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떨어진 소년, '발레계 변우석' 되어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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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스테이지] ‘대한민국발레축제’ 화제의 발레리노 전민철
지금 내가 뭘 본거지. 지난 6일, 2024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갈라 ‘발레 레이어’(김용걸 안무·총연출)를 보면서 눈을 의심했다.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함께 서정적인 파드되 ‘산책’에 등장한 발레리노 전민철(한예종 무용원) 탓이다. ‘발레계 변우석’이랄까. 서양인도 울고 갈 우월한 피지컬부터 왕자 포스인데, 한치 흔들림없이 깔끔한 회전과 점프는 기본,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흐르는 춤선까지. 차원이 다른 남성 발레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도 “손끝부터 발끝으로 이어지는 긴 선, 우아한 자태, 부드러운 점프까지, 파리오페라발레의 심장이었던 니콜라 르 리슈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고 감탄했다.
스무살. 무대에서의 아우라와 달리 뽀얀 우윳빛깔 민철에게선 아직도 아기냄새가 났다. 7년 전 ‘빌리’가 못됐을 땐 어떤 심정이었을까. “많이 울었죠. 열정과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라 키가 문제라도 뽑힐 거라고 기대했었거든요. 공연을 볼 땐 가장 많이 연습했던 ‘앵그리댄스’ 장면에서 눈물이 났고요. 근데 만약 빌리가 됐다면 지금 발레를 하고 있을까 싶어요. 그 당시 꿈꿨던 뮤지컬배우 쪽으로 갔을지도 모르죠.”
당시 방송에서 발레를 반대하던 아버지도 묵묵히 응원해 편입에 성공했지만, 처음부터 날아다닌 건 아니다. “앞서있는 친구들과 비교를 당하니 스트레스가 됐어요. 부족한 걸 알면서도 맘처럼 안되서 노력도 많이 안했는데, 중3 때 나간 국제콩쿠르에서 큰 꿈을 갖게 됐어요. 콩쿠르가 열린 링컨센터에 다시 서고 싶고, 해외발레단에 가서 그곳을 대표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죠. 그런 목표가 생기니 남들과 비교하며 받던 스트레스는 아무 의미 없더라고요. 내 목표만 보고 달리면서 실력이 부쩍 좋아졌죠. 예고 입학식날 실기 1등으로 제 이름이 불리니 친구들이 놀라며 돌아보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하반기 ‘라바야데르’로 만날 듯
“어려서부터 마린스키가 꿈이었거든요. 김선희 교수님 통해 제 꿈을 알게 된 기민 선배님이 유리 파테예프 단장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다리를 놔주셨고, 그 이후 비자 서류부터 오디션 작품 선정까지 모든 부분을 챙겨주고 계셔요. 기민 선배님의 춤도 춤이지만, 저도 커서 그렇게 후배를 이끄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민철의 마린스키 입성이 발레계에 경사만은 아니다. 내년 봄 떠나면 국내서 그의 무대를 보기 힘들어진다. 29일 발레축제 화성 투어, 7월 성남아트센터 발레스타즈, 8월 마포아트센터 M발레시리즈 등이 예정되어 있지만, 아직 클래식 전막 무대를 선보인 적 없다는 점도 아쉽다. 박인자 발레축제 조직위원장은 “해외 나가기 전에 국내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가야된다. 마린스키 김기민, 파리오페라 박세은도 국내발레계가 ‘돈키호테’ ‘백조의 호수’ ‘라바야데르’에 먼저 세웠기에 해외서 좋은 역할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다행히 하반기 전막 데뷔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발레계 양대산맥인 국립발레단(10월)과 유니버설발레단(9월)이 가장 화려한 전막발레 ‘라바야데르’ 대전을 벌이는 해다. 양쪽 다 민철을 탐내지만, 객원 캐스팅 규정이 몹시 까다로운 국립에 비해 유니버설이 적극 움직이고 있다. 학생 신분이라 학교측의 최종 허가가 남았지만, 민철도 “기회만 된다면 꼭 전막을 하고 가고 싶다”며 의욕적이다. 올가을, 전사 솔로르로 도약할 전민철의 ‘그랑쥬떼(grand jete)’가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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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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