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어쩌다 이런 퍼즐 풀기가 되었나
문호진·단요 지음
창비
전 국민이 교육 전문가란 말도 있지만, 사실 이런 관심이 꾸준하진 않다. 특히 입시 제도에 대한 관심과 비판은 수험생 시절, 그 학부모 시절에 정점을 찍고 사그라들곤 한다. 수능의 문제점을 맹공하는 이 책 『수능 해킹』의 저자들은 이런 점에서 눈에 띈다. 이들은 현재 수험생, 학부모, 교육 관계자가 아니다. 각각 의사, 소설가인데 실전모의고사 출제, 학원 운영 등 사교육 시장에 공급자로 참여했던 경험자다. 이런 경험보다도 강사, 수강생, 교사 등의 인터뷰와 취재가 책에 담겼다.
이들은 현행 수능을 루빅스 큐브에 비유한다. 이 정육면체 퍼즐을 맞추는 건 초보자에게는 난공불락 같지만, 해법을 익힌 숙련자는 단숨에 풀 수 있다. 수능 역시 문제 유형에 맞춘 접근방식·행동전략 지침을 익혀야 정해진 시간 안에 풀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수능의 퍼즐화를 저자들은 2010년대 이후, 특히 최근 10년 사이의 변화로 지적한다. 그 한 축은 교육과정평가원. 정치적 압력을 비롯해 난이도 조절과 변별력 유지라는 두 숙제를 함께 풀려니 문제 유형이 상대적으로 고착화, 정형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시험지를 통해 출제원리를 역으로 추론하는 작업, 특히 사교육계의 대응을 저자들은 ‘수능 해킹’으로 표현한다
사실 출제 유형과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건 오랜 수험 대비책. 한데 이 책이 소개하는 수능 지문이나 문항을 보면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어 보인다. 몇 년 전 수능에서 악명을 떨친 헤겔 철학과 변증법 관련 지문도 그 예. 저자들의 말마따나 독일 철학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오히려 생각만 많아진다. 필요한 건 저자들이 예시하는 스킬이다. 결국 원리와 정석을 헤아리기보다 “최적의 공략법이 있는 게임”이나 “최선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도박”처럼 대할수록 큰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저자들 주장이다.
이는 과거 학력고사가 비판받았던 암기 위주의 공부, 도입 초기 수능이 내걸었던 사고력 등의 향상을 위한 공부와도 거리가 멀다. 저자들에 따르면 과목마다 고난도 문항이 주로 출제되는 주제들도 예측 가능해졌는데, 이런 문제 풀이가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공부할 때는 연관이 없다고도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퍼즐 풀이를 위한 대비는 수능과 똑같은 형식의 실전모의고사를 비롯해 방대한 종류의 이른바 ‘수능 콘텐트’ 양산을 불러왔다. 문제 출제에는 흔히 떠올리는 것과 달리 N수생을 비롯한 수험생들, 대학생들이 참여해왔다고 한다. 퍼즐 유형의 문제는 과목 특성에 따라 석박사 수준의 전문 지식이 아니라 ‘현역의 감’이 강점을 발휘하기 때문.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지닌 놀이 문화의 성격, 수험생들의 유명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산업화 시도 등을 생생하게 전하는 한편 현재의 문제점들도 지적한다. N수생이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의 보상으로 인기 강사의 조교 역할 등을 하는 것을 비롯해서다.
인터넷 강의가 기대와 달리 교육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대치동 강사의 인터넷 강의는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줄이는 대신 지방 학원에 타격을 입혀 내신 전문으로 재편되게 했고, 이는 지방 수험생들이 수능 관련 정보에서 소외되는 경향을 강화시켰다는 것. 서울과 비서울 수험생의 특정 과목 1등급 비중은 격차의 결과를 짐작하게 한다. 책에는 공교육의 현실과 점수변환 등 대학의 문제도 나오는데,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인기 강사는 연구팀, 출제팀을 거느리는데 고교 교사는 수시 자료를 비롯해 딴 짐이 잔뜩이다.
저자들이 수시와 정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등으로 대안을 주장하지 않는 점은 오히려 다행스럽다. 형식적 처방의 결과들, 수험생들은 예상하지만 입시 당국은 대처하지 않은 문제점들은 줄곧 보아온 대로다. 저자들은 공교육에 방점을 실으며 나아가 교육의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자고, 그리고 수험생들의 목소리를 듣자고 말한다. 공감한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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