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의도는 알겠는데, 시청자 설득은 김태호PD의 몫으로 남았다('가브리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예능 <My name is 가브리엘>은 제목부터 특이하다. 표기방식부터 영어를 쓰고, 천사 '가브리엘'을 예능 프로그램명에서 보는 건 여전히 낯설다. 전작인 <지구마불>이 유튜버들의 여행을 지켜봤다면, 이번엔 연예인들이 해외로 나아간다. 대신 조건과 기획이 붙는다.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의 삶을 72시간 동안 대신 살아보기. 누군가의 이름과 일상, 직업을 부여받고 타인의 인생을 단 3일간 경험해보는 거다. <무한도전> '타인의 삶'이나 ENA의 <눈떠보니 OOO> 등과 유사한데 판을 대폭 키워서 가상 인물이 아닌, 해외의 실존 인물을 섭외했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박보검과 박명수를 시작으로 홍진경, 염혜란, 지창욱, 박보검, 가비, 덱스 등이 태국, 르완다, 중국, 멕시코, 아일랜드, 조지아 등 전 세계로 나아가 누군가의 삶을 빌린다.
특이한 건 많은 기대를 받고 있고, 큰 예산과 정성과 오랜 기획 기간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소박한 감성과 정서를 재미요소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박보검의 더블린 이야기는 수수한 그의 헤어스타일만큼 평온한 일상에서의 따뜻함을 이야기하고, 박명수의 가족 이야기는 복작거리는 소시민의 삶 가운데서 잃어버린 소중함을 되찾는다. 즉, 출연진의 면면은 화려한데 함께하는 일종의 캐릭터물이 아니다. 각자의 여행을 나열하고 스튜디오에서 함께 본다.
새로운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하라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 여정, 활동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관찰예능이든 유튜브 토크쇼든 이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 여행 유튜브나 인터넷방송도 마찬가지다. 출연자와 시청자가 한 팀이 되는 거다. 끊임없이 시청자와 소통하면서 함께하는 친밀감을 공고히 하는데,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좋은 사람이란 신뢰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My name is 가브리엘>은 투입과 캐스팅 대비 시너지를 낼 수 없는 핸디캡을 안고 시작한다. 물론, 타인의 삶에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기획이니 의도된 방향이다. 박명수가 투덜거리면서 적응하려 노력하는 모습들, 박보검의 팬이라면 그의 유창한 영어실력이나 스스럼없이 더블린의 한 일원으로 섞이는 모습 등 새로운 얼굴과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더블린이 처음이냐, 이름은 무엇이냐는 택시 기사의 질문에 박보검이 머뭇거리고, 난생처음 본 '아내'와 아이가 생긴 박명수가 번역앱 앞에서 난처해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신기해하거나 몰입하기에 우리는 그간 봐온 게 많다. 역할 갈등을 일으키는 스위치를 통해서 출연자가 아닌 시청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가 바로 와 닿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가브리엘>은 한 줄로 떨어지는 명확한 기획과 재미에 비해, 까다롭고 어려운 예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재미의 길을 잃기 쉬운 이유를 부연하자면, 기획의도가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다보니 쉽지 않은데, 그에 반해 볼거리는 꽤나 익숙하다. 기획은 '멀티버스', 캐스팅은 초화화인데 여러 여행 다큐나 MBN <지구탐구생활>처럼 현지인 집에서 함께 살면서 삶을 경험하는 익숙한 콘셉트의 예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헷갈린다. <지구마블>의 연예인 버전으로 생각하고 유명 연예인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 일반인의 생활을 체험하는 과정에 재미를 느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여행예능으로는 다룰 수 없는 로컬 라이프를 소개하는, 기존 여행예능에서 한발 더 나아간 색다른 볼거리가 재미요소인지 그 조준점이 명확하지 않다.
여기서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72시간 타인의 삶을 산다는 설정은 제작진의 세팅으로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몰입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만 작동한다는 데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 꽤나 적극적인 시청 태도가 필요한 예능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선 시청자의 마음을 동하게 만들 유인요인이 필요하다. 리얼리티가 여행 유튜브 이상으로 올라오든지, 환경 설정이 <트루먼쇼> 정도로 통제가 되든지,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든지, 뭔가 한 발 더 나아간 색다름이 있어야만 몰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박보검과 박명수의 상황을 아예 바꿨으면 '타인의 삶'이란 이야기 코드가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박보검에게서 보여주려는 스타의 인간미를 바탕으로 한 힐링의 정서와 박명수에게서 끌어내려는 웃음 코드가 너무 명확하게 보인다. 예능인과 배우에 따라 원하는 기획된 의도와 익숙한 코드가 너무나 강하게 보이다보니,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본다는 리얼리티가 소격된다. 기획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시청 태도라는 협조가 필요한 콘텐츠인데, 정작 시청자의 영역이 무척 제한적이다. 제품은 간단한데 브랜드 소개서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카달로그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혼란 같은 거다.
기획은 결국 결과론이다. 잘 된 기획은 대중의 필요를 열심히 따라가거나, 대중의 욕망을 한 발 앞서서 담아낸다. 최고의 기획은 정확하겐 드러나지 않았던 지점을 건드려 새로운 지향을 끌어내는 거다. 그런 점에서 <My name is 가브리엘>의 도전은 기존의 틀과 방식으로 단번에 소화하기 까다로운 예능일 수 있다.
팬덤이 있는 출연자가 나온다고 시청률이나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주진 않는다. 안전한 선택만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캐릭터쇼로 흥했던 김태호 PD가 이후 캐릭터쇼를 지양하고 있는 지향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지구마불>시리즈로 학습한 웹예능의 리얼리티와 방송 기획의 비율을 어떻게 조정해나갈지, 예상되는 그림을 깨는 기획의도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분기점을 어떤 출연자가 만들지, 다소간 지켜볼 필요가 있는 화제작인 것만은 분명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이들에게 빨대 꽂는 부모들과 방송사들에게 ‘우리, 집’이 주는 교훈 - 엔터미디어
- 설마 정순원이 진짜 닥터? ‘커넥션’의 과몰입 추리 시작됐다 - 엔터미디어
- 여행도 체험도 아닌 타인의 삶, 박보검이 경험한 것은(‘My name is 가브리엘’) - 엔터미디어
- 치명적이라던 ‘하이라키’의 주인공 이채민은 왜 ‘난닝구’를 입었는가? - 엔터미디어
- 운명이냐 마음이냐, ‘신들린 연애’의 신박한 연애 리얼리티 변주 - 엔터미디어
- ‘꼬꼬무’ 아성 넘볼 만한 당사자 증언의 강력한 호소력(‘이말꼭’) - 엔터미디어
- 속고 속이는 ‘플레이어2’, 패턴 드러나자 무뎌진 타격감을 어찌할꼬 - 엔터미디어
- 비 오는 날 막걸리에 부추전, 그리고 이효리 눈물의 의미(‘단둘이 여행 갈래?’) - 엔터미디어
- 이정은과 정은지여서 가능해진 이질적인 것들의 무한결합(‘낮밤그녀’) - 엔터미디어
- 분위기 제대로 탄 ‘커넥션’, 제2의 ‘비밀의 숲’ 같은 압도적 몰입감의 비결 -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