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사이언스] 퇴장하는 해열제 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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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열제 잘 듣네'좌약'이에요. 기절한 사람한테 약을 먹일 수가 있어야지."
오대수가 들고 있던 약은 한미약품의 좌제(좌약) 해열제인 써스펜좌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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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 "해열제 잘 듣네…'좌약'이에요. 기절한 사람한테 약을 먹일 수가 있어야지."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영화 '올드보이'에서 낙지를 먹다 고열로 갑자기 기절했다 깨어난 오대수(최민식 분)가 '한미약품'이 선명하게 인쇄된 약 포장지를 들고 당황스러워하자,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 미도(강혜정 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한다.
오대수가 들고 있던 약은 한미약품의 좌제(좌약) 해열제인 써스펜좌약이다. 좌제는 먹는 약인 경구형, 혈관 등에 투여하는 주사제와 달리 직장 등에 투여하는 형태의 약을 말한다.
가현문화재단이 2022년 발행한 '한국 제약산업의 큰바위얼굴 - 임성기와 한미약품'에 따르면, 한미약품 그룹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은 1973년 회사 창립 직후부터 소프트캡슐, 발포제, 씹어먹는 츄정 등 여러 제형 개발에 적극적이었으며 특히 1976년 국내 최초로 좌제인 써스펜좌약을 개발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고열을 앓는 어린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약을 먹자마자 토해버리는 일도 잦아 낭패를 겪기 일쑤다. 국내에 좌제가 전혀 없던 시절, 임성기는 해열제 좌제 개발에 도전했다. 처음엔 수동식 기계로 소량을 생산해 출시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써스펜 좌약은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상비약이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써스펜 좌약은 1980년대 "직장에서 직접 흡수되는 써스펜은 해열효과가 아주 빠릅니다"는 문구로 TV 광고도 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MBC 일요 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에 출연해 인기를 끈 배우 이영범이 광고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써스펜 좌약의 인기에 다른 좌제 해열제도 속속 출시됐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파세몰좌약(신일제약), 아세펜좌약(에스트라) 등과 이부프로펜 성분의 삼일부루펜좌제(삼일제약) 등이 80~90년대 출시됐고, 한미약품은 1991년 아세트아미노펜에 DL-메티오닌 성분을 더한 복합써스펜좌약을 추가로 출시하는 등 지금까지 국내에서 모두 22종의 좌제 해열제가 국내 품목허가를 받아 출시된 바 있다.
하지만, 좌제 해열제는 연령이나 체중에 따른 투약 용량 조절이 어려운데다, 개별 포장형 시럽제의 인기가 높아지고 물 없이 녹여 먹을 수 있는 가루(파우더) 형태 해열제도 출시되는 등 투약 편의성을 높인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부분 좌제 해열제는 생산을 중단했고, 2019년 1월 삼일제약이 삼일부루펜좌제 품목허가를 취하하면서 이후 한미약품의 복합써스펜좌약이 국내 유일한 좌제 해열제로 남게 됐다.
그러다 지난 17일 한미약품이 복합써스펜좌약도 오는 8월 23일 자로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하면서 국내에서 좌제 해열제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한미약품은 단가 상승에 따른 채산성 저하를 공급 중단 사유로 들며 현재 보유제품까지만 공급하고자 한다고 식약처에 밝혔다.
실제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복합써스펜좌약은 국내 유일한 좌제 해열제임에도 2020년 이후 생산규모가 연간 1억원을 넘지 못했다.
식약처가 좌제 해열제 공급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행정지원이나 약가 인상 건의,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긴급도입 등의 조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다양한 대체 약품이 많아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해열제는 아니지만 좌제 형태의 약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열·치핵 통증 완화 등에 쓰이는 일동제약 푸레파인마일드좌제, 변비약으로 잘 알려진 둘코락스좌약 등은 여전히 제조·수입돼 판매되고 있다.
ra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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