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중국] 무엇이든, 어디로든, 언제든 배달이 가능한 ‘배달의 천국’ 중국

윤석정 2024. 6.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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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무엇이든, 어디로든, 언제든 배달이 가능
엄청난 수의 배달 노동자 앞세운 저렴한 인건비가 핵심
중국 공산당, 1천200만 배달 노동자 조직 만들기로

얼마 전 등산을 하다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며칠을 꼼짝없이 집에만 머물러야 했기에, 코로나19 사회적 격리기간 이후 오랜만에 배달에 의존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중국이야말로 배달의 천국, 배달의 국가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게 됐다.

중국 물가와 인건비가 예전보다 엄청나게 비싸졌다고 다들 말하지만,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선 낮은 편이고, 또 노동자의 수 자체가 엄청 많아서 아직 중국에서 배달을 이용하는 데 큰 부담이 없다.

온 도시가 물에 잠겼는데도 꿋꿋하게 배달 중인 어떤 배달원. / 사진 = 더우인(抖音) 캡처


인건비가 싸다 보니 우리나라와 비교해 배달비도 상대적으로 싸다. 요새 우리나라에서는 배달비가 너무 올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는 말까지 나오곤 하는데, 중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물론 중국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싸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음식 배달 같은 경우 최소 배달 금액 기준이 아직은 거의 없어서 간단한 음식 1인분 주문도 가능하다.

가령 45위안(약 8,600원)짜리 볶음밥을 시키면 포장비 2위안(약 380원)과 배달비 4~5위안(약 750~950원)이 붙어서 51~52위안이 된다. 음식 총액의 13~16%니까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2인분 이상을 시키면 포장비가 할인되고, 배달비는 그대로여서 3~4인분 이상이 되면 추가 부담이 음식 가격의 4~5%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른 아침 베이징 시내 곳곳에선 이렇게 배달 노동자들이 아침 조회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 사진 = MBN 촬영


온라인 쇼핑몰은 음식 배달보다도 배달비 내지 배송료가 더 싸다. 요즘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생태계를 위협하는 중국 쇼핑몰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중국 현지에서 실제로 온라인 쇼핑을 해보면 어느 정도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기자가 중국에서 주문한 가장 싼 상품은 방수 휴대폰 케이스였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에서 21.6위안(약 4,100원)짜리 1개를 주문했는데, 상품 가격 외에 어떠한 추가 비용도 없었다.

더 놀라운 건 배송 위치 추적 사이트를 통해 본 이 상품이 베이징에서 2천300km 떨어진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에서 왔다는 거다. 선전의 물류센터에서 2천km 이상을 달려 베이징에 도착해 택배기사가 집 문 앞에 놓고 갔는데 배달비가 없다는 게 놀랍다.

배달 노동자는 위치 추적 장치가 부착된 헬멧을 쓴다. 이를 통해서 주문한 상품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 사진 = MBN 촬영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윈난(雲南) 더우난(斗南) 꽃 시장을 방문했을 때 생생한 꽃 한 다발을 우리 돈 1만 원도 안 되는 배달비로 이틀 만에 2천km 떨어진 베이징 집까지 배달시켰던 기억도 났다.

또 한 베이징 교민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서 체온계를 온라인 쇼핑몰로 주문했는데, 한 시간도 채 안 돼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정말 중국이야말로 배달의 민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자가 베이징에서 3년 생활하는 동안 대부분의 생필품은 오프라인 매장을 가기보다는 집에서 화면 터치 몇 번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사서 집에서 받을 수 있었고, 모든 음식도 1인분까지 배달 주문이 가능해서 자주 시켜 먹었다.

159위안(약 2만 원)짜리 발목 보호대를 주문했는데, 상품 가격 외에 추가 비용 없이 저장성(浙江省) 진화시(金华市)에서 베이징까지 1천500km를 하루 반나절 만에 배송됐다.


이렇게 배달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배달 노동자들의 수도 급격히 느는 추세다. 오죽하면 중국 공산당이 배달 노동자들에 대해서 당 지부를 만들겠다고 했을까. 그 대상이 자그마치 1천200만 명이라고 하니, 지금 중국에 배달 노동자가 최소 1천200만 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중국에선 국가 직업 분류상 정식 명칭인 ‘인터넷 배송원’이 코로나19 대유행과 높은 청년 실업률로 몇 년 크게 늘었다.

기자가 3년 전 지국 직원을 모집했을 때에도 내걸었던 채용 조건에 남자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좀 의아해서 주변 현지 중국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요새 젊은 남자들은 월급이 월 1만 위안(약 190만 원) 이하인 회사를 갈 바에야 차라리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배달 노동자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당시는 코로나19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고, 걸핏하면 지역이 봉쇄됐을 때라 중국 전체가 거의 배달에 의존해서 돌아가던 때였다. 그만큼 배달에 대한 수요가 높았고, 그래서 배달 노동자들의 벌이도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배달일이란 게 온종일 돌아다녀야 하고, 항상 교통사고 등 위험이 도사리며, 끼니를 때울 곳이나 쉴 곳조차 마땅치 않은 힘든 직업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1천만 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그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이 배달 노동을 선택하는 걸 보면 중국의 산업 구조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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