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프리즘] 불안은 나의 힘

권대익 2024. 6. 2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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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사람에게 인종·문화와 무관하게 얼굴 표정으로 드러나는 기본 감정이 있다고 하였다. 6가지로 제시된 감정은 행복·슬픔·공포·분노·놀람·혐오감 등이었다. 최근에는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신경과학-심리학 연구팀에서 얼굴 근육 변화를 기반으로 행복·슬픔·놀람·분노의 4개 감정이 모든 감정의 시작이라 주장하였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이 과학적 근거에서 출발한다. 주된 캐릭터는 주인공 머릿속에 살고 있는 감정들이다. 기쁨(Joy)·슬픔(Sadness)·버럭(Anger)·까칠(Disgust)과 소심(Fear)이다. 고향을 떠난 라일리가 낯선 도시와 새로운 친구들에 적응해 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슬픔을 억누르다가 우여곡절 끝에 안정을 찾아가는 감정의 이야기로서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준 영화였다.

주인공의 고등학교 하키팀 겨울캠프 이야기를 다룬 2편에서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했다. 불안(Anxiety)과 부럽(Envy), 따분(Ennui), 당황(Embarrassment)이다. 추억(Nostalgia) 할머니도 카메오 출연을 시작했다. 캠프에서 주인공은 선망의 대상을 만난다. 아빠도 이번에 잘 하면 선수 선발과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며 기대를 내비친터라 이번에 뭔가 보여줄 것을 결심한다. 뭔가 격렬히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이다. 하고는 싶은데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는 시점에 ‘불안’이라는 새 감정이 전면에 등장한다. 더구나 사춘기가 시작돼 감정 계기판을 다루는 것이 아주 복잡해졌다.

부러움은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게 만든다. 옷차림과 행동도 따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잘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하고 조금만 아닌 것 같으면 당황하고 부끄러워한다. 이건가 하고 시도한 것이 잘 안되는 순간에는 ‘불안의 폭풍(Anxiety Storm)’에 빠져 숨을 가다듬으려 해도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다. 곧 공황에 빠질 것만 같은 순간이 영원하게 느껴진다. 결국 자존감의 근원이었던 기쁨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감정의 도움으로 몰아치던 불안을 달래면서 안정을 찾아간다.

아마도 원해서 간절히 노력한다고 한 번에 잘 안 될 수도 있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도 있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무언중에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또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공 친구들이 좀 떨어져 지켜봐 주던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설명이 잘 안되는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다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좌절하기도 하고, 심하면 공황과 우울 증상에 빠질 수도 있었던 그 이야기를 하도 잘 표현해 영화를 보는 내내 두 눈에서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불안과 같이 등장하는 감정들은 사회 생활과 인간관계를 하면서 생겨나는 2차적인 감정들이다. 이 중 불안은 뭔가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성적, 경제적 성취 등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불안해진다. 주변에 비슷한 경우를 찾아 흉내를 내면서도 이렇게 하면 될지 몰라서 불안하다. 청소년기에는 알게 모르게 주입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시킬까 걱정한다. 불안인지도 모르면서 불안해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 불안은 필요하다. 마치 운동선수나 수험생처럼 적당히 긴장해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 타고난 재능만으로 충분한 노력 없이 순간의 순발력만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별로 없다.

경쟁해야 하거나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려면 적당한 긴장과 불안이 있어야 한다. 공부한다면서 딴 생각을 하는 아들 뒤통수에 내일이 시험이라며 “긴장 좀 하자”는 엄마의 잔소리는 그래서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의 몸과 신경이 받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Eustress)이다. 물론 그 적당함 정도는 개인의 기질과 성격, 회복력의 수준에 따라 다 다르다.

영화 속 라일리는 감정의 격동이 시작된 첫 순간을 잘 이겨낸 것 같다. 이 소녀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해심 많고 늘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있고, 타고난 성격도 밝고 자존감이 높은 편이다. 더구나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그녀의 편이니 말이다. 이제 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 불안의 격동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분노 폭발이 시작되어서 마음 불편함과 분노에 휘둘리는 경우도 있고, 잘하지 못할까 그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세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심한 우울감과 좌절에서 한참을 시달리기도 한다. 성향에 따라서는 불안의 폭풍보다 부러움과 당황, 수치심에 빠져 분노와 슬픔, 게으름의 감정에 지배당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 모두가 편안하고 성숙한 부모, 지지해주는 친구를 가진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 슬픔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도 나 스스로 조절하고 살아가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억울해하고 슬퍼하는 건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의 욕심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한 미래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아주 황당한 희망사항이 아니라면 건강한 욕망을 가지고 이를 위한 계획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그 욕망에 근접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조금 늦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지금 느끼는 불안을 내 인생을 살아가는 연료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로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내 미래에 대한 확고한 상상, 그리고 이를 위한 매일의 계획과 일정표, 그리고 그에 따라 매일 실천하는 행동은 그 불안이 너무 과해지지 않도록 하면서 나를 매일 씩씩하게 도와줄 것이다.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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