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폭염살인… 에어컨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제프 구델

김지수 작가 2024. 6.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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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사망자 50만명, 바다는 끓고 식량은 마른다
무더위에 정전… 48시간 안에 1만 3천 명 사망
1도 오를 때마다, 성적 떨어지고 범죄율 높아져
더위는 가난한 사람부터 공격한다
폭염시 에어컨 없으면 창문 닫고 커튼 쳐 열 차단
최전선의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Jeff Goodell). 폭주하는 더위에 대한 정밀한 현장 르뽀 ‘폭염살인(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을 썼다./사진=Matt Valentine

“오늘날 우리가 삶에서 만들어내는 열은 어딘가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열은 세상 모든 것에 가닿는다.’-제프 구델의 ‘폭염 살인’ 중에서.

우리는 화염을 들이마시는 것 같은 뜨거운 세계에 들어섰다.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전국은 열대야로 몸살을 앓았다.

기록에 의하면 인간이 지구에서 지금껏 겪은 것 중 가장 뜨거운 한 해는 2023년이었다. 뉴욕에서는 더위에서 발화한 캐나다 산불 연기 때문에 하늘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처럼 오렌지색으로 물들었고, 플로리다키스제도에서는 물고기들이 수온 38.5도로 치솟은 물속에서 익어버릴 정도였다. 브라질에서는 더위가 아마존강의 물을 빨아들여 열대우림의 땅 상당 지대가 말라붙었다.

기후과학자들은 매해가 기록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이 말은 2024년 올여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이며 동시에 미래에서 보면 가장 추운 한 해로 기록될 거라는 얘기다.

숨 막히는 열탕에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지구라는 한증막엔 열고 나갈 문이 없다.

기후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폭염 르뽀르타쥬 ‘폭염살인’을 읽는 내내 나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다른 버전인 ‘열국열차’를 타고 달궈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남극에서 텍사스까지, 파키스탄에서 파리까지… 갈피마다 추락하는 새, 허덕이는 물고기, 말라버린 작물, 굶주린 곰, 쓰러지는 노동자, 졸도하는 도시의 산책자들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마지막 화석연료를 태울 때까지 달리는 이 ‘열국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은, 오싹한 한기를 즐기는 부자와 속수무책으로 익어가는 빈자들로 나뉘어져 대치 중이었다. 내가 만약 할리우드 제작자라면 당장 실내 온도가 계급이 된 이 현재진행형의 풍경을 재난 블록버스터로 만들었을 것이다 .

정점을 찍은 이산화탄소 농도, 엘니뇨 그리고 급격히 뜨거워지는 바다… 단테의 ‘신곡’을 읽듯,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염의 지옥도를 읽다가 다급하게 제프 구델에게 SOS를 보냈다. 덥다는 푸념 대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위해.

구델은 자신이 사는 텍사스주 오스틴이 2023년 섭씨 40.5도를 웃돈 날이 40일도 넘었다고 증언 했다. 매시간 3천만 톤씩 녹는 그린란드 민물의 유입으로 미국 동부 연안의 해수면은 더 빨리 상승하고 유럽의 겨울은 더욱 추워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태양은 꼭 우릴 죽이려고 누군가 들이댄 총구같다. 누구도 자신이 더위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열사병으로 인한 사망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이런 광대한 폭염 르포르타주를 시작할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때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기온이 섭씨 47.2도까지 오른 2018년, 여름이었다. 시내 호텔에 머물고 있었고 20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팅이 있었다. 택시나 우버를 타는 대신 걸어가기로 하고 늦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몸의 이상을 느꼈다.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났다. 만약 내가 20블록을 더 걸어야 했다면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그 순간 더위가 얼마나 위험한지 체감했다. 마치 벌레를 잡는 전기 포충기처럼 불볕더위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10년 넘게 해수면 상승을 취재하며 기후변화 글을 썼지만, 피닉스에서 그 더위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폭염의 시급성과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많은 사람은 더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구델은 폭염이 태풍이나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도시를 휩쓰는 순간을 그려낸다. 2021년 여름, 폭염이 포틀랜드를 강타했다. 대양에서 발산되는 열이 한데 모여 열돔이 형성되자 24시간도 되지 않아 포틀랜드 시내 기온은 섭씨 24.4도에서 45.5까지 치솟아 147년 관측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여기저기 사이렌이 울리고 응급실엔 헐떡이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산맥 꼭대기의 눈이 녹아 토사가 되고 따뜻한 강물이 불어나자, 거슬러 오르던 수만 마리의 연어 떼는 숨도 못 쉰 채 폐사했다. 음향 증폭기가 있다면 더위 때문에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어린 새, 파열된 나무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혀를 찼다.

