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법, 눈 대신 귀로 보라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이다희 시집 | 148쪽 | 문학과지성사 | 1만2000원
이다희의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전도의 감각을 매력적으로 풍경화하는 시집이다. ‘그녀의 꿈에는 종종 손에 닿았던 살들이 모두 이어져 파도치는 장면이 나온다’(‘충청도’) 단지 자신이 꾼 꿈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인에게 꿈이라는 시공간은 수많은 진실이 중첩되어 다르게 표출되는 세계의 표면에 가깝다. ‘몇 년 만에 수영장에 왔다/ 가만히, 가만히 떠 있었다/ 물이 멈추고 내가 멈추고/ 나는 타일들의 투명하게 부푼 꿈’(‘지팡이’)
시인이 거듭 꿈을 꾸듯 시를 쓰는 이유는 뭘까? 현실의 컨텍스트(context)에 속박되지 않는 ‘앞뒤 다 잘린 단어’(‘종과 횡과 사선으로’)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꿈의 언어들 덕분에, 세계의 수직적 위계가 허물어지고 그간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기거하는 수평의 시공간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지가 있는 곳에 내 시선을 수평으로 가져다 둔다’(‘샌드위치 시스템’)
이처럼 현실에 종속되지 않는, 꿈의 수평적 시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르게 감각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시인은 이렇게 권유한다. ‘귀로 보자/ 밤 늦은 거리가 환하게 빛나도 우리는 귀로 보자/ 이 거리에 있는 가게들이 어떤 음식을 내놓는지 코로 추측하면서’(‘우리 사이 꽃’) 눈앞의 명료한 현실 아래에 숨겨진 존재들의 세계를 감각하다보면, 아주 잠깐이나마 꿈이 현실의 주인으로 등극하는 찰나의 아름다운 즉위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인간을 꺼내놓고 부드럽게 스트레칭을 한다/ 물구나무를 서면 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머리카락은 머리 위의 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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