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달러에 맥못추는 亞 통화… 원·엔·위안 ‘추풍낙엽’
내수부진까지 겹쳐…엔·위안 환율 신기록 행진
원화, 엔·위안에 동조화… “절하 압력 더 커져”
“트럼프 당선되면 强달러 더 길어질 가능성”
동북아 3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미국 경제 활황으로 인한 강달러 흐름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만, 대내적인 요인은 제각각이다. 일본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흐름이, 중국은 경기 침체가 약세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경제 기초체력이 과거보다 개선됐지만 원화가 주변국 통화에 동조화하면서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최근 원화와 엔화,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연일 신기록을 쓰고 있다.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27일 1395.8원까지 치솟았다. 4월 16일(고가 1400.8원) 이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엔화 환율은 지난 26일 두 달 만에 처음으로 160엔을 넘겼다. 달러·위안 환율은 20일(7.2604위안) 올해 처음으로 7.26위안을 넘어선 후 지속 상승하고 있다.
◇ 中은 내수 부진, 日은 저금리로 통화 약세
세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한 공통적인 원인은 달러 강세다. 달러 가치는 미국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스위스와 유럽, 캐나다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치솟고 있다. 달러 가치가 높아지면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나머지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상황을 보면 한·중·일 3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한 요인은 제각각이다. 먼저 중국은 내수 경기 침체가 위안화 절하에 영향을 줬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2%를 기록했다. 직전 연도 성장률 3%보다 높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인 2015~2019년에 6~7% 성장한 것과 비교하면 저조한 실적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내수 부진이 저성장의 원인이 됐다. 올해 1월 중국 부동산 대기업 ‘헝다그룹’(에버그란데) 청산의 여파로 부동산 개발·금융 기업 다수가 유동성 악화나 파산 상태에 빠져 있다. 미·중 갈등 심화로 그나마 중국 경제를 이끌었던 수출도 약세를 보이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디다. 지난해 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4.6% 줄어든 3조3800억달러로 집계됐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벗어나기 위해 장기간 지속했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엔화 약세의 원인이 됐다. 마이너스 금리 하에서는 돈을 은행에 맡기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야 한다. 일본은행(BOJ)은 금융기관이 돈을 묶어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도록 하기 위해 2016년 2월 이 제도를 도입하고 단기 정책금리를 -0.1%로 낮췄다.
그 후 일본은 8년 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다가 지난 3월 종료했다. 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서고 임금 상승률이 5%대로 치솟는 등 경기가 살아날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금리를 0.0~0.1%로 낮게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았다. 여기에 국채 매입 등 양적완화 정책도 일부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 상승 폭이 제한됐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엔화가 절상되기 위해서는 일본은행이 매파(통화긴축 선호)적으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서 “금리가 낮다보니 엔화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개인·기업이 많다. 이는 시장에서 엔화 공급을 늘려 엔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韓, 주변국 통화 동조화로 원화가치 하락
한국은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만 놓고 보면 과거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감소로 전환됐던 수출이 작년 10월부터 증가(전년 대비)로 돌아선 데다가, 올해 1분기에는 그간 부진했던 내수도 다소 개선되면서 GDP가 전기 대비 1.3% 상승했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GDP 성장률이 0.6%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경제 흐름도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회복세가 미국 경제의 성장세를 따라가지 못해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세계은행(WB)은 지난 11일 발표한 ‘6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1월 전망 때보다 0.9%p 대폭 상향 조정했다. 경제활동인구 및 노동 공급 증가에 따라 예상보다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WB의 분석이다. 이처럼 미국 경제가 활황을 보이면서 해외투자가 미국으로 쏠리고 있고, 이는 달러 강세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한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인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한 점도 원화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으로 치솟았던 지난 4월 16일 이런 모습이 두드러졌다. 한국은 당시 수출이 증가하면서 달러가 유입돼 원화가치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4월 초부터 불거진 이스라엘-이란 갈등으로 엔화와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자 원화가치도 동반 하락했다. 한·일 재무장관이 공동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대응에 나섰지만 환율은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갔다.
당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면서 “미국 달러화 강세뿐 아니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영향을 미쳤고,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 약세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美 금리 낮춰야 亞통화 약세 잦아들 것”
전문가들은 미국이 금리를 낮추기 전까지는 한·중·일 3국의 통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권효성 블룸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수준에서는 동북아 3국의 통화가 절상되기 쉽지 않다”면서 “달러가 약세가 되면 전세계 투자자금이 신흥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원·엔·위안 약세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더라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강달러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트럼프는 과거 대통령 1기 시절에도 달러 강세를 좋아했고, 이를 부추기는 정책도 많이 내놨다”면서 “대선 직후 이런 흐름이 나타날 경우 내년까지 달러 강달러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보다 긴축적으로 돌아서면 3국의 통화가 절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원화와 위안화 약세 흐름도 달라질 수 있어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 변곡점이 될 것”이라면서 “시장에서는 일본은 7월에 금리를 올리고, 미국은 9월에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3분기를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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