열기는 동네마다 달랐다. 포틀랜드 최악의 빈민가인 렌츠의 측정 온도는 51.5도였지만, 녹지가 조성된 부자 동네 웰래밋 하이츠는 15도나 더 낮은 37.2도였다. 그렇게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 되고 더위는 더 많은 죽음과 더 잦은 전쟁을 몰고 온다고 구델은 쓰고 있다.

-책에는 폭염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특별히 캘리포니아에서 하이킹하던 중 4시간 만에 열사병으로 사망한 젊은 가족을 앞부분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

“그들은 폭염의 위험이 얼마나 일상적인가를 보여준다. 폭염은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나 심장이 약한 노약자만 걱정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젊고 건강하고 부유한 선진국 사람이라도 더워서 죽을 수 있다.”

숨 막히는 열탕에선 뛰쳐나갈 수 있지만, 지구라는 한증막엔 열고 나갈 문이 없다.

-열역학 1, 2 법칙이 우주의 이해를 돕는 토대인 동시에 폭염의 핵심 요인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열역학 제1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파괴될 수 없고 전환될 수만 있다. 발전소나 엔진은 바로 이 법칙을 활용해서 열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한다. 그러나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시스템에서는 엔트로피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열이 혼돈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높은 수준의 열은 우리 몸을 변형시켜 단백질을 분해하고 세포막을 녹인다. 열이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방식이다. 생명은 조직적인데 열은 이 조직을 해체한다.”

-열은 어떤 방식으로 생명을 앗아가나?

“열사병에 이르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해가 내뿜는 열기로 피가 따뜻해지면, 심장은 열을 식히려고 최대한 많은 피를 피부 쪽으로 밀어낸다. 피와 산소가 부족해진 간과 신장과 두뇌로 인해 시야가 멍해진다.

체온이 40.5에 달하면 몸은 에어컨 꺼진 아궁이가 되어 팔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41.6이 넘으면 세포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단백질의 매듭이 풀어지면서 몸의 내부가 녹아내리고 해체가 일어나는 것이다.”

-요즘은 도시가 열섬이 되어 한증막처럼 느껴진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무엇인가?

“정전이다. 정전과 폭염은 매우 위험한 조합이다. 옛날 사람들은 더운 지역에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갖춘 건물을 짓기 위해 공기의 흐름, 태양의 위치, 심지어 건물 자체의 색까지 고려했다(멕시코나 그리스처럼 덥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의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식 건물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에어컨만으로 모든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졌다.

전기가 끊기지 않는 한 괜찮다. 정전되는 순간 현대식 건물은 순식간에 치명적인 대류식 오븐이 된다. 내가 책에서 인용한 한 최신 연구에서 피닉스에서 극심한 불볕더위로 5일간 정전이 발생했을 때를 조사한 결과는 첫 48시간 동안 13,000명 이상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했다.”

에어컨의 인기는 무더운 기후로 외면 받던 미국 남부로 북부 인구를 대거 이주시킬 정도였다. 1940~1980년대 민주당 텃밭이었던 선벨트에 보수 성향의 은퇴자들이 대거 몰려 대선 판도를 뒤엎기도 했다.

코카콜라, 감자튀김처럼 에어컨은 미국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에어컨은 엄청난 전기를 잡아먹으며, 도시를 헤어 나올 수 없는 폭염의 블랙홀로 밀어 넣는다. 안락한 냉방 문화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중독으로 자리 잡았다. 2022년 월드컵을 개최한 카타르는 심지어 야외에서도 냉방을 틀었다. 2050년 에어컨은 45억 대가 넘어 스마트폰을 따라잡을 것이다.

-이제는 에어컨 없는 지구는 상상할 수 없다. 에어컨이 냉방 기술이 아니라 열기의 위치를 바꿔주는 도구일 뿐이라해도, 과연 우리가 에어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나?

“그 누구도 에어컨 없이 살자고 주장할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에어컨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극심한 더위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으로 간주해서 에어컨을 설치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단언컨대, 우리는 괜찮지 않을 것이다.

첫째, 전 세계 7억 5천만 명의 사람들이 에어컨은커녕 전기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기온이 41도까지 오른 어느 날, 애리조나주 전기회사는 51달러의 연체금을 내지 못한 폴먼 씨 집의 전기를 차단했다. 일주일 뒤 사망한 채 발견된 그의 사인은 ‘열 노출’이었다.

둘째, 에어컨을 가동하는 전력은 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화석 연료에서 나온다. 셋째, 우리는 바다, 숲에까지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다.”

