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유감스런 뒷북 외교
지난 19일 방북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도 이런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이날 양국이 맺은 조약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유사시 즉각적인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동맹 관계’의 복원이라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도 1961년 소련과 북한이 ‘조·소 동맹조약’을 통해 약속한 ‘자동 군사개입’이 부활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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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밖 북·러 조약으로 긴장 고조
우크라 지원 카드로 견제했어야
」
사실 최근까지도 북한은 러시아보다 중국과 좀 더 친밀한 관계였다. 중국이 북한의 경제적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러 관계가 대전환을 맞은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기가 됐다. 러시아로 들어오는 북한산 무기가 푸틴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의 효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지원 대상국에서 매우 요긴한 협력 대상국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외교도 무역과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 이끌리게 된다. 한국 정부와 국내 언론들이 이번 푸틴 방북의 파급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도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절실함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교에서 실리가 우선이라는 것은 기본이다. 다만, 그 실리를 얻어내는 방법이 다양할 뿐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세련된 방법 중 하나가 상대국에게 자국의 효용성을 적극 알리는 것이다. 상대에게 내가 왜 필요한지를 설득시키면 된다. 평화, 인도주의 같은 명분이나 협력, 우호 친선 같은 틀에 박힌 형식은 현실 외교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동맹이라는 선물을 준 것도 한국보다는 북한이 더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작금의 국제사회는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북·중 관계가 북·러 보다 다소 소원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상호필요성에 대한 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케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일방적인 지원 관계 같지만 여기에는 명확하게 미 백악관의 이익이 숨어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교두보일 뿐 아니라, 미국 내에는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맞서는 최전방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진의 선봉에 있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가 미국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 종종 백악관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자국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우리 외교의 경우 한 박자 늦은 맞대응 외교에 치중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도 정부는 북·러 조약 발표가 나온 후에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재검토를 대응 카드로 내놓았다. 사전에 살상무기 제공이라는 카드가 있음을 러시아에 충분히 인식시키고, 이를 외교의 지렛대로 삼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비단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미·일과의 관계에서도 필수다. 외교에서는 나에게 상대가 필요한 이유보다는 내가 상대에게 필요한 이유를 분명히 해야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등장으로 변화 가능성이 커지는 한·미 관계와 여전히 불안한 한·일 관계를 유리하게 관리하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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