● 논란의 적격비용 산정 제도, 금융위 대책 ‘감감무소식’
● 카드사 할부 혜택 대폭 축소 → 소비자 부담↑
2011년 8월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카드사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카드사가 부과하는 수수료, 금리에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 달라"고 당부했다. 같은 해 10월 금융당국은 1만 원 이하 소액 카드 결제 거부를 허용하는 국회 입법에 찬성했다가 여론 악화로 번복했다. 소비자단체는 카드 사용이 일반화하고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불편을 초래하는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17년째 갈등 반복… 상인들 "카드수수료 내려달라"
불똥은 카드사로 튀었다. 소비자단체는 "정부 정책 지원의 최대 수혜자인 카드사가 소비자와 가맹점을 위해 카드수수료 인하 등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비슷한 시기 한국음식업중앙회가 카드수수료율 인하를 위한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를 개최하며 일반음식업종의 카드수수료율을 1.5%로 인하해 달라고 주장했다. 카드사는 중소 가맹점 수수료율을 대형 할인점 수준으로 인하하고 중소 가맹점 범위를 확대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원성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11월 현대차가 자동차 구매와 관련한 카드수수료율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면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다툼이 재점화됐다. 협상력이 카드사보다 강하거나 대등한 곳에서도 수수료율 인하 요구가 쏟아졌다.
결국 12월 금융위는 '신용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12년 상반기 여신전문업법(여전법)과 시행령·감독규정을 개정해 대책을 시행하고 이미 발급된 카드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신용카드 발급 연령을 만 18세에서 민법상 성년인 만 20세로 높이고, 만 20세 미만은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가맹점 수수료율은 카드업계가 연구용역 등을 통해 2012년 1분기 중 체계를 개선토록 했다.
카드수수료는 2012년 여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이전인 2007년부터 최근 재산정된 2021년까지 총 14차례 인하됐다. 현재 수수료율은 0.5~1.5% 수준이다. 가맹점 수수료율은 △연 매출액 3억 원 이하의 가맹점 0.5% △3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 1.1% △5억 원 초과 10억 원 이하 1.25% △10억 원 초과 30억 원 이하 1.5%다. 체크카드 수수료율 역시 0.25~1.25%로 내려갔다.
금융위 "대책 내놓겠다"더니 아직도…
매출 30억 원을 초과하는 중대형 가맹점, 즉 '일반가맹점' 수수료는 각 카드사와 가맹점 협상에 따라 정해진다. 자동차나 백화점, 대형마트, 항공 등 초대형 가맹점은 수수료 협상에서 카드사와 우월적 혹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반면 마트협회는 "동네 마트와 슈퍼마켓은 협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카드사로부터 일방적 인상 통보를 받았다"면서 "동네 마트와 슈퍼마켓의 이익률이 1.5% 수준인데 카드수수료로 2.3%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카드사가 영세 가맹점과 대기업으로부터 줄어든 수수료를 동네 마트와 같은 협상력이 없는 중소업체로부터 보전하고 있다"며 "역대급 실적을 올린 카드사들이 줄어든 수수료 수입을 중소기업으로부터 메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주유소 업계도 카드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급등해 국민의 유류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카드수수료를 낮춰 유류비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주유소 카드수수료는 '매출액의 1.5%'로 적용돼 기름값이 오르면 수수료 규모도 커져 부담이 크다고도 토로했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들 역시 카드수수료 인상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PG협회는 주요 카드사에 가맹점 수수료 산정 근거인 원가 자료 공개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고, 협상에 미온적인 카드사에 대해서는 가맹점 계약 해지까지 검토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섰다.
이에 대해 카드사들은 적격비용 산정 제도가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단순 비용 측면으로만 계산하다 보니 카드사업의 본질인 결제 사업이 쪼그라들고 있다며 항변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2월 가맹점단체, 소비자단체, 카드업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개최했다. 카드업계는 "카드사가 국내 지급결제 시장에서 안정적 지급결제 시스템을 제공하고 미래 디지털 플랫폼 회사로 진화할 수 있도록 현행 적격비용 제도 개선을 논의해 달라"는 의견을 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논의 과정에서 투명성, 형평성, 시의성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체크카드 수수료 산정 방식, 의무 수납제 제도에 대한 검토를 제안했다.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는 "적격비용 산정을 통해 영세 가맹점 수수료 부담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카드수수료 인하에 따른 소비자 편익 감소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 제도개선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금융위는 "2022년 10월까지 TF를 운영하고 정책연구용역도 병행해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2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개선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카드사들은 적격비용 산정 주기를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려달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수료 인상·인하가 모두 부담이라면 재산정 주기를 늘려 금리 변동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는 카드사, 피해는 소비자에게
이는 차선책에 불과하다. 그간 카드수수료율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어 사실상 계속해서 카드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 탓이다. 관계자들 역시 카드수수료 인하에 대한 기대는 접은 모양새다.할부카드수수료 수익과 가맹점수수료 수익은 각각 7596억 원, 5968억 원씩 증가하며 총수익은 3조3281억 원 늘었지만 대손비용(1조1505억 원), 이자비용(1조1231억 원) 등 총비용이 3조3520억 원 발생해 수익이 상쇄됐다.
이 가운데 카드채권 연체율은 1.73%로 2022년 말(1.38%) 대비 0.35%포인트 상승했고, 신용판매채권 연체율도 0.86%로 0.21%포인트 증가했다. 카드대출채권 연체율은 3.67%로 0.69%포인트 올랐다. 자산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14%로 전년 말(0.85%) 대비 0.29%포인트 증가했다. 카드채권 고정이하비율은 1.09%로 전년 말(0.88%) 대비 0.21%포인트 상승했다.
카드사의 영업 환경이 악화하며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었다. 2022년 10월까지만 해도 대부분 카드사는 결제 부문에 따라 최장 12개월까지 무이자 할부를 제공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신한·삼성카드가 무이자 할부 기간을 축소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카드사들도 줄줄이 무이자 할부 혜택을 축소했다. 최근엔 대부분 최장 3개월로 기간이 크게 줄었다. 결제 부문에 따라 6개월 무이자 할부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게릴라성'으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무이자 할부 혜택이 줄며 소비자의 비용 부담도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할부 수수료율까지 치솟았다. 여신금융협회 공시정보포털 자료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의 할부 수수료율은 하단이 4.90~10.00%, 상단이 19.50~19.95%에 분포해 상한선이 법정 최고금리(20%)에 근접했다.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해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던 '알짜 카드'도 대거 단종됐다. 지난해 8개 전업 카드사에서 단종된 신용·체크카드는 458종으로 2022년(116종)보다 4배가량 더 늘었다.
카드사들은 올해도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지속해 경영 환경이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올해 정부의 대규모 신용사면으로 최대 330만 명의 대출 연체 기록이 삭제될 예정이다. 15만 명에 이르는 저신용자들도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며 카드사들은 중·저신용자 대출 수요가 늘 것에 대비해 자산건전성 관리에 더 무게를 둘 것으로 전망된다. 즉 카드사들의 비용 줄이기가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 올해 적격비용 재산정 작업 시기가 도래한 만큼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당국의 발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적격비용이 산출되면 카드사들은 내년부터 또 수년간 정해진 수수료율하에서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
특히 카드사는 자체 수신 기능이 없다. 채권 발행을 통해 영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만큼 이자비용이 커진다. 적격비용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는 저금리 상황이라 큰 문제가 없었지만 현행 제도는 조달비용 증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측면도 있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11차례 동결했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금리인하 시기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카드사 처지에선 업계 사정을 고려한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