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하마스보다 더한 헤즈볼라의 덫에 걸렸다
헤즈볼라와 충돌로 10만명 난민
귀환 위해 레바논 접경 전선 이동
저강도 작전, 퇴치 실효성 없고
전면전은 중동 광역전쟁 위험성
저강도 전쟁이냐, 중동 광역전쟁이냐. 가자 전쟁이 갈림길에 접어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 24일, 가자에서 하마스와의 전투는 “격렬한 국면”이 거의 끝나서 병력을 헤즈볼라와 맞서기 위해 레바논과의 북부 접경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발발한 가자 전쟁 이후 자국 내 언론과의 첫 회견에서 가자 전쟁의 현 국면이 끝나면 이스라엘군은 “북쪽을 향할 것”이라며 레바논 접경으로 병력 재배치는 “무엇보다도 방어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몇몇 전선에서 싸울 수 있고, 그렇게 할 준비가 됐다”고 강조했다.
가자 전쟁 발발 직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레바논 접경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은 최근 들어서는 전면전 위기를 부르고 있다. 지난 18일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레바논 남부에서 국경을 넘는 작전 계획을 승인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헤즈볼라는 “전면적으로” 파괴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맞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19일 텔레비전 연설에서 금지선이 없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위협했다. 그는 유럽연합 회원국인 키프로스가 이스라엘군에 레바논을 공격할 기지나 영토 이용을 허락하면, 미사일이나 드론의 합법적 목표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키프로스까지 공격해 확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난민 처음 발생한 이스라엘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충돌한 것은 하마스를 도우려는 헤즈볼라의 ‘도발’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고, 가자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난을 돌리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전투의 격렬한 국면’ 종언을 밝히면서, 총부리를 헤즈볼라로 돌리는 것은 현실적이고 절박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헤즈볼라의 충돌로 레바논과 접경한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서 약 10만명의 주민들이 소개돼, ‘난민’ 신세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건국 이후 수많은 전쟁을 벌이며 팔레스타인이나 주변 국가 주민들을 난민으로 만들었으나, 자신들 주민이 난민이 되는 사태는 사실상 처음이다. 가자에서 하마스를 소탕하려다 북부 주민들을 난민 신세로 만들고, 이 사태는 헤즈볼라와의 분쟁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네타냐후는 난민이 된 이스라엘 주민들을 병력 재배치와 함께 레바논 접경지대로 귀환시킬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외교적으로 할 수 있다면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법으로 할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주민 모두를 집으로 귀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차제에 이스라엘은 접경지역에서 헤즈볼라를 몇 ㎞ 물러나게 해, 2006년 레바논 전쟁 때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실질적으로 발효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의도대로 헤즈볼라가 순순히 움직일 가능성은 없다. 가자 전쟁 동안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을 통해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쪽이 자신들 국경 안으로 몇 ㎞ 물러나면서 완충지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1980년대 초반 이후 이스라엘과의 분쟁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에 서 있다. 헤즈볼라가 이 지렛대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명분이 아니라 실리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전투 국면 전환을 밝힌 것도 헤즈볼라와의 분쟁이 촉발한 북부 지역에서의 압력이 작용했다.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저항의 축’ 세력들로서는 이스라엘을 흔들어놓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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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보다 우월한 헤즈볼라”
이스라엘이 봉착한 문제는 외교적 해결이 무망하다. 결국 군사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두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하나는 현재대로 제한전을 벌이면서 그 강도를 높이는 방안이다. 레바논 남부에서 지역적으로 한정된 소규모 작전을 벌이며 헤즈볼라의 입지와 시설을 파괴해 헤즈볼라를 철수시키는 것이다. 국제적인 비난이나 레바논 국가 전체의 반발을 줄일 순 있으나, 군사적으로 효율적인지는 의심스럽다. 헤즈볼라는 이미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전략적으로 패퇴시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때보다도 더욱 강력해졌다. 헤즈볼라는 분권화된 지휘 체계,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대원들의 능력 등으로 이스라엘의 제한전을 무력화하면서 오히려 이스라엘 영토로 반격을 가할 여지가 크다. 이스라엘로서는 혹을 떼려다 더 붙이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전면전이다. 레바논으로 대규모 지상전 침공을 감행해, 가자에서처럼 레바논 남부를 초토화하며 무인지대로 만들어 헤즈볼라를 밀어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 내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치안장관 등 극우 세력들이 주장하고 있다. 전면 침공을 벌인다면, 헤즈볼라의 전투 역량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란 등 외부로부터 보급선을 차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레바논 안팎에서의 대규모 공습이 불가피하다. 이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 있는 이란이나 친이란 세력들과 그 자산에 대한 공습을 의미한다. 중동 광역전쟁으로 가는 길이다.
찰스 브라운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23일 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이란 및 친이란 세력들을 끌어들이는 “광역전쟁의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며 “헤즈볼라는 전반적인 역량, 로켓 등에서 하마스보다 더 우월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4월 이란이 이스라엘을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했을 때보다도 헤즈볼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더 어렵다고 자인했다.
특히, 가자 전쟁 동안 후티 반군인 안사르 알라는 홍해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선박을 공격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그 존재감과 실력을 과시해왔다. 후티는 지난 23일 ‘이라크 이슬람 저항’과 함께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구에서 4척의 배를 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전면 공격하면, 홍해뿐만 아니라 지중해에서도 물류 대란이 우려된다.
가자전쟁 초기 이스라엘에 헤즈볼라와의 제2 전선은 국제적 비난을 돌리고 전쟁의 명분을 강화하는 구실이었으나 이제는 피할 수 없는 덫이 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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