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앱·IPTV로 확장···금융, 슈퍼앱 넘어 '일상 플랫폼' 스며든다
비금융 플랫폼에 맞춤 상품 제공
4대銀 조직 신설 등 인프라 구축
보험·카드사도 관련서비스 선봬
슈퍼앱 지키며 생태계 확장 전개
망분리 규제완화 등 뒷받침 필요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은행이 최근 금융 서비스 개발사로 변신하고 있다. 각종 금융 서비스를 개발해 테크 플랫폼 기업에 제공하는 방식이다.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승차공유 애플리케이션 그랩에는 QR코드 기반 결제 기능을 제공하고 미국 아마존의 앱에는 DBS의 재고담보대출 등 공급망 금융 서비스를 탑재했다. 임상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파트너는 “산업 특성에 따른 맞춤형 상품을 개발해 플랫폼과 결합하는 사례들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금융사가 개발한 상품을 테크 기업의 플랫폼에 탑재하는 임베디드(내재화) 금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모빌리티, 배달 앱, TV 등 이미 소비자의 일상에 파고들어 있는 플랫폼에 금융 기능을 탑재하는 방식으로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금융사들은 그동안 자체 개발한 앱에 모든 금융 서비스를 모아놓는 ‘슈퍼 앱’ 전략을 펼쳐왔으나 고객 접점에 한계가 나타나면서 최근에는 비금융 플랫폼에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디지털 전략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이 같은 이종 융합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만큼 시대 흐름에 맞는 규제 개선도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은 임베디드 금융을 디지털 신사업으로 낙점하고 전담 조직 신설 및 새 디지털 전략 수립을 위한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 초 외부 플랫폼과의 제휴를 확대하기 위해 임베디드영업본부를 신설했다. 최근에는 임베디드 금융 전략 수립을 위해 컨설팅사 선정 작업에도 착수했다. 우리은행도 올 초 신사업제휴추진부를 새로 꾸렸으며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서비스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기존 디지털사업부 내 서비스형 뱅킹(BaaS) 셀(Cell)이, 하나은행은 디지털신사업부와 플랫폼제휴마케팅부가 플랫폼 기업과의 제휴를 늘려가고 있다. 4대 시중은행 모두 임베디드 금융 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성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은 삼성금융네트웍스(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카드·삼성증권)의 통합 금융 앱인 ‘모니모’ 회원 전용으로 고금리 파킹 통장을 이달부터 개설하고 있다. 배달의민족과 신세계면세점 등 플랫폼사들은 신한은행이 공개한 금융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자사 앱에 탑재했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KT의 ‘지니 TV’에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신한홈뱅크’를 출시한 것도 임베디드 금융의 일환이다. 하나은행은 SPC(하나 해피페이머니 통장), SK플래닛(OK캐쉬백 제휴 통장), 쿠팡(셀러월렛 빠른정산 서비스)과 잇따라 제휴 서비스를 선보였다. 우리은행은 천주교 공식 모바일 앱과 연동해 비대면으로 봉헌하고 연말정산 세액공제도 가능한 ‘가톨릭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보험과 카드 업계에서도 다양한 임베디드 금융 전략이 시도되고 있다. 삼성생명은 올 4월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업체인 오픈플랜과 ‘굿데이 일상생활플랜보험’을, 지난달에는 굿닥과 제휴해 ‘굿데이 건강서비스’ 등 보험 서비스를 선보였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4월 인터파크트리플과 여행을 취소할 때 수수료를 보장해주는 상품을 공동 개발하기 시작했다. 신한카드는 롯데렌탈의 영업용 차량 구매 등을 카드로 결제할 때와 금융상품을 이용할 때 신한카드를 우선순위로 사용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조재박 KPMG 부대표 겸 디지털본부장은 “아직 임베디드 금융만으로 수익이 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까지 투자를 감내할 수 있느냐, 장기적 관점에서 수익 모델이나 모객 확보 전략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략을 전환한 것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슈퍼 앱이 핀테크 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탓이다. 은행과 증권·보험 등 자회사의 서비스를 통합해 사용자 확보에 나섰지만 네·카·토(네이버·카카오·토스)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행장은 “앞으로도 핀테크가 디지털 금융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은행들은 슈퍼 앱을 통한 ‘지키기’ 전략과 제휴를 바탕으로 생태계 확장 전략을 동시에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베디드 금융이 새로운 디지털 금융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규제 완화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사의 내부망을 외부에서 연결하지 못하도록 막는 망 분리 규제는 금융사의 API 개방을 크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베디드 금융을 위한 API를 외부망으로 다시 올려서 별도의 테스트를 해야 하는 등 비효율성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공준호 기자 zer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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