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앞두고 ‘공부 잘 하는 약’ 처방 급증 사회… “수능 해킹 기술 발전에 사교육 의존도 심화”
수능, ‘사고력 중심 평가로 고교 교육 정상화’ 취지 못 살려…‘반교육적 시험’으로 전락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는 데에 쓰이는 약물은 특성상 고도의 집중상태를 유발하는데, 이 때문에 ‘공부 잘 하는 약’이라 불리며 암암리에 팔려나가곤 합니다. 송파구와 강남구에서의 ADHD 약물 처방량은 근 5년 사이 2.5배가량 급증했습니다. 연 단위로 보면 9월부터 증가세를 보이다가 11월 하순에는 다시 감소하지요. 수능이 매년 11월 초중순에 시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패턴입니다. 한편 유아 대상 의대 설명회가 열렸다거나, 과학탐구 문제를 어떻게 찍을지 알려주는 신점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그걸 곧장 괴담이나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그럴 만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수능 해킹’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덧씌워진 악마화와 ‘과몰입’을 걷어내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입시 현장의 실태를 속속들이 밝혀준다. 사교육 시장에 발을 담근 적 있는 현직 의사이자 활동가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그 현장에서 보고 겪은 것과 학생, 교사, 전현직 사교육 종사자 인터뷰 등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지금 수능이 얼마나 기괴한 방식으로 심각하게 변질됐는지 전한다.
그전 학력고사처럼 단편적인 지식 암기가 아니라 사고력 중심의 평가를 강조함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을 사고력 중심으로 전환하여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기해보자는 수능 도입 취지와 거리가 먼 현실을 생생한 사례와 정밀한 분석을 통해 고발한다.
1994학년도 대입부터 도입돼 진통을 겪고 변형되며 30년이 된 지금 수능은 과연 그 취지를 잘 살리고 있나.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물론 정부와 사교육업계 종사자 대다수가 고개를 저을 것이다. 지식암기형 시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고력 평가 시험도 아닌 게 학생과 학부모를 골병들게 하고 고교를 비롯한 전체 공교육을 파행시키는 주범이 돼버렸다고 말이다. 그저 복잡한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손쉽게 풀 수 있는 기술, 이른바 ‘수능 해킹’ 능력이 입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수능 해킹에 특화한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렸다.
책에 따르면,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부담 증가의 주범으로 ‘공교육 과정 바깥에서 출제되는 고난도 수능 문항’(이른바 ‘킬러문항’)을 지목하며 사교육 업계와 교육 당국 간 유착(카르텔) 의혹까지 제기해 큰 파장이 일었지만 이는 제대로 된 진단이 아니다. ‘공교육 과정만으로는 풀지 못하는 문제가 출제된다’는 식의 진단은 부분적으로만 진실이거나 사태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킬러 문항은 교육 범위 바깥에서 출제돼 사교육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와 거리가 멀다”며 “단순히 어려워서 잘못된 것이 아니거니와 출제 내용도 대학교 과정과 같은 ‘교과 외 내용’이 아닌 고교 교육과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다만, 교과범위는 줄이고 상위권 변별력은 유지하는 흐름 속에서, 문제풀이 요령이 과도하게 강조되며 시험의 퍼즐화가 진행됐다는 게 핵심”이라며 “그래서 고난도 퍼즐의 해법을 숙달하고 체화하기 위해 출제원리를 공유하는 (사교육 시장의) 실전모의고사(교재)들이 필요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컨대 사교육업계에서 실전모의고사를 출제한 적 있는 저자들은 지난 10년간 수능 해킹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동시에 수험생들의 사교육 의존성도 급격히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이 쓸모없는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지금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고 인기 대학에 간다 해도 교수에게 ‘해답지를 요구하는’ 학생이 될 뿐이라고 우려한다. 두 저자가 수능이 반교육적인 시험으로 전락했다고 단언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수능의 변질 과정, 수능과 사교육의 작동 원리, 사교육과 공교육 제도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 사교육을 무력하게 방치한 공교육 현실 등 한국의 교육체계 전반을 책에서 세밀하게 조명한다. 수험생과 N수생은 물론 전현직 교사, 학원 강사, 대학 조교 등 많은 사람의 생생한 목소리가 입체감을 더해준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공적 제도와 체계를 정비해 수능을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게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며 진지하게 고민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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