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가 왜 이래?" 회사도 어리둥절…5배 뛴 홍콩 주식, 왜 올랐나 보니
[편집자주] 불법 업체들이 운영하는 주식 리딩방이 이제는 해외 증시에 상장된 기업을 활용해 개미들을 울리고 있다. 주로 홍콩증시와 나스닥에 상장된 중국기업이 동원된다. 주식을 선행 매수한 리딩방 일당이 추천하는 정보를 믿은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들어오면서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팔아 차익을 거두고 잠적해버린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일 년 넘게 피해가 반복되는데 감독 당국은 이제야 사태 파악에 나선 상태다. 본지는 중국 주식 리딩방 연속 보도로 투자자 피해를 막는 데 주력해왔다.
최근 홍콩증시에서는 한국 투자자들의 자금이 급속도로 유입되면서 주가가 폭등하는 기업들이 화제다. 홍콩증시에 상장된 A사는 한달도 안되는 기간동안 주가가 5배 올랐는데 특별한 호재도 악재는 물론 현지 증권사에서 나온 매수추천 보고서도 없었다. 정작 기업에서도 "대체 주가가 왜 오르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현지 언론에서는 △주가와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 △주가 변동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소형주는 투기자본의 표적이 되기쉽다 등의 반응이 나오지만 역시 주가상승의 배경에 대해서는 시원한 분석을 내놓지 못한다. 이상한 것은 주가 뿐 아니다.
주식 거래량도 비정상적으로 늘었다. 시총이 작은 이른바 '동전주'인 A사는 지난달까지 주식매매가 거의 없었는데 이달 초부터 갑자기 대량 매수세가 유입됐다. 투자자 문의가 잇따르자 결국 회사는 "주식가격과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이사회에도 문의했지만 주가와 거래량 증가에 특별한 이유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입장을 내놨다.
현지에서는 A사의 이상거래와 관련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유입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한국예탁결제원에 확인해보니 한국 투자자이 최근 1개월간 사들인 A사 주식이 2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매도한 금액은 36억원 가량이었다. 이 회사 주가가 하루만에 50% 가까이 하락할 때도 한국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들였으니 현지에서도 관심을 끌 법 했다.
거래원도 그렇다. 중국의 해외주식 거래 투자 플랫폼인 푸투증권에 따르면 A사 주식은 주로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을 통해 매매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투자자가 A사 주식을 매수한 이유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회사 실적이 대폭 개선됐지만 급등세를 설명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종목은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메이투안, 바이두 등 중국의 쟁쟁한 대기업보다 거래가 많다.
이처럼 국내 투자자의 홍콩 주식 매수 상위권 통계에는 대규모 매수세가 의아한 기업이 다수 있다. B사, C사, D사 등 인지도도 낮고 시가총액이 1억 홍콩달러(약 177억원)도 되지 않는 소형주들인데 한국인 매수상위 종목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당 주식을 매입했다는 투자자는 "해외 주식 리딩방의 추천으로 매수했다"고 귀뜸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가 늘어났는데 누군가의 추천에 현혹되지 말고 본인이 투자하는 종목에 대해서는 공시나 기사, 기업 실적이나 사업 실체를 확인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나스닥이 상장을 승인해준 중국기업들의 주가 폭락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가가 이상급등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유없이 폭락할 때는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불공정 매매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외주식 불법 리딩방이 활개치기 좋은 여건이 됐다는 것은 거래소의 신인도와 직결돼 있는 만큼, 중국기업들의 나스닥 상장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27일 미국 의회 산하 미중경제안보심의위원회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8일 기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65곳, 시가총액 합계는 8480억달러(약 1175조원)로 집계됐다. 1년 전과 비교해 상장 기업은 13곳 늘었지만 시가총액은 한화로 1820억달러(252조원) 가량 줄었다.
중국 기업 시가총액은 2021년과 비교해 50% 이상 줄어들었다. 2021년 11월1일 기준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260곳, 시가총액 합계는 1조8500억달러(약 2565조원)이었다. 올해 통계와 비교하면 1390조원 줄어든 수치다.
위원회에 따르면 시총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중국 경제와 기업의 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 외에도 중국 국영기업(SOE)의 자진 상장폐지다. 최근 3년간 미국에서는 중국동방항공,남방항공을 비롯해 중국생명보험, 시노펙(중국석화), 페트로차이나(중국석유) 등이 상폐를 결정했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들의 성적표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 증시에 상장한 24곳 중 올해 주가가 오른 기업은 7곳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15곳 주가가 반토막이 났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중국 기업들의 폭락 문제는 고질적으로 이어져 왔다. 중국 상장사 시가총액이 3년 만에 1390조원 감소하고, 지난해 상장한 기업들 중 상당수가 폭락했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자 나스닥은 중국계 기업들의 기업공개(IPO) 심사를 크게 강화하는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나스닥은 중국과 홍콩에 본사를 둔 소규모 기업의 IPO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나스닥 IPO를 신청한 중국계 기업 일부가 거래소로부터 상장 전 투자유치 과정에서 투자자의 신원과 독립성 확보 여부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받는 등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IPO 신청기업에 주식 상장 배경, 투자자와 회사 간 관계 등에 관해 묻고, 상장할 주식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서류와 실제 인수 과정에서 자금이 오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은행 서류 제출도 요구했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이런 유형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IPO 관련 규정은 있었지만, (실제 시행은) 드물었다"며 이번 조사는 2년 전 상장한 중국계 기업의 주가 변동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미국 증시에 등록된 홍콩 핀테크 기업 AMTD 디지털과 중국 의류업체 아덴텍스그룹 등의 주가는 상장 후 최대 3만2000%까지 급등했다가 단시간에 폭락하며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 AMTD는 고점 대비 99% 넘게 빠졌다.
올해 들어 중국과 홍콩 소규모 기업의 나스닥 도전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시장의 장기 침체로 국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미·중 갈등에도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해외 상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점도 중국계 기업들의 나스닥 도전을 부추긴다.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서진욱 기자 sj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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