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떡실신 시키는 ‘기후 날벼락’...파리 올림픽 이대로 괜찮을까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6. 2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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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LA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탈수증상을 겪은채 완주에 성공한 가브리엘라 안데르센-스키스(가운데). <출처=alamy>
1984년 미국 로스엔젤러스 올림픽 여자 마라톤 경기. 경기 시작 15분 이후부터 치고 나가던 조안 베누아는 코스 내내 독주를 이어간 끝에 2시간 24분 52초만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여자 마라톤 경기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카메라는 스위스 대표로 출전한 가브리엘라 안데르센-스키스에게 몰렸습니다.

베누아가 결승테이프를 끊은지 20분만에 트랙에 들어선 가브리엘라는 타는 듯한 LA의 여름날씨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당시 규정상 마라톤 경기중 급수소는 5곳뿐이었고 이를 제외하곤 선수들이 물을 공급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급수소를 놓치고 지나친 가브리엘라는 비틀거린채 트랙을 걸었습니다. 왼쪽 팔은 축 늘어졌고 다리는 마비된 듯 질질 끌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진은 그녀가 여전히 땀을 흘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경주가 지속되도록 뒀습니다. 경기장이 떠나갈듯한 관중들의 박수갈채 사이에 가브리엘라는 마지막 400m를 5분 44초나 걸려 완주했습니다.

선수의 투혼과 집념을 보여주는 이 감동적인 장면을 앞으로는 어렵지 않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가 운동장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내달부터 열리는 파리올림픽에서 극심한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이 선수들의 건강을 해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전 세계를 덮친 폭염으로 파리 올림픽이 역사상 가장 더운 올림픽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는 중입니다. 스포츠의 대부분이 실외에서 펼쳐지는만큼 기후변화가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끝없는 설산에서 펼쳐지는 스키대회는 유지될 수 있을까요. 어떡하면 기후변화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까요.

자연보호구역에 골프장 지어버린 브라질...올림픽·월드컵 탄소배출 70%는 여객기에서
브라질 마라펜디 자연보호구역에 들어선 마라펜디 골프장. 이 골프장은 2016 리오올림픽 을 이해 지어졌습니다. <출처=Prefeitura do Rio>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환경친화적이지 않습니다. 경기장을 짓기 위해 산림을 벌채하는 일은 다반사고, 최적의 퍼포먼스를 위해선 자연을 일부 희생해야 하죠. 리우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브라질은 자연보호구역의 희귀 습지를 메우고 골프장을 만들었고, 평창올림픽 역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숲을 밀어버리기도 했죠.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위해 캐나다는 10만 그루의 나무를 벌목해 곰들의 서식지를 파괴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황당한 조치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선 봅슬레이 활주로 곡선 구간이 녹지 않도록 암모니아와 질소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한 프랑스 외교관은 “올림픽의 모든 시설은 자연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규모 관중들도 사실 환경에는 좋지 않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를 보기 위해 팬들은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개최지로 모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의 약 70%는 국가간 비행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축제에 빠져서는 안되는 음식 소비와 뒤처리,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동원된 각종 플라스틱 등 1회용품 사용도 물론 탄소배출을 가속화합니다.

이런 환경 이슈때문에 올림픽 개최에 실패한 곳도 있습니다. 미국은 1976년 덴버에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지만, 지역 환경 운동가들이 콜로라도 로키산맥을 개발하려는 올림픽위원회의 움직임에 조직적인 반대를 벌여 유치권 획득 2년 후 이를 반납하기도 했죠. 덴버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올림픽 유치권을 반납한 도시에 남아있습니다. 스위스도 2013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주민투표에서 환경파괴를 이유로 재정지원안이 부결된 후 철회하기도 했죠.

“파리올림픽, 기온 40도에 습도 80% ‘최악의 조건’ 될 것” 예상도
2021도쿄올림픽 남자 마라톤 경기중 쓰러진 벨기에의 선수 <출처=AFP>
따지고 보면 스포츠는 기후변화의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줄어들지 않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해 지구온도가 높아지면서 경기 환경도 바뀌고 선수들도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지요. 향후 기후 변화 전망에 따르면 여태까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중 절반 이상은 앞으로 동계올림픽을 다시 열기엔 너무 더운 곳이 돼버릴 수 있다고 예상됩니다. 전세계의 스키 리조트는 물과 에너지, 인프라 등 인공 눈을 생산하고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경제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21년 중부유럽을 덥친 대규모 폭풍우로 독일내 스포츠 시설의 1억 1050만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듯 기후변화는 스포츠에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죠.

2014년 호주오픈 테니스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받는 스포츠를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나흘 연속 섭씨 41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경기게 치러지다 보니 1라운드에서 9명의 선수가 기권하며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반 도딕은 “코트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더운 올림픽으로 기록된 2020도쿄올림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테니스와 마라톤 등 실외 종목에서 선수들이 더위를 못이겨 탈진하고 휠체어를 타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혹설의 나라 러시아에서 온 스베틀라나 곰보에바(양궁)는 더위를 이기 못해 경기중 실신했고, 철인 3종경기 선수들도 경기를 포기하고 구토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곧 열릴 파리올림픽에선 더욱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 나왔습니다. 최근 영국 지속가능한 스포츠 협회와 호주의 ‘프론트러너스’는 ‘불의 고리: 2024 파리 올림픽의 폭염 위험’이라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보고서는 파리올림픽은 섭씨 34도, 습도 70%를 이상을 기록한 도쿄올림픽보다 더 심각한 폭염에 시달릴 것으로 봤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100년만에 파리에서 재개최되는데 그간 파리의 7~8월 기온은 3.1도나 상승했습니다. 보고서는 파리올림픽이 기온 40도, 습도 80% 이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문제는 올림픽 후원 스폰서들이 최대한 많은 관중을 불러 효과적인 광고효과를 얻기 위해 낮 시간 경기를 요구한다는데 있습니다. 도쿄올림픽조차 테니스종목 일부 경기가 저녁시간대에 열렸지만 파리에선 아직 특별한 조치가 없습니다.

‘탄소배출량 절반’ 목표 제시한 파리올림픽...“탄소집약기업들 ‘그린워싱’에 이용” 비판도
2021년 파리 중심부에서 올림픽 오륜기에 현수막을 설치하며 올림픽 개최 반대 의사를 내비친 기후대응 시위대들 <출처=AFP>
스포츠계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후대응을 위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2018년 국제연합(UN)은 주요 국제 스포츠연맹과 함께 250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스포츠단체가 참여하는 유엔 기후행동프레임워크(UNSCAF)를 설립했습니다. 2021년에 열린 UN 기후변화회의에서는 기후 위기에서 스포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파리올림픽도 ‘일단은’ 친환경 올림픽으로 치러집니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역대 최초로 탄소배출량을 2012년과 2016 대회 대비 5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조직위는 경기장의 95%를 기존 경기장을 활용하거나 임시 경기장으로 구성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은 근대 5종 경기와 승마경기장으로 활용되고,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선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치러집니다. 나머지 5%는 저탄소 건축 방법으로 건설됐고, 새로 지어진 건물은 올림픽 이후 주거시설로 활용됩니다.

도쿄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한 골판지 침대도 다시 도입했고, 식사를 위해 제공되는 일회용 플라스틱도 50% 감축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야심찬 목표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조직위는 선수촌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선수단은 선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조치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은 개별적으로 에어컨을 설치하겠다고 나섰고, 한국 선수단들도 쿨링 조끼등을 보급하는 등 선수 안전 확보를 위해 고심중입니다.

환경단체들은 올림픽이 기후변화에 실제로 대응하기보다는 탄소집약산업의 ‘그린워싱’에 이용되고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카본마켓워치는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파리올림픽의 목표 감축량이 전체의 3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직위가 내놓은 감축 방법과 모니터링 시스템이 취약해 실질적인 감축은 많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죠. ‘스틸워치’는 벨기에의 철강생산기업 아르셀로미탈을 비판했습니다. 아르셀로미탈은 파리올림픽 공식 후원사중 한 곳으로 올림픽 성화를 보관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저탄소 강철로 만든 성화봉을 만들고 올림픽 경기장에 저탄소 재활용 강철을 제공한다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말이지요. 그러나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3년간 탈탄소화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15억달러중 3분의 1만 지출했다는의심을 받습니다.

“전문가·정치인·정부 모두 부정되는 ‘불신의 시대...스포츠가 기후변화 증폭기될 수 있어”
세계 최초로 UN 인증 ‘탄소제로’ 축구팀으로 선정된 잉글랜드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의 홈구장 <출처=adi.tv>
기후변화로 인해 스포츠가 입을 피해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2050년까지 영구 프로축구 경기장의 4분의 1일이 매년 대규모 홍수로 위협받거나 수몰될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핑 해변의 18%가 2050년까지 사라질 것이란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일부 스포츠 단체와 팀들은 이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북미하키리그(NHL)은 시애틀 크라켄과 북미여자농구리그(NBA)의 시애틀 스톰의 홈구장 이름은 기후 서약 아레나(Climate pledge Arena)입니다. 경기장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대신 태양을 포함한 재생 에너지로만 구동돼 ‘탄소 제로’ 운영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2018년 영국 4부리그 축구 클립인 포레스트 그린 로버스는 콘크리트보다 탄소집약도가 낮은 목조로 경기장을 신축해 세계 최초로 UN이 인증한 ‘탄소제로’ 축구 클럽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가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포츠가 지닌 국제적 영향력 등 문화적 자원을 활용해 글로벌 기후 대응 움직임을 촉발하는 증폭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글로벌스포츠매터’는 “전문 지식과 정치인, 정부 등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스포츠는 기후 대화를 정상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https://globalsportmatters.com/research/2022/04/05/sport-must-join-fight-against-climate-change-unscaf-cop26/ ◎https://www.port.ac.uk/news-events-and-blogs/news/rings-of-fire-heat-risks-at-the-2024-paris-olympics#:~:text=Leading%20athletes%20are%20warning%20that,scenarios%20dying%20during%20the%20Games. ◎https://kdvr.com/denver-guide/fun-fact-denver-is-the-only-city-to-reject-the-olympics/ ◎https://www.forbes.com/sites/vitascarosella/2024/06/18/2024-paris-olympics-could-be-deadly-for-athletes-new-report-shows/ ◎http://jaga.or.kr/?p=4772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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