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얻은 자유, 독립생활의 노년
최철주 지음
중앙북스
생로병사의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느냐다. 20년 동안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저술가로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고, 앞서 언론인으로 중앙방송 대표와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지은이가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이 책 『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에 담았다.
자신을 독거노인이라 서슴없이 칭하는 지은이는 아내와 딸을 병마로 먼저 보내고 지금은 혼자서 요리를 즐기며 삶을 향유하는 노신사다. 그런 그가 “고독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니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흔히들 남자 독거노인은 아내를 떠나보낸 후 얼마 있지 않아 따라간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내와 사별한 지 13년이 넘게 아직 ‘호출 신호’를 받지 않고 있는데, 주변에선 “야, 넌 혼자 남아서 잘도 지내는구나 그래”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듣는다고 한다.
그 비결로 요리를 꼽았다. 지은이는 언론계 은퇴 후 2007년 어렵사리 요리학원에 등록하고 요리에 입문한 덕분에 “지금의 나를 생존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노년의 남자 독거노인이 움츠러들지 않고 비실비실 사라지지 않으려면 치유의 힘을 가진 요리를 배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며 요리 배우기를 권유한다.
지은이는 “고독사라는 형태로 생을 마감하는 게 오히려 평화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고독사가 “내 인생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의 결과”이기 때문이란다.
거기엔 사연이 좀 있다. 지은이는 여든 나이에 암 수술을 받았다. 퇴원하는 날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자가격리 조치를 따라야 했다. 수술에 따른 복통과 변비, 구토로 고통을 받다가 겨우겨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배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을 겪어야 했다. 바로 그때 “집에서 죽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독립생활을 하면서 자유와 고요를 만끽할 수 있는 여유를 즐겨왔으며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편안한 마지막 삶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즐기다가 질병의 파편들이 육신과 영혼을 파괴한다고 해도 운명의 신에게 내 몸을 맡기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년 전 타계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의 추억과 대화도 소개했다. 이 장관 또한 지은이처럼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를 먼저 보낸 아픔을 함께한 동병상련의 지기였다. 이 장관 자신도 암 투병 기간에 항암제 투여나 방사선 치료를 줄곧 거부하며 평화스러운 죽어감을 택했다. 지은이는 그를 웰다잉의 롤 모델로 든다.
지은이의 ‘죽음학 강의’ 『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는 역설적으로 삶의 질과 존엄성을 높이는 ‘삶학 강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종 전까지는 삶의 영역일 테니까. 지은이의 말처럼 이젠 삶과 죽음의 문화가 달라져야 할 때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에 연재한 ‘최철주의 독거노남’을 새롭게 구성해서 엮은 책이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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