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주 6일 근무 ‘조르바의 후예’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인 이미지를 ‘게으르고 무책임한 국민’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주인공 조르바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채 무일푼 떠돌이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산다. “내가 돈을 댈 테니 크레타섬에 가서 갈탄을 캐자”는 사업 제안을 받고는 “내 마음이 내켜야 간다. 인간은 자유라는 뜻”이라며 배짱을 튕긴다. 조르바는 광산 운영 자금을 술과 매춘으로 탕진하고도 ‘자유’ 운운하며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10여 년 전 고대 올림픽 발상지, 올림피아를 방문했을 때 ‘조르바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올림피아 유적지의 발견과 발굴 모두 프랑스·독일 고고학팀에 의해 이뤄졌는데, 추가 발굴 작업도 독일팀이 진행하고 있었다. 올림피아 박물관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동시대에 만들어진 제우스 신전 조각 등 뛰어난 유적들이 전시돼 있었다. ‘그런데 그리스 발굴팀은 왜 없지?’ ‘올림피아 조각을 왜 더 홍보하지 않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2015년 그리스는 국가부도 사태로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런데 국민들이 긴축 요구를 거부했다. ‘조르바의 후예’스러운 모습이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주라”는 포퓰리즘 정치가 40여 년 지속된 탓에 노동 인구 4명 중 1명이 공무원인 나라, 대학 학부는 물론 석·박사 과정까지 공짜인 나라, 퇴직자가 생애 월급의 95%를 죽을 때까지 연금으로 받는 나라가 됐다. 당연히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는데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 사회당 정부의 부총리는 “우리 모두 같이 해먹지 않았냐”면서 조르바식 변명을 했다.
▶원래 이런 사람들은 아니었다.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의 영어 관용구 “It’s all Greek to me”는 그리스가 서양 철학 원조국임을 보여준다. 그리스의 해운왕은 이름을 ‘아리스토틀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로 지었다. 그리스인들은 “너희 선조들이 거의 원시인일 때 우리 선조들은 철학을 했다”면서 다른 국민들 기를 죽인다. 서양 문명을 만든 사람들인 건 사실이다.
▶‘유럽의 병자’ 그리스가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집권한 중도 우파 정부가 공무원 감축, 세금 인상, 공기업 민영화, 연금 삭감 등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진행한 결과, ‘우등 국가’로 변신 중이다. 물가·성장·고용을 종합 평가해 ‘1등 국가’를 선정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해 그리스를 ‘올해의 국가’로 뽑았다. 최근 그리스에선 주 6일 근무를 합법화하는 법까지 통과됐다. ‘조르바식 삶’과의 이별 선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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