에어컨이 우릴 지켜줄 거라는 착각은 버리라고 했다. 미국적 안락함에 중독돼서 다른 사람, 다른 종, 혹은 주변 세상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눈감으면 되겠느냐고.

실내 온도는 새로운 계급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폭염이 재난으로 선포되고 있다. 무더위에 대한 공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 폭염 지옥을 관통한 경험으로 올여름 한국 상황이 예측 가능한가?

“올여름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 조심스럽다. 점점 더 단기 모델은 예측하기 어렵다. 날씨는 점점 더 혼란해져서 특정 지역, 특정 시간조차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분명한 건 우리가 대기 중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늘어날 때마다 더 길고 극한 폭염의 위험은 커진다는 것이다. 장기 기후모델은 매우 확실하며 지구는 더 뜨거워질 것이다.”

-섭씨 1도 올라갈 때마다 미국의 1년 GDP에서 3천억 달러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시험 성적이 떨어지고 자살, 강간, 폭력 범죄가 많아진다는 게 사실인가?

“사실이다. GDP 손실은 근로자의 생산성 저하, 사업장 폐쇄, 실외 작업 중단에서 비롯된다. 나는 더운 여름에 텍사스에서 이런 현상을 직접 목격했다. 사소한 듯해도 전형적인 예로, 사람들은 더운 날에 아무도 식당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에어컨이 있어도 더위 속에서 몇 블록을 걸어가거나 과열된 차에 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당은 영업 손실을 입는다.

또 다른 예로 폭염은 작업자를 극도의 위험으로 몰아가므로 건설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지연되면 건설비용이 증가한다. 이런 모든 종류의 일들이 증폭 효과를 가져온다.

시험 점수 하락, 자살, 강간, 폭력 범죄 등 이 모든 것은 더위가 주는 미묘하지만 매우 실제적인 심리적 영향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두 더우면 짜증이 나고, 화를 잘 내고, 논쟁을 더 많이 하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책에서 인용한 여러 연구에 기록되어 있다.”

-정작 가장 위험한 곳은 ‘끓는 바다’ ‘사막화된 바다’라고 했다. 바닷속에서 산불이 일어난다는 묘사만으로 섬뜩하다.

“실제로 바다의 동식물군은 불에 타기라도 한 듯 죽어 나간다. 지중해만 해도 2012년, 2015년, 2017년, 2022년 폭염이 닥쳤다. 물의 온도가 11도나 치솟았던 지중해의 폭염 사태는 수중 세계의 산불 그 자체였다. 2021년에는 뜨거운 물 덩어리가 1만 제곱미터 면적의 우루과이 앞바다에서 끓어올랐다.

바다는 기후에서 발생하는 열의 90%를 흡수하는 일종의 방열판(heat sink) 역할과 지구 곳곳에 열을 재분배하는 열 수송 시스템 역할을 한다. 흡수된 열로 인해 수온이 매우 오랫동안 따뜻하게 유지된다.

뜨거운 바다는 특히 높은 고도에서 불며 공기를 순환시키는 강한 바람인 제트 기류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열돔’은 바로 이 제트 기류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폭염은 태풍이나 쓰나미처럼 한순간에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제트 기류 때문에 폭염의 핫스팟에 살게 된 유럽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나?

“유럽에서는 기후에 대한 인식 수준이 꽤 높은 편이지만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이고, 전 세계 그 어떤 곳과 마찬가지로 임박한 기후 재난을 피할 만큼 빠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살면서 수많은 더위를 겪었으나, 2003년 출장차 들른 파리에서 겪은 불볕더위는 끔찍했다. 당시에 몽마르트르 뒤편 에어컨 없는 스튜디오에 머무르다, 숨이 막힐 지경이 돼서 피레네산맥 쪽으로 피신했던 기억이 난다. 단 2주 만에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만 15,000명이었다.

-2003년 여름, 폭염 살인의 비극을 겪은 후, 파리는 어떻게 바뀌었나?

“함석지붕에 그린 루프를 덧대고, 나무를 기후 싸움의 슈퍼 영웅으로 일으켜 세우며 도시 정책을 세워나갔다. 물론 전 세계 도시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는다 해도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을 막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그늘을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며, 주변 열을 식히고, 생물 다양성을 증가시킨다. 나무를 더 많이 심는 것은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 중 하나다.”

-한편 식량 공황 문제도 피부로 다가왔다. ‘인구 100억의 뜨거운 행성의 먹거리를 귀뚜라미와 실험실 단백질로만 충당할 수 없는 노릇이다’라는 문장에서 영화 ‘설국열차’의 끔찍한 ‘곤충바’가 떠올랐다. 옥수수 농가, 가축 농가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내가 방문했던 텍사스 농장의 옥수수는 42%가 절반만 알갱이가 맺혀있었다. 프랑스도 더위로 수확량이 3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옥수수와 가축도 생명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일정한 온도 범위에서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추워지거나 너무 더워지면 적응하거나 죽어야 한다. 간단하다.

폭염은 글로벌 식량 공급 시스템에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다. 옥수수 생산이 감소하면 수많은 식료품값, 고깃값이 오를 것이고,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소련의 종말과 아랍의 봄 사태는 급격한 물가상승에서 시작됐다.”

가뭄으로 인해 지난 20년 새에 줄어든 전 세계의 농업 생산량은 21%다.

-기후 재앙에 대해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최근 미국의 역사를 보면, 기후 재앙은 말할 것도 없고 IT기술로 인한 폐해 등에 대해서도 기업에 책임을 묻기 힘들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로펌에 많은 돈을 퍼붓고 있으니까. 하지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기후 책임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3%를 배출한 엑손모빌 같은 서구 기업이 그간 불볕더위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법적 책임을 지는 일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지도 모른다. 특정 기후 재난을 증명하는 기후변화 원인 규명 과학이 훨씬 더 발전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배달 기사들이 도로에서 픽픽 쓰러져 죽어도, 매튜 매커너히는 여전히 석유를 잔뜩 잡아먹는 SUV를 TV에서 광고한다고 그는 개탄했다.

-취재하면서 가장 신경쓴 것은 무엇이었나?

“독자들이 더위 상승의 영향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 다른 기후 재난과 달리 더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력이다. 창밖을 내다봐도 얼마나 더운지 알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해서 독자들에게 폭염의 위험성을 체감시켜야 했다. 열은 생명체를 멸종시키는 힘이다. 일정 기온을 넘어서면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인류 진화의 기원부터 폭염의 실태까지 파헤친 탁월한 기후 재난서 ‘폭염살인’.

-사실 페름기의 흔적을 읽을 때는 종말론적이 생각이 들었다. ‘침묵의 봄’이 농약 중독의 세계에 경종을 울린 것처럼 이 책이 화석연료 과열의 세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까?

“내가 페름기의 흔적을 본 것은 미국의 과달루프 산맥에서였다. 그곳은 고대에는 해저였다. 3억 년 전 시작된 페름기에 생명체들이 죽은 것은 극단적인 더위 탓이었다. 시베리아 화산들이 격렬하게 분출하면서 수십억 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단번에 대기 중에 쏟아낸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태로 지구의 기온이 거의 14도나 껑충 뛰면서 60도에 달하는 폭염을 지상에 몰고 왔다. 지구가 회복되어 다시 생명력을 되찾기까지 1,000만 년의 시간이 걸렸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역사를 잘 알아도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은 그때와 똑같다.”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자신의 ‘폭염살인’을 함께 거론해 준 것이 감격스럽다고 했다. “카슨은 내 영웅 중 한 명이다. 열정과 과학적 엄밀성, 아름다운 글쓰기의 놀라운 조합이다. 내 책이 그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실외기로 가득찬 도시는 열을 가둔 찜기다.

-과열된 도시를 지나 북극에서 굶주린 곰과 마주쳤을 때 기분이 어땠나?

“아, 배고픈 북극곰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순간!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다. 이 인터뷰에서는 북극권의 배핀섬을 가로지르는 7주간의 스키여행 중에 일어난 일이라고만 말씀드리겠다. 여행의 절반쯤 지났을 때 눈 속에서 북극곰의 갓 찍힌 발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는 북극곰과 마주쳤다.

그다음은, 직접 읽어보시라. 배고픈 새끼를 데리고 있던 북극곰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북극곰도 더워진 지구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폭염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개인들은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폭염의 위험성을 학습하라. 극단적 더위에 노출돼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 우리 몸의 세포가 망가지거나 녹아내린다. 이 열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집에 에어컨이 없다면 폭염시에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서 햇빛과 열을 전부 차단하라.

폭염에 취약한 가족과 친지가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라. 나무를 심고 집을 단열하고 화석 연료 소비를 줄여야 한다. 기후 위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정치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정치인들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투표해야 한다.”

따뜻해진 해류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해안 도시의 주민들도 집을 버리고 이주를 택한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폭염 사망자는 48만 9,000명에 달하며 태풍, 수해 등 모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합계를 넘어선다. 서남극의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5미터 상승하면 플로리다와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며, 한국의 해안 도시들도 전 지구적 기후 이주 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국제에너지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2023년 들어 재생에너지 사용은 50%, 전기차 판매는 31%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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