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100번 이상…이젠 도박이 된 주식, 끊는 방법 없을까요?” [투자360]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국내 주식투자자가 1400만명으로 증가한 가운데 주식 투자에 지나친 시간을 할애하게 돼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국내 유명 커뮤니티에는 이같은 고민을 올린 사연글이 올라왔다. 서른 한살 남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사람은 스물 일곱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식·코인 투자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월 100만원씩 모아 집 사는 걸 불가능할 것 같아 시작했다”며 “작년까진 운이 좋아 5000만원 이상 수익이 났었고 자산이 1억 이상까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을 생각하는 여자친구에게도 1억원 정도면 대출을 받아 전세아파트 정도는 구할 수 있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며 “정말 행복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하락장 이후 1억원 중 4000만원 이상 손실을 봤고, 5년간 재직한 회사는 잠시 쉬고 있고, 이직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제가 하는 코인, 주식은 투자가 아닌 도박이라는 생각이 크게 든다”며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코인 어플을 보게 되는 내 자신이 정말 부끄럽고, 잠깐 지나쳤던 큰 돈이 한 달 사이에 없어진 것에 회의감과 얼른 복구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스트레스만 받고 몸도 안좋아지고, 비록 빚을 내서 투자한 건 아니지만 수중에 있던 돈이 없어지니 멘탈이 안 잡힌다”며 “지금이라도 코인, 주식을 끊고 일상생활을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이 글에 ‘끊기 쉽지 않죠. 저는 손실이 글쓴이님보다 더 크다. 근데 뭐 필요한 돈도 아니고,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망하지 않는 주식이라 그냥 덮어 놓고 잘 안본다’라는 댓글을 달리자 이 사람은 “전 하루에 100번 이상은 보네요”라고 다시 댓글을 달았다.
한편, 주식투자 경험이 있는 국내 직장인 10명 중 2명가량은 자신을 '주식 중독'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주식투자를 하는 직장인의 절반 이상은 업무 시간에 주식 시세를 틈틈이 확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HR테크 기업 인크루트는 주식 투자 경험이 있는 직장인 820명을 대상으로 한 주식 투자 현황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올해 들어 주식을 산 경험이 있는지 묻자 응답자의 86.1%가 '매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매수 경험자는 평균적으로 개인 자산의 15.5%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시간 중 개인 주식 현황을 얼마나 확인하는지 묻자 '종종 한다'는 응답 비율이 51.6%로 가장 높았다. '매우 자주 한다'는 응답 비율은 13.3%였다. '거의 하지 않는다'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은 각각 28.5%, 6.7%였다.
업무 시간에 주식을 매수 내지 매도한 경험에 대해서는 '매우 자주 한다'(12.5%)와 '종종 한다'(64.4%)는 응답 비율이 76.9%를 차지했다. '거의 하지 않는다'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은 각각 20.7%, 2.4%였다.
전체 응답자를 대상으로 본인이 '주식 중독'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응답자의 17.4%가 '대체로 그렇다', 3.5%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10명 중 2명은 스스로를 주식 중독이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대체로 아니다'는 44.5%, '전혀 아니다'는 34.6%로 나타났다. 주식 투자로 이익을 봤다는 응답자는 10명 중 1∼2명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15%가 '이익을 실현했다'고 답했다. '이익도 손실도 없다'는 응답자는 35.1%,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응답자는 49.9%였다.
2022년에는 안영규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한국중독범죄학회보에 실은 '주식중독의 원인 및 대응방안' 논문에서 수억원을 잃고 수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정상 생활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4명의 주식중독자를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다. 연구 대상자들은 주식투자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버는 경험을 거치면서 노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드러냈다.
주식으로 2억원을 잃은 C(45)씨는 "애들 학원비 번다고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주식으로 돈 벌던 것이 생각나서 이제 다른 일은 못 한다"며 "식당에서 일당 10만원, 이까짓 것 클릭 한 번으로 버는데 땀 흘려 일할 생각이 들겠나. 노동 의욕은 완전 상실이다"라고 털어놨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 가치로 보면서도 투자에 실패한 자신의 처지에 괴리감을 느끼거나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A씨는 "요즈음은 돈이 인격 아닌가"라며 "직장 다녀서 집 살 수가 있나. 어차피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주식밖에 없다"고 말했다. B씨는 "전에 증권회사 직원이었는데 공금 7억원에 손댔다가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있다"며 "큰돈을 걸지 않으면 주식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남의 돈 만지면 또 그것으로 주식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주식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식투자로 5억원을 잃은 전문직 종사자 D(49)씨는 "지인들은 어제도 3천을 벌었네, 5천을 벌었네 하니까 밤에 잠이 안 온다"며 "주식 그만하라고 상담받을 때마다 얘기를 듣지만 내가 종목을 잘못 고른 거로 생각하지, 중독치료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C씨는 "이 문제(주식)로 남편과 수도 없이 싸웠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 없이는 살아도 주식 못하면 눈앞에 어른거려서 살 수가 없다"면서 "그냥 착실하게 모았으면 2억원은 통장에 있었을 텐데, 그래도 투자하다가 날린 거고 나는 중독자는 아니다. 알코올중독이나 이런 것하고는 다르다"고 단언했다.
실제 일선 상담센터에서도 주식중독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의뢰인이 늘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따르면 주식 문제로 센터를 찾는 의뢰인은 매년 100여명 대에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으나, 2019년 219명에서 2020년 402명으로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박진희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상담사는 "내담자들 상당수는 주식은 불법이 아니고, 본인은 어느 정도 정보를 분석해서 투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며 "단순 투자라고 생각해 치료 시기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도박이나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상자는 중독의 의미를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주식에서는 중독에 대한 이해가 매우 낮다"며 "상담자나 의료진이 주식 교육을 받고 주식중독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심리적 공감대를 형성해 치료 효과도 높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주식이 '국가가 인정한 도박'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유독 주식의 사행성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고 국가 또한 이에 대한 경고를 게을리한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정 수준 이상의 중독성 투자를 사행행위에 포함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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