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는 지루한 교수, 부캐는 매력적인 킬러[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히트맨>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냉혹한 킬러가 등장하는 액션 영화를 기대하셨나요.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킬러’는 사람을 ‘거의’ 죽이지 않으니까요.
개리 존슨(글렌 파웰)은 미국 한 대학의 심리학·철학 교수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려 하지만, 학생들은 존슨 교수의 니체 강의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학생들이 존슨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면 오히려 흥미를 느낄지도 모르겠군요. 존슨은 아르바이트로 경찰 잠복근무도 돕습니다. 처음엔 보조적 역할이었으나, 잠복근무하는 경찰이 정직당한 사이 현장에 나가게 되죠. 존슨은 ‘론’이라는 살인청부업자 행세를 해서 의뢰인을 만나 증거를 채집한 후 그 의뢰인을 체포되게 합니다.
존슨은 부업에 최선을 다합니다. 의뢰인이 어떤 사람인지 미리 조사한 후 그가 그리는 살인청부업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동료를 죽이려는 거친 육체노동자, 남편을 죽이려는 부유한 백인 여성, 엄마를 죽이려는 청소년 앞에 각기 다른 분장을 하고 나타납니다. 가발, 틀니, 스티커 타투를 동원해 변신합니다.
존슨이 억압적인 남편을 죽이길 원하는 매력적인 여성 매디슨(아드리아 아르호나)과 만나면서 이야기 흐름이 달라집니다. 존슨은 매디슨의 의뢰 비용을 돌려준 뒤 그 돈으로 새 삶을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살인청부 의뢰인을 체포할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이죠. 이후 둘은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경찰은 존슨의 일 처리 방식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감독은 리처드 링클레이터입니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시리즈와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의 바로 그 감독입니다. 사람은 안 죽이고 대화를 많이 하는 킬러의 모습에선 ‘비포’ 시리즈가, 엉뚱한 일을 맡았으나 자신만의 참신한 방식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스쿨 오브 락>이 연상됩니다.
존슨은 킬러 역할에 심취하면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흔하디 흔한 ‘혼다 시빅’을 타는 지루한 교수에서 매력과 재치를 겸비한 남자가 되어 갑니다. 존슨은 기말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분명히 아는 게 하나 있다면 각자의 현실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거야. 그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길 권할게. 너희가 바라는 자아를 쟁취해.” 학생들은 그사이 존슨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관객은 존슨이 철학 교수였다면 겪지 않았을 법한 엄청난 경험을 한 뒤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됐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합니다. 실제 게리 존슨은 베트남 참전용사이자 대학교수였고, 잠복근무 요원으로 70건이 넘는 체포 기록을 남겼으며, 동물을 사랑하는 불교 신자였다고 하네요. 엄마를 죽이려 한 10대 소년이 대가로 컴퓨터게임 소프트웨어를 건넸다는 에피소드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입니다.
‘천의 얼굴’ 지수 ★★★★ 의뢰인에 따라 달라지는 킬러의 모습
‘살생금지’ 지수 ★★★ 독실한 불교 신자가 킬러 행세를 했다고?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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