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거인을 이긴 신예’ 론클라스 블랑 드 블랑 그랑 브뤼

유진우 기자 2024. 6.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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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Underdog)은 우승권에서 거리가 있는 팀이나 선수를 뜻한다. 주로 스포츠 경기에서 사용한다.

언더독이 예상을 넘어 선전(善戰)을 펼치면 재미와 감동은 한층 짙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언더독이 극적인 시나리오를 써내려 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때로는 이런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는다.

흔히 와인 종주국이라 부르는 프랑스 와인 업계는 사업 특성상, 언더독이 등장하기 어렵다. 포도라는 농작물을 기반으로 하는 탓이다.

프랑스 와인 생산 역사는 지금부터 거의 3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 시대 당시 프랑스는 갈리아라고 불렸다. 현재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지방에서는 기원전(BC) 9세기 무렵 포도를 재배했던 유물들이 나온다.

프랑스 와이너리들이 자랑하는 빼어난 양조 기술은 수천 년에 걸쳐 쌓은 포도 재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생 와이너리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랜 와이너리를 단시간에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첨단 산업 관련 노하우도 쉽게 공유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따라잡지 못할 기술 격차가 어디 있느냐고 반박한다. 어찌어찌 빼어난 양조 기술자를 초빙해 양조 기술을 모조리 습득했더라도, 이번에는 더 큰 장애물이 신생 와이너리의 앞을 가로막는다.

포도 재배 핵심은 밭이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특정 농산물이 잘 자라는 지역이 있다. 프랑스는 물론 여러 국가에도 각각 천혜의 포도 재배지가 따로 있다. 이런 알짜배기 포도밭은 인류가 발효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역사에 반비례해 갈수록 줄어든다. 먼저 사업을 시작한 와이너리들이 좋은 포도가 자라는 지역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밭을 뒤늦게 사업을 시작한 와이너리가 돈을 주고 사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히 2010년 중반 이후 좋은 포도밭은 어지간히 넉넉한 자본을 가지고 시작하는 와이너리가 아니라면 감히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만큼 매년 값이 치솟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 페트뤼스(Château Petrus)는 지난 2018년 가지고 있던 포도밭 11헥타르 가운데 20% 정도를 2900억원에 팔았다.

와인 업계에서는 그나마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대거 풀리기 전이었던 탓에 저 정도 가치밖에 못 받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 와인 업계에서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더독이 가능성을 뽐내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소외당한 지역에서, 남들은 하지 않던 새로운 농법을 적용해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펼쳐진다.

그래픽=손민균

프랑스 샹파뉴 지방 샴페인 하우스 버나드 론클라스(Bernard Lonclas)는 대표적인 언더독 성공 신화 사례다.

역사학자들은 문헌을 기반으로 샹파뉴 지역 첫 포도나무가 5세기 무렵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거품이 나는 와인 샴페인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이로부터 1200년이 지난 17세기 초반이다.

샴페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돔 페리뇽(Dom Perignon)이나, 최초의 근대적 샴페인 하우스 루이나(Ruinart)가 이 무렵 속속 등장했다.

버나드 론클라스는 이들 초기 샴페인 하우스가 생긴 이후 300년이 지난 1976년에야 문을 열었다.

버나드 론클라스는 이 샴페인 하우스를 만든 버나드 론클라스 본인 이름이다. 그는 현재 딸 오렐리와 함께 모든 작업을 감독한다.

론클라스는 애초부터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들이 모여있는 비싼 지역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샹파뉴 지방에서 변방에 속하는 바쉐(Bassuet)에서 포도를 직접 키우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역사적인 샴페인 하우스가 즐비한 샹파뉴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km) 이상 떨어져 있는 외곽이다. 와인의 세계에서는 밭고랑 하나 차이에도 가격 차이가 수백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샹파뉴라는 지역 이름만 같을 뿐 바쉐와 기존 유명 산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나 다름없다. 샴페인 애호가가 즐비한 국내에서도 바쉐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샹파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론클라스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 지역이 청포도 품종 가운데 하나인 샤르도네(Chardonnay)를 키우기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실제 지질학적으로 부쉐 토양은 튜로니안(turonian) 석회암층이 깊게 깔려있다. 이 재질 석회암에서 자란 포도나무는 무게감과 짭조름함을 동시에 갖춘 열매를 맺는다.

론클라스는 이 토양 특성을 충분히 포도 열매에 담기 위해 50년 전인 1970년대부터 지속가능 농법으로 밭을 가꿨다. 지금이야 친환경 농법이 뿌리를 내렸지만, 그 당시에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질소 비료를 최대한 사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일 때였다.

그가 공을 들인 결과는 50여 년이 지난 2020년대 들어서야 빛을 냈다.

론클라스 블랑 드 블랑 그랑 브뤼는 그가 자랑하는 샤르도네 품종 하나만 사용해 빚은 샴페인이다.

여러 샴페인 생산자는 특정 품종이 가진 결점을 감추기 위해 여러 종류 포도를 섞어 와인을 만든다. 가령 신선한 과일 향을 뿜어 내지만, 무게감이 부족할 경우 중후한 느낌을 주는 포도 품종을 더해 맛을 보강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샴페인처럼 샤르도네 한 종류 포도만 이용해 와인을 만들면 오로지 그 포도가 품은 맛과 향, 잠재력만 가지고 승부를 봐야 한다.

론클라스가 던진 승부수는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2022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샴페인 업계 가장 권위 있는 행사 CSWWC(Champagne & Sparkling Wine World Championships)에서 그의 샴페인은 심사위원장이 뽑은 올해 최고의 샴페인으로 꼽혔다.

론클라스에 앞서 수백 년 동안 샴페인을 만들었던 대형 샴페인 하우스들을 전부 따돌린 결과였다.

론클라스 블랑 드 블랑 그랑 브뤼는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도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올빈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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