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 극우파 약진에 떨고 있는 파리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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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예술과 정치
르펜 “미친 반인종주의” 니프 맹비난
평상시라면 휴가 준비로 들뜬 이 시기, 파리 오페라 구성원들의 관심은 온통 선거판에 가있다. 6월 30일 갑자기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 때문다. 이달 초 유럽의회 선거에 패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하원을 해산하고 여는 조기 총선이다. 예전 같으면 사회당, 공화파 보수당 노선을 살피면 어느 정도 차기 내각의 문화 정책과 파리 오페라의 미래를 점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식도 2017년 제3세력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으로 무너졌다. 이번 총선은 여론조사상 극우 국민연합(RN), 좌파 신인민전선(NFP)이 마크롱의 여당 ‘르네상스’를 앞서고 있어 종전과 다른 분석의 틀이 필요하다.
여론조사대로 국민연합이 제1당을 차지한다면, 29세 조르당 바르델라 당대표가 총리에 오르고 신임 각료를 임명하는 동거정부 구성이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합이 내세울 신임 문화부 장관이 누구냐에 따라, 파리 오페라 총극장장 알렉산더 니프의 거취도 결정될 것이다. 2021년 파리 오페라 총극장장에 취임한 니프는 올해초 마크롱 정부의 라치다 다티 문화부 장관 제청으로 2032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었다. 하지만 니프의 미래는 정명훈의 과거를 보면 답이 보인다.
1993년 총선 결과 미테랑의 사회당은 자크 시라크의 우파 공화국연합(RPR)에 패했고 동거정부가 구성됐다. 우파 입장에선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사회당 주도로 건립한 바스티유 오페라는 ‘손 볼’ 곳이었고, 사회당이 임명한 정명훈은 ‘저쪽’ 사람이었다. 우파 연립 정부는 당시 자크 투봉 문화부 장관, 알랭 쥐페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 사회당 시절 임명한 파리 오페라의 요직을 물갈이했다. 무명의 정명훈을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에 끌어들인 ‘프랑스 예술계 큰 손’ 피에르 베르제를 극장장에서 경질했고, 1994년 9월 정명훈도 음악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권을 노리던 시라크는 파리 국립 오페라에서 사회당 잔재를 지우는 형태로 미테랑에 도전했고, 1995년 대통령 선거 승리로 결실을 봤다. 대선을 앞둔 동거정부가 엘리제 대통령궁을 향해 벌인 대리전의 전장이 파리 오페라였던 셈이다.
국민연합이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어떤 문화 정책으로 마크롱과 차별화를 보여줄 것인지는 현지 관련 학자들도 예측이 어렵다. 국민연합은 총선 대표 공약으로 불법 이민자 대상의 의료 지원 폐지, 국경 통제 강화를 걸었지만 문화 정책 총론은 공개된 게 없다. 다만 과거 2017, 2022년 대선 과정에서 마린 르펜 전 국민연합 대표가 내놓은 캠페인에서 단서를 찾을 순 있다. 당시 르펜은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헤리티지를 ‘도덕성 회복의 장소’로 만드는 작업을 문화 정책으로서 홍보했다. 전체적으로 국민연합은 문화 분야에서 정부를 구성할 디테일이 약하다.
반면, 파리 오페라의 현 지도부를 향한 르펜의 시각은 뚜렷하다. 2021년 니프가 주도한 파리 오페라 인종주의 개선 보고서에 대해, 르펜은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이 반인종주의의 미명하에 파리 오페라 레퍼토리를 삭제하려 한다”면서 니프의 행동을 “미친 반(反)인종주의”로 맹비난했다. 니프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총극장장 자리를 보전할지 우려하는 근거다.
한편으론 국정 운영에서 문화 정책을 소홀히 한 양측 태도가 오히려 쉽게 타협할 공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보인다. 대통령궁과 동거정부가 공연 예술 분야에서 크게 부딪힐 분야는 다문화주의 정도다. 파리 오페라의 니프를 두고도 임명은 ‘저쪽’이 했지만 국민연합에선 그로부터 원하는 바를 취할 여지가 있다. 바로 대 러시아 관계 개선이다.
2019년 12월 파리 오페라 발레단원들이 가르니에 극장 앞에서 연금 개혁 반대 퍼포먼스를 벌인 이후, 파리 오페라를 되도록 멀리하는 마크롱의 무관심을 틈타, 니프가 ‘바로크의 이단아’를 가르니에로 불러들인 것이다. 마크롱이 파리 오페라 공연 관람에 나선 것도 지금은 자리를 떠난 구스타보 두다멜 음악감독의 2021년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정도다. 동거정부 기간 마크롱이 파리 오페라에서 국민연합과 대결한다면, 쿠렌치스 공연이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루이 14세 때 권력의 애정이 낳은 산물
2017년 대선 기간 대중 연설에서 목소리 톤을 지적받자 프랑스 바리톤 장 필립 라퐁에게 보이스 교정을 받았고, 2022년 대선 승리 축하 자리에서 프랑스 국가를 부른 이집트 메조 소프라노 파라 엘 디바니에게 감사의 키스를 전하며 미디어가 원하는 그림에 클래식을 이용하는 정도다. 정치인의 문화적 취향이 문화 예술 정책의 부흥으로 이어지리라는 관성적인 예측 역시 마크롱은 무너뜨렸다.
유럽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는 정치권력의 부침에 따라 흥망을 달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21세기가 그랬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프랑스 권력의 애정이 낳은 산물인 파리 국립 오페라는, 문화적 효용을 활용할 줄 아는 사회당, 공화파 보수당의 기성 정치 권력과 공생하며 성장했다. 집권을 꿈꾸는 제3세력이 파리 오페라의 활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최대 피해는 결국 파리 오페라가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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