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카시아,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임보 일기]
나는 식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연히 재개발단지 옆으로 이사 와 쓰레기통에 화분째 버려진 식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겁도 없이 유기 식물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하나둘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다 보니 자연스레 식물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잘 키울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쓰레기장에 버려지면 100% 죽을 테니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다채로운 초록빛의 식물 친구들 모두 내가 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역시 자연스럽게 주변에 식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구조한 직후에는 시들시들 비실거리던 식물이 생생하게 살아나 새로운 집에 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마음에 맴돌았다.
3년 전 처음 구조한 식물은 장미허브와 이름 모를 다육이 그리고 알로카시아다. 그중 알로카시아가 가장 큰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화분째 버려져 있던 다른 식물과는 달리 시멘트 바닥에 흙 한 줌 없이 뒹굴고 있던 알로카시아는 구조 며칠 전 내린 비를 머금고 누운 채로 하늘을 향해 연둣빛 어린싹을 내고 있었다. 일자로 똑바로 서서 커야 할 녀석이 누워서 싹을 틔우니 바로 세우면 ‘ㄱ’ 자가 되어 버리는 모습으로 말이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외형이었지만, 고백하건대 사실 처음에는 이름도 몰랐다. 분명 식물이 많던 카페나 서점 그 어디선가 종종 본 것 같은데 이름을 궁금해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탓이다. 식물 문외한인 내겐 이름을 찾는 것부터가 얼마나 막막하던지. 시멘트 바닥보다는 훨씬 나은 곳으로 데려가 잘 돌봐주겠다는 호기로움은 첫발부터 난관에 봉착해버렸다. 그 어떤 앱도 사진만으로 식물의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지 못했다. 인터넷과 테크놀로지 세상인 21세기에도 말이다.
일단 내가 아는 모든 정보를 모아서 다시 인터넷에 검색했다. ‘카페에서 자주 보이는 잎이 큰 식물’이라든가 ‘토토로에 나오는 우산으로 쓰는 잎사귀를 닮은 식물’ 등을 검색어에 넣고 이미지를 살폈다. 그렇게 알게 된 이 친구의 이름은 ‘알로카시아’. 주로 덥고 습한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식물이었다. 크기가 엄청나게 크지만, 잘라주면 작게 키울 수 있다는 팁도 얻었다. 그래, 우리 집은 정말 좁기 때문에 작아져주면 고맙겠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과감하게 잘라주었다.
첫 만남은 너무 강렬했다. 칼을 잘 소독하고 알로카시아를 잘 잘라주었는데 갑자기 양 손바닥이 수천 개의 바늘에 찔리는 듯 아픈 것이었다. 따가움의 정도가 생각지도 못한 고통이었다. 처음 맛본 식물의 독성이었다. 알로카시아는 우리가 먹는 토란과 같은 천남성과의 식물이지만 독이 있어 식물의 액을 직접 손으로 만지면 안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맨손으로 했으니…. 역시 인터넷에 이리저리 검색해봐도 딱히 해독할 방법은 없고 그냥 두면 나아진다는 말에 참고 기다렸다. 눈을 안 비빈 것에 감사하며.
길쭉한 원통형의 알로카시아를 작게 자르니 나무토막 컵 받침 정도 크기가 되었다. 과연 내가 이 친구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일단 물에 담가두면 싹도 뿌리도 난다고 하니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릴밖에. 어느 날 보니 알로카시아가 양쪽에 슈렉 귀를 닮은 싹을 내고 있었다. 큰 접시에 옹기종기 모여서 누가누가 더 큰 귀를 만드나 경쟁하듯이 말이다. 싱그러운 새잎을 뽐내는 거의 20개가 넘는 알로카시아를 주변에 키워보고 싶다는 분들께 나누어 드렸다. 내가 키우면서 기뻤던 만큼 그분들도 키우면서 행복해지기를, 그리고 알로카시아도 잘 적응해주길 바라면서.
마지막 남은 하나는 우리 집에 정착했다. 3년째 건강하게 터줏대감처럼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기 식물 구조는 여전히 좌충우돌, 사건과 실수와 늘 함께한다. ‘왜 이리 알아야 할 것이 많은 거야!’라고 벅차 할 때면 알로카시아를 쓱 바라보곤 한다. 그 묵묵한 위로 덕분에 우당탕탕 유기 식물 구조도 계속 할 수 있다.
백수혜 (‘공덕동 식물유치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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