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된 몸의 반란, 춤추는 몸
김원영 지음
문학동네
다모증으로 얼굴과 온몸에 털이 덮인 멕시코 원주민 출신 여성, 두 팔 없이 태어난 지체 장애인, 왜소증 환자, 샴쌍둥이…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프릭쇼(freak show)는 신체적으로 기이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전시했다. 두 팔이 없는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발로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했고 다리가 없는 사람들은 팔로 아크로바틱 동작을 연마해 무대 위에 섰다.
프릭쇼는 유색인종과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강화하고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지체 장애가 있는 변호사이자 무용수인 저자가 프릭쇼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더 복잡하다. 그에 따르면 프릭쇼는 “사회에서 배제된 몸들이 직업적으로 활약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기회”였으며 ‘프릭’이 된다는 건 “한 시대의 욕망과 배제가 모두 포함된 용광로로 뛰어드는 일”이었다.
이 책은 그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느낀 개인적 경험과 춤의 역사에서 배제된 수많은 몸을 복원해나간 기록이다. 무용사에 기이한 신체가 등장하는 사건을 조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동한 최승희, 러시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바슬라프 니진스키 등 동서양 무용계의 타자, 20세기 후반 국내외 장애인 극단과 무용팀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의 존재가 휠체어 바깥에서 비로소 선명해졌듯, 무용의 역사에서 ‘배제된 몸’이 선명해진 것은 1900년대 후반부터. 영국의 캔두코 무용단은 장애인의 툭 튀어나온 흉곽이나 절단된 다리를 숨기지 않고 무대에 내세웠고, 독일의 브레멘극장 무용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왜소증이 있는 사람이 한데 어울려 서로의 몸을 따라 하며 춤을 추는 ‘하모니아’를 만들어냈다.
가볍지 않은 책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장애인 인권 증진을 부르짖는 ‘무거운 책’도 아니다. 특히 특수학교에 다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한 저자가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겪은 일화 등 성장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외형적 결함으로 스스로를 혐오했던 경험,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몸을 찌우거나 굶기거나 학대한 경험은 보편적이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2부 ‘닫힌 세계를 열다’는 20세기 후반 등장한 장애인 무용수와 배우들을 소개한다. 공연 접근성을 높인 동시대 예술인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3부 ‘무용수가 되다’는 저자가 길고 튼튼한 다리를 위장하기 위해 착용했던 플라스틱 파일 커버와 벨크로를 벗어 던진 후의 이야기. 그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춤 연습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어느 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장애가 있는 몸을 온전히 드러내고 춤을 춘다는 건 사실 특별히 위험한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 남보다 더 용기를 내야 하는 삶의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춤이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여기에 거창한 실존적 의미는 없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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