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스토리텔링…K디자인, 긴 역사만큼 무궁무진”

서정민 2024. 6. 29.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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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패션 전문가’ 사라 마이노

소짜니 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마이노. [사진 사라 마이노·각 브랜드]
“차세대 인재들에게는 힘도 있고 의식도 있다. 또 그들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들이 변화를 만드는 데는 국가적·사회적 시스템 지원도 필요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글로벌 패션 전문가 사라 마이노의 말이다. 현재 소짜니 재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그는 이탈리아 내 유력 패션 가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라의 어머니는 밀라노에서 처음 시작된 세계적인 편집숍 ‘10 꼬르소 꼬모’의 창립자 카를라 소짜니, 이모는 보그 이탈리아의 편집장으로 유명한 프랑카 소짜니다. 이탈리아 보그 부편집장이기도 했던 사라는 2009년 신진 패션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들을 발굴·지원하는 프로젝트 ‘보그 탤런트(Vogue Talents)’를 창립했고 현재도 LVMH 프라이즈, 울마크 프라이즈 등 세계적인 패션 경연 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번에 그가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한국의 차세대 패션 디자이너 발굴과 육성을 위한 프로젝트 ‘액셀러레이팅 F(Accelerating F)’의 글로벌 멘토를 맡았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과 신세계톰보이가 손잡고 글로벌 패션 시장에 진출할 신진 디자이너를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브랜드 설립 5년 이하의 신진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10개의 브랜드를 선정해 각 브랜드별로 1300만원의 지원금과 더불어 브랜드 스토리텔링, 트렌드 분석, 마케팅 전략, 투자 유치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10주간의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어머니가 편집숍 ‘10 꼬르소 꼬모’ 창립자

옛날 괴나리 봇짐에서 영감을 얻은 ‘잔바흐’의 백팩. [사진 사라 마이노·각 브랜드]
올해는 ‘뉴웨이브보이즈’ ‘리슈’ ‘메종니카’ ‘음양’ ‘잔바흐’ ‘준태킴’ ‘페르’ ‘프레노’ ‘피노아친퀘’ ‘2728’ 브랜드가 선정됐다. 사라 마이노는 이들 10개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함께 글로벌 전략을 고민하는 1:1 멘토링 시간을 가졌다.

Q :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강조한 내용은.
A : “브랜드 스토리텔링, 비전과 메시지, 책임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브랜드만의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어떤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도 명확히 해야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생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나는 이 부분을 ‘책임감’이라고 표현한다.”

Q : ‘지속가능성’ 대신 ‘책임감’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A : “지구환경을 위한 책임은 물론이고, 사회·윤리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 건강한 생산·경영 시스템을 만들어나갈 책임, 과거의 전통문화를 잘 살려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책임 등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전통 바느질 기법인 누비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 한 ‘페르’의 데님 팬츠. [사진 사라 마이노·각 브랜드]

Q : 최근 디올의 380만원짜리 가방 원가가 사실은 8만원에 불과하고, 장인이 아닌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을 착취해 싼값에 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탈리아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A : “일단 이 문제는 이탈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전에도 훨씬 문제가 심각했던 브랜드들이 있었고, 그들은 전 세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브랜드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들 때문이다.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안도 마련돼야 하지만, 디자이너가 책임감을 갖고 제품의 생산과정을 정확히 알고 이를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생산 시스템이 필요하다.”

Q : 한국 패션 시장의 큰 변화가 느껴졌다면.
A :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영어를 할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졌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패브릭을 사용하는 등 흥미로운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2009년 디자이너 발굴 ‘보그 탤런트’ 창립

칼라와 소매에 와이어를 넣어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출한 ‘프레노’의 코트. [사진 사라 마이노·각 브랜드]

Q :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고민 중 하나는 ‘상업적인 디자인으로 돈부터 벌 것인가,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실력부터 입증할 것인가’이다.
A : “어떤 메시지와 비전을 전달하고 싶은지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옷이 있다.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를 변화시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제품이 선택받을 것이다. 30피스를 만들 비용으로 10피스만 만들되 지속가능한 패브릭을 사용하는 등 책임감 있는 생산을 위해 투자한다면 상업적으로도 실험적인 디자인으로도 소비자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Q : 컬렉션 의상은 꼭 실험적이어야 할까.
A : “결국 얼마나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 얼마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의 문제다. 전혀 실험적으로 보이지 않는, 굉장히 클래식하고 깔끔한 디자인도 사실 그 뒷단에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스토리텔링이 있고, 쇼를 하는 장소와의 연계성 등 많은 요소가 있다.”
‘액셀러레이팅 F’ 프로젝트에 선정된 10개 브랜드 디자이너들과 사라 마이노. [사진 콘진원]

Q : 요즘 글로벌 패션 업계의 중요한 트렌드를 꼽는다면.
A : “트렌드는 왔다 가는 것이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달라진 변화를 얘기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커졌다. 소비자들에게 비전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패션은 사회적 정의와 정치적 신념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도구다. 눈에 띄면 그만큼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또 그만큼 변화를 만들 수 있는데, 소비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디자인과 그 제품을 창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커졌다.”

Q :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조언.
A : “SNS 등을 이용해 브랜드 이야기에 공감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좋다. 다만, SNS 콘텐츠를 생산할 때는 ‘잡지’ 편집장처럼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 단순히 사진 올리고, 설명 몇 줄 적는 것으로는 공감대를 끌어낼 수 없다. 사진 속 데님 셔츠를 왜 만들려고 했는지, 어떤 생산과정을 거쳤는지… 데님 셔츠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스토리와 정보를 자세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Q : ‘한국적인 요소’는 큰 숙제 중 하나다.
A : “이번에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강조했던 이야기 중 하나다. 한국처럼 문화유산과 전통이 풍부한 나라에선 그만큼 사용할 스토리 요소가 많다. 과거의 뭔가를 현재로 재해석하고 이것을 미래로 진화시키는 것. 결국 이게 다 스토리텔링과 책임감 있는 생산의 요소가 된다. 결국 나만의 것을 갖는 게 중요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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