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융은 ‘원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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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역사의 시작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많이 꼽는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투자금을 불특정 다수로부터 십시일반 받아 위험을 분산시켰다.
무서워서 만들게 된 많은 금융 기법,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금융은 '원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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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역사의 시작으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많이 꼽는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투자금을 불특정 다수로부터 십시일반 받아 위험을 분산시켰다. 툭하면 배가 침몰하는 시절이다 보니, 먹을 때 덜 먹더라도 위험을 나누고자 한 것이다. 경영과 투자가 분리된 첫 사례다.
왕실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인 대상으로 돈을 모집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처음 투자했던 이들은 유대인이라고 한다.
채권시장의 시작은 무엇일까. 이 또한 유대인이 만들었다. 유럽 열강이 서로를 침략하던 시절, 왕은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유대인들에게 “나중에 갚겠다는 증서를 써줄 테니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유대인은 왕이 무서워 일단은 돈을 빌려줬지만, 돌려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고 한다. “그냥 다른 핑계를 대고 우리를 죽이는 것 아냐?”
고민 끝에 유대인은 왕이 써준 서약서(채권)를 쪼개 팔았다. 이른바 셀다운(재판매)이다. 유대인은 약속받은 이자는 다 받을 수 없었지만(재판매하면서 수익을 나눠줘야 했으므로), 어쨌든 돈을 지키고 본인의 목숨을 지켰다.
금융기법의 상당수는 ‘무서워서’ 만들어진다. 무서워서 내 돈을 빌려 간 사람의 신용등급을 꼼꼼히 평가하고, 무서워서 오랫동안 빌려줘야 할 때(만기가 긴 경우)는 금리를 더 매긴다. 무서워서 분산 투자를 하고, 무서워서 분할 매매를 한다.
개인투자자들은 못 믿겠지만, 공매도 또한 무서워서 만든 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선물(先物)을 떠올려보자. 나중에 가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추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것이다.
공매도를 주된 투자 전략으로 삼는 곳은 대표적으로 헤지펀드인데, 헤지펀드라는 이름에서 헤지의 뜻이 바로 ‘방어’다. 예를 들어 전기차 업종에 베팅할 때, 혹시나 투자 방향이 틀렸을 경우 일정 부분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전기차 업종 내 비인기 종목을 공매도하는 것이다. 개인투자자의 오해와 달리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특정 종목을 공매도로 ‘몰빵’하는 사례는 없다.
무서워서 만들게 된 많은 금융 기법,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너와 나의 대출 금리가 다른 것은 신용등급 때문이고, 기관과 나의 공매도 조건이 다른 것 또한 신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겁쟁이들이 위험을 회피하려고 요리조리 안전장치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운동장이 기울어진 것이다.
대부업 최고금리를 낮췄더니 대부업체가 아예 시장을 떠나고 있고, 공매도를 못 하게 막았더니 외국인 투자자가 떠나고 있다(물론 수치상으로는 외국인 순매수가 들어오는 것으로 잡히지만, 공매도 금지가 없었다면 더 많은 자금이 유입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금융은 ‘원래’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금융 기법들로 시장이 자연스레 기울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매해 기회 날 때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억지로 반듯하게 펴려는 것만 같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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