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추위보다 외로움에 떨고 있는 솔로 펭귄…웃음 주는 동물들
웃음 속에 진지한 환경보호 메시지 담아
미국의 사진작가 디나 스페인손은 남극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의 하프문 섬에 도착했을 때 새하얀 설경에 압도됐다. 턱끈펭귄 수천 마리가 모여 있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수백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중 펭귄 세 마리가 앵글에 들어왔다. 다투는 듯 소란이 일더니 펭귄 한 쌍이 한 마리를 두고 떠났다. 남은 펭귄은 남극의 추위가 아니라 외로움에 떠는 듯했다.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Comedy Wildlife Photography Awards 2024)은 29일 디나 스페인손이 찍은 턱끈펭귄 사진 ‘나는 솔로(원제 Three’s A Crowd)’를 비롯해 10점이 지금까지 접수된 사진 작품 중 가장 뛰어났다고 밝혔다. 사진전 출품 마감일은 7월 31일이며 최종 후보작은 9월, 수상자는 두 달 후에 발표될 예정이다.
◇멸종위기 동물에 관심 높이려 시작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은 2015년 영국의 사진작가 폴 조인슨-힉스(Paul Joynson-Hicks)와 톰 설람(Tom Sullam)이 시작했다. 야생동물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뽑아 시상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목적을 함께 갖고 있다.
사진전은 매년 공동 주최한 영국의 야생동물 보호재단인 휘틀리 자연기금(WFN)에 대회 수익금 일부를 기부했다. 휘틀리 자연기금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90국에서 환경보호 활동가 200여 명에게 350억원 가까이 지원했다.
주최 측은 사진 출품 마감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사진전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머리 외로운 펭귄과 세 개 달린 기린, 기타 치는 나무늘보 등 지금까지 최고의 출품작을 선정해 공개했다. 올해 사진전에는 이미 전 세계에서 수백 점이 출품됐다.
벨기에 사진작가인 토머스 반 푸임브룩이 출품한 작품은 대회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남미 퀴라소에서 찍은 바다거북 사진에 ‘저요 저요(원제 pick me pick meeeeee)’라는 제목을 붙였다. 마냥 귀여운 모습 같지만, 알고 보면 큰 울림을 주는 사진이다. 그는 “누가 플라스틱 없는 바다에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당장 거북이 ‘저요’하고 답할 것 같다”고 했다. 바다거북은 사람이 버린 플라스틱 그물에 감기고 플라스틱 병을 삼켜 죽는다. 작가는 해양 플라스틱 오염 실태를 고발한 것이다.
올해 대회는 카메라 제조 기업 니콘(Nikon)을 파트너로 맞이했다. 니콘 유럽 마케팅 수석 총괄 매니저 스테판 마이어는 “사진의 힘을 통해 환경 보호에 대한 중요한 인식을 높이려는 우리의 노력을 공유하는 웃긴 야생동물 사진전 팀과 함께 일해 기쁘다”며 “지금까지 출품된 작품들을 보고 정말 즐거웠으며 앞으로 한 달 동안 더 재미있는 야생동물 사진들이 접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
맹수도 상황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미소를 안긴다. 미국의 알렉산더 파인은 호숫가에서 만난 불곰 가족을 찍고 ‘엄마 업어 주세요(원제 Holding on for a ride)’란 제목을 붙였다. 새끼 두 마리가 어미에 매달린 모습이 마치 아기들이 걷기 싫어 업어 달라고 칭얼대는 듯한 느낌을 줬다.
미국 사진작가 웬디 카베니는 북극곰 두 마리를 찍은 사진에 ‘정말 웃기지 않니(원제 Did You Hear the One About The....?)’라고 제목을 붙였다. 작가는 마치 곰들이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독일의 인고 하만이 출품한 ‘박장대소(Laughing outloud)’는 갓 태어난 물개가 손을 들고 미소짓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웃긴 야생동물은 하늘과 땅,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 작가 마크 코스터는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채파랄 공원에서 수컷 청둥오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찍었다. 나무에 부딪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제목은 ‘앞에 나무 악!(원제 Watch out For That Tree)’라고 붙여 흥미를 유발했다.
스리랑카의 틸란 위라싱게는 흰배뜸부기가 날개로 얼굴을 가린 모습을 찍고 ‘까꿍(Peak A Boo!)’이라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안톤 프리토리우스는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장면을 포착했다. 그는 남아공 리에트블레이 자연보호구역에서 백로가 물소 수컷의 생식기를 노리는 모습을 찍고 ‘거긴 아니야(원제 Not a good idea)’라는 제목을 붙였다.
사람 눈에 보인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경우는 또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존 멀리너는 ‘하나보다 셋이 낫지(원제 Three heads are better than one)’라는 제목의 기린 사진을 출품했다. 기린들이 서로 겹쳐진 모습을 앞에서 찍어 마치 머리가 셋인 것처럼 보여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컷 기린 두 마리가 물을 마신 직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수컷 기린은 짝짓기 때 암컷을 두고 다툴 때 긴 목을 휘둘러 상대를 공격한다. 그러다가 세 번째 기린까지 싸움에 휘말렸다. 순식간에 세 마리는 머리 세 개로 한 몸을 이뤘다.
◇전생은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난해 대회는 미국의 사진작가 제이슨 무어가 찍은 캥거루 사진인 ‘기타 치는 캥거루!(원제 Air Guitar Roo)’를 우승작으로 선정했다. 올해도 기타 치는 동물이 1위가 될지 모른다. 미국 작가 해리 콜린스는 코스타리카에서 나무늘보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모습을 찍고 ‘나무늘보 에릭 클랩튼(원제 Slow hands)’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원제는 에릭 클랩튼의 별명이다. 그는 별명과 달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기타를 치는 속주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그는 공연 도중 기타가 망가지면 미리 조율된 기타로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조율하며 연습곡을 연주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관객들이 그의 별명인 ‘느린 박수’를 치는데, 지겨우니 빨리 끝내라는 뜻이다. 나무늘보가 기타를 연주하면 분명 에릭 클랩튼의 조율처럼 느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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