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벗고 인사→홈런→안타→도루…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KT, 비수 꽂았는데 왜 웃지 못했을까
[OSEN=수원, 이후광 기자]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친정 KT 위즈에 비수를 제대로 꽂은 박병호(38·삼성 라이온즈). 9회초까지만 해도 ‘박병호 더비’의 주인공이 되는 듯 했지만, 팀이 9회말 뼈아픈 끝내기패배를 당하며 옛 동료들이 기쁨의 세리머니 하는 걸 먼발치서 지켜봐야 했다.
박병호는 지난 2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T 위즈와의 시즌 6번째 맞대결에 7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1득점 1도루로 활약했다.
박병호는 박병호였다. 친정팀과의 첫 만남 첫 타석에서 아치를 그렸다.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헬멧을 벗어 1루 관중석의 KT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그는 볼카운트 0B-1S에서 KT 선발 조이현의 가운데 커브(114km)를 받아쳐 좌중월 선제 솔로홈런(비거리 125m)을 쳤다. 6월 13일 대구 LG 트윈스전 이후 약 2주 만에 나온 시즌 9번째 홈런이었다. 박병호는 KT 시절이었던 5월 8일 수원 NC 다이노스전 이후 51일 만에 수원 담장을 넘겼다.
경기 전 시즌 타율이 2할1리까지 떨어진 박병호의 방망이는 매서웠다. 박진만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 “박병호 정도의 베테랑이면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 경험이 많지 않은가. 친정을 만나면 눈빛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는데 첫 타석부터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
두 번째 타석도 안타였다. 3-0으로 리드한 4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조이현 상대 중전안타를 치며 5월 31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 이후 약 한 달 만에 한 경기 멀티히트를 달성했다. 조이현을 강판시키는 한방이었다. 이후 이병헌 타석 때 2루 도루를 성공시키며 이적 후 첫 도루까지 기록했다. 그것도 친정팀을 상대로 말이다.
박병호는 이후 6회초 헛스윙 삼진, 9회초 1루수 파울플라이를 기록하며 친정과의 첫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멀티히트에 힘입어 시즌 타율은 2할1리에서 2할8리로 상승했다.
삼성은 선발 데니 레예스의 6이닝 2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호투와 함께 4회초 김영웅이 2점홈런, 6회초 윤정빈이 희생플라이를 날리며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왔다. 8회까지만 해도 2회초 박병호의 홈런이 이날의 결승타가 되는 듯 했다.
삼성 마운드는 레예스가 내려간 7회말부터 흔들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승현이 선두타자 오재일 상대 10구 끝 볼넷을 내준 게 화근이었다. 이어 문상철의 좌전안타, 3루수 김영웅의 포구 실책으로 무사 만루에 몰렸고, 김상수 상대로 2타점 우전 적시타를 맞았다. 그리고 8회말 김태훈이 선두타자 강백호 상대로 좌중월 솔로홈런을 맞으며 3-4 턱밑 추격을 허용했다.
삼성은 4-3으로 근소하게 앞선 9회말 ‘세이브 1위’ 오승환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러나 결과는 새드 엔딩이었다. 선두타자 황재균 상대 2루타를 허용한 뒤 김상수의 희생번트에 이어 대타 강현우에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고, 백업 외야수 홍현빈을 만나 초구에 2타점 역전 끝내기 3루타를 맞았다. 4-5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순간이었다.
KT는 지난달 28일 삼성에 박병호를 내주고, 반대급부로 오재일을 받아오는 대형 1대1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KT에서 거듭된 부진과 함께 설 자리를 잃은 박병호가 구단에 돌연 이적을 요청하면서 KT 구단이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박병호 카드에 매력을 느낀 삼성이 오재일 카드를 제시하면서 38살 베테랑 선수들 간의 빅딜이 성사됐다.
트레이드로 유니폼을 맞교환한 뒤 31일 만에 만난 두 절친. 멀티히트를 친 박병호와 달리 오재일은 친정을 만나 긴장했는지 3타수 무안타 1볼넷 1득점에 그쳤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웃은 건 홈런을 친 박병호가 아닌 무안타의 오재일이었다. 박병호는 굳은 표정으로 친정팀의 끝내기 세리머니를 보며 씁쓸하게 위즈파크를 떠났다.
/backlight@osen.co.kr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