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화랑서 잇단 러브콜 K아트의 미래, 80년대생
한국 작가 아침(미국 활동명) 김조은(35)이 세계적 화랑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개인전 '최소 침습'을 열며 금의환향했다. 경희대 미대 2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작가의 첫 국내 전시다. 뉴욕대·컬럼비아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뉴욕을 기반으로 설치, 회화 등의 작업을 해온 작가는 전통 소재인 비단에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법으로 여성들의 인물화를 그리며 뉴욕에서 '깜짝 스타'가 됐다.
'Next Time' 등의 작업은 고통, 돌봄, 사랑에 대한 기억을 섬세한 화법으로 담아냈다. 투명하다시피 얇은 소재에 파스텔과 수채화로 그림을 그린다. 자전적 이야기가 숨어 있고 인물들은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다. 정지웅 글래드스톤 디렉터는 "미국 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관람객이 그림을 보며 우는 경우도 있었다. 여성팬의 호응이 뜨거웠다. 미국 대형화랑과 다른 개인전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꾸준히 전시를 열어온 김 작가는 LA와 뉴욕 소재의 프랑수아 게발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전속 작가가 됐다.
개막일인 20일 만난 작가는 글래드스톤과 전시를 열게 된 비결을 묻자 "영문을 모르겠다. 저는 술을 못 마셔 파티를 즐기지도 않고 묵묵하게 작업만 한 작가였다. 아트포럼에 리뷰 기사가 크게 실렸고, 제 작품을 좋아해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생 작가들의 도약이 눈부시다. 서도호·양혜규 등 1960~1970년대생 선배들이 해외 유학과 활동으로 저변을 넓혀간 것에 비하면, 차세대 '국가대표'는 이진주·우한나·전현선·정희민 등 국내파가 많다. 높아진 한국 미술 위상 덕에 해외에 시차 없이 진출하고 있다. 해외 화랑의 국내 작가 발굴이 적극적인 것도 원동력이다.
무엇보다 1989년생의 기세가 무섭다. 이미래의 테이트모던 입성이 큰 화제가 됐지만, 또래 활약도 이에 못지않다. 김조은이 한국으로 역수입됐다면, 동갑내기 전현선은 9월 14일 독일에 진출해 에스더쉬퍼 베를린에서 우고 론디노네와 나란히 개인전을 연다. 원뿔·육면체 등 특유의 기하학적인 도형을 사용해 정물화·풍경화를 그리는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그림 속에 담아낼 예정이다.
1980년생 이진주는 2023년 화이트큐브 서울 개관전을 장식한 이후 해외 러브콜이 쇄도 중이다. 6월 29일 개막한 에스더쉬퍼 베를린의 기획전 'Twilight is a Place of Promise'에 유일한 한국 작가로 초대됐다. 캐럴라인 쿤, 세실리아 비쿠냐 등 유명 작가와 함께한다. 10월 20일부터 내년 2월까지는 상하이를 대표하는 유즈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연다. 작가의 작업 전반을 소개하고 '이정배 블랙'을 활용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특유의 인물화 등을 선보인다. 국내 간판 동양화가가 중국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프리즈 위크인 10월 8일부터 11월 23일까지 런던의 타데우스 로팍에서 1987년생 정희민도 개인전 'Umbra'를 연다. 디지털 이미지를 회화와 조각으로 변환해 물질의 잠재성을 탐구해온 작가로 전시 제목은 달에 맺히는 그림자의 암부를 뜻하며, 여기서 영감 받은 작업을 펼친다. 작년 1월 서울에서 정희민을 포함한 3인전을 기획한 김해나 큐레이터는 "타데우스 로팍 대표가 한국 미술에 큰 애정을 갖고 작가 발굴에 적극적이다. 몇 차례 한국 작가 기획전시를 열면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을 통해 해외에 한국 미술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고, 전속 작가가 된 정희민이 그 첫 결실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트페어도 해외 진출 발판이 되고 있다. 우한나·전현선이 프리즈를 통해 스타가 된 사례다. 6월 열린 아트바젤인 바젤에 처음 진출한 우손갤러리는 1984년생 오쵸모 작가의 솔로 부스를 꾸려 아트플랫폼 아트시(Artsy)가 선정한 '베스트 10 부스'로 꼽혔다. 오 작가는 문학적 상상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주로 해왔다. 이번에는 신경과학자와 협업해 바다 달팽이의 기억 전달 실험의 의미를 탐구한 거대한 설치 작업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강탈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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