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특별법’처럼 상속세도 낡은 프레임 벗어나길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상속세 개편을 시급한 국정 현안으로 꼽으면서 오는 7월 발표할 세법 개정안에 상속세 완화안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최대 주주 할증, 높은 세율과 낮은 공제율 등 여러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상속세 부담이 높고, 20년 이상 개편되지 않아서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상속세 세율을 현재 최고 50%에서 30% 수준으로 낮추고, 기업 상속의 경우 기업을 팔아 현금화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 이득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상속세 제도는 지난 2000년 최고 세율을 50%(기업 최대 주주는 60%)로 올리고, 최고 세율 과표 구간을 50억원에서 30억원 초과로 낮춘 이후 24년 동안 세율과 과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상속세 공제 한도 10억원과 일괄 공제액 5억원도 1997년 이후 28년째 묶여 있다. 그사이 국민소득은 4배 이상 커지고, 집값은 10배 이상 올라 집 한 채 가진 중산층도 상속세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상속세 납부액이 2000년 5137억원에서 2021년 5조1764억원이 돼 20년 새 10배로 불어났다. ‘중산층 징벌 세금’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의 경우 상속세 공제 한도가 1290만달러(약 176억원)로, 부부 합산으로는 350억원 정도의 재산은 세금 없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미국에선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공제 한도를 계속 늘려 주고 있다.
기업 관련 상속세는 더 가혹해 정상 경영을 왜곡시킬 지경이다. 삼성 일가가 상속세 12조원을 내기 위해 계열사 주식을 대량 매도해야 했다. 한미약품 오너 일가들은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헤아리기도 힘들다. 상속세를 걱정한 대주주들이 주가 상승을 꺼리게 만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촉발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반면 OECD 37국 가운데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등 15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다행히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상속세 완화에 반대해온 민주당도 국민의 힘과 상속세 개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중산층에게까지 ‘부자 감세’라는 굴레를 씌울 수는 없다. 기업 대주주는 ‘부자’이기 이전에 수많은 고용을 책임진 경영자다. 민주당의 변화는 대선을 염두에 둔 중산층·중도층 지지 확장 전략의 일환이겠지만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민주당은 엊그제 국민의힘 발의안보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더 높이는 파격적인 ‘반도체 특별법’을 발의했다. “핵심 국가 전략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기업 특혜 시각에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제 상속세 문제에서도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변화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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