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는 왜 모두 바깥쪽이 작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6.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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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홍예가 있는 문, 옹성, 암문은 모두 바깥쪽 홍예가 안쪽보다 작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성에는 대문이 네 곳이 있다. 장안문(북문), 팔달문(남문), 창룡문(동문), 화서문(서문)이다. 문의 함락은 곧 성의 함락이기 때문에 문은 매우 중요하다. 성을 공략할 때 문을 최우선 공격 목표로 삼는 이유다. 이처럼 안과 밖이 개방된 문은 특별한 방어 대책을 세워야 한다. 화성에는 앞쪽에 옹성을, 좌우에 적대를, 위에는 문루를 배치해 시스템 방어를 구축했다.

이외에도 철판을 입힌 두꺼운 문짝을 설치했다. 의궤에도 “두 선문은 철엽으로 싸고 횡경을 갖췄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문은 문짝을, 철엽은 나무 문짝에 붙여 놓은 철판을, 횡경은 문을 잠그는 나무 빗장을 말한다. 원산석은 문을 닫았을 때 문짝이 밖으로 밀려 나가지 못하게 막는 돌로 문 밖 바닥 중앙에 박는다.

문짝은 회전축을 중심으로 90도로 여닫는다. 나무 축을 ‘지도리’라 부르는데 아래는 돌구멍에, 위는 나무 구멍에 꽂혀 있다. 모든 문짝은 바깥 홍예에 설치했고 안 여닫이로 여닫는다.

홍예에서 아래쪽 수직 부분에 쌓은 돌을 선단석이라 한다. 선단석 위 무지개 모양을 한 돌을 홍예석이라 한다. 모든 문에는 이런 홍예가 안쪽에 하나, 바깥쪽에 하나로 구성돼 있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사이는 그냥 수직 벽이다. 이 벽을 쌓은 돌을 무사석이라 한다.

문, 옹성, 암문의 경우 안과 밖에 홍예가 2개다. 어느 경우나 바깥쪽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작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홍예 크기를 보자. 홍예 넓이는 장안문 경우 안쪽 홍예가 18척2촌, 바깥쪽 홍예가 16척2촌이고, 팔달문은 안쪽이 18척, 바깥쪽이 16척이다. 창룡문과 화서문은 안쪽이 14척, 바깥쪽이 12척이다. 모든 문에서 바깥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2척이 작다.

지금까지 문짝과 홍예의 제도를 보며 누구나 이런 의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왜 문짝을 모두 바깥쪽 홍예에 설치했을까, 왜 모두 안 여닫이로 했을까, 왜 바깥쪽 홍예가 안쪽보다 2척이 작을까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자. 앞서 말했듯 문은 방어에 가장 취약한 시설이므로 방어전략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중 어디가 유리할까? 안쪽에 문짝을 설치하면 안 된다. 안쪽에 설치할 경우 적군이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사이로 들어가 버리면 문루나 옹성 위에서 전혀 볼 수 없다. 홍예 사이에 들어간 적은 마음껏 문짝을 부술 것이다. 반면 바깥쪽에 설치하면 적은 옹성 안에 갇히고 아군에게 완전히 노출된다. 문짝 앞에 도달해도 문루와 옹성 위의 아군에 의해 몰살당한다. 그야말로 독(옹성) 안에 든 쥐가 된다. 이것이 문짝을 바깥쪽 홍예에 설치한 이유다.

안 여닫이와 바깥 여닫이 중 무엇이 유리할까? 바깥 여닫이로 설치하면 안 된다. 바깥 여닫이로 하려면 문짝은 홍예 바깥에 설치해야 한다. 이 경우 문짝과 가장 취약한 부분인 문의 회전축은 외부에 노출된다. 즉, 옹성으로 들어온 적에게 문짝을 내주는 꼴이 된다. 반면 안 여닫이로 설치하면 첫째, 문짝에서 가장 취약한 축을 선단석과 홍예석 뒤에 완벽하게 숨길 수 있고 둘째, 문을 닫으면 적군이 옹성 안에 갇히게 돼 몰살당한다. 이것이 안 여닫이로 설치한 이유다.

모든 문은 안 여닫지, 즉 안으로 여닫게 돼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지금까지 바깥 홍예 안쪽에 설치하고 안 여닫이로 한 이유를 알았다. 가장 취약한 회전축을 선단석과 홍예석 뒤에 완벽히 은폐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문짝을 감추기 위한 폭은 얼마나 필요할까? 완전히 열었을 때 문짝을 구성하는 나무 널판, 띠장, 빗장이 감춰져야 한다. 전체 두께가 최소 1척이다.

문짝이 2개이므로 합하면 2척이다. 이 2척이 바로 안팎 홍예의 크기 차이가 되는 것이다. 차이를 확인해 보자. 장안문 경우 18척2촌과 16척2촌으로 2척 차이가 난다. 팔달문, 북옹성, 남옹성 경우 18척과 16척으로 2척이고 창룡문과 화서문도 14척과 12척으로 차이가 2척이다. 모두 바깥쪽이 안쪽보다 2척이 좁다.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지금도 문을 활짝 연 상태를 보면 문짝 전체가 선단석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로써 문짝을 안쪽이 아닌 바깥쪽 홍예에 설치한 이유, 문의 개폐 방향이 바깥 여닫이가 아닌 안 여닫이로 한 이유,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넓이가 2척 차이가 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옹성의 문도 바깥쪽 홍예 뒤에 문짝을 설치하고 안 여닫이로 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그러면 암문도 마찬가지일까? 답은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의 크기는 다르다. 암문 다섯 곳도 바깥쪽 홍예가 안쪽보다 작다. 안쪽 홍예와 바깥쪽 홍예 넓이 차이는 북암문이 5촌, 서남암문과 동암문이 1척, 남암문 1척3촌, 서암문이 1척5촌이다. 차이가 서로 다른 이유는 암문의 통로 폭과 길이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통로 크기에 따라 문 두께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암문은 경사지에 세워 문짝도 작고, 안팎 홍예 크기의 차이도 작다. 그러나 암문은 적으로부터 문을 보호하려는 의도와 관련은 없다. 원래 암문은 비상시 흙을 쏟아부어 폐쇄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화성의 모든 문에서 바깥쪽 홍예가 안쪽 홍예보다 작다. 문의 취약부인 회전축을 선단석 뒤에 숨겨 보호하도록 설계했다. 모두 문은 안 여닫이로 했다. 문을 닫았을 때 적을 옹성 안에 묶어 놓을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성에서 문과 문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설치 위치, 여닫는 방식, 안팎 홍예의 크기 차이 이유를 살펴보며 정조의 전략적 사고를